친박 최경환-비주류 이준석 만남 놓고 설왕설래…주류세력 강한 여권 ‘굳이 손잡을 필요 있나’ 분위기
#고개 든 보수대통합
친박계 좌장으로 불리며 박근혜 정부 시절 여당과 청와대 간 가교 역할을 했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6월 30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등 당내 청년 정치인들을 만난 사실이 알려지자 정치권은 술렁거렸다. 최 전 총리가 내년 총선에서 움직일 것이란 예측이 나오기는 했지만 이 만남은 본격 질주를 시작했다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졌다.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 전 부총리는 서울 강남 한 식당에서 이 전 대표와 약 2시간 30분 동안 만찬을 했다. 이준석계로 불리는 김용태 전 청년최고위원과 이기인 경기도의원, 구혁모 전 국민의힘 혁신위원 등 당내 청년 정치인들도 함께했다.
이 자리는 최 전 부총리가 평소 교류해오던 이 전 대표에게 당내 청년 정치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 전 부총리는 2012년 ‘박근혜 키즈’로 영입된 이 전 대표와 평소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만남에서 최 전 부총리는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보수 대통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전 부총리는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이 0.73%포인트(p) 격차로 신승한 것을 언급하면서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이준석 유승민 나경원 안철수 등 보수 가치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연합군으로 뭉쳐야 한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전 대표에게 30대에 보수당 당수가 된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를 거론하며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원내에 진입해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또 동석한 청년 정치인들에게는 “젊은 정치인답게 패기 있게 당에 옳은 소리를 해달라”고도 했다.
최 부총리는 정치권에서 내년 총선 경북 경산 출마설이 제기되는 데 대해선 "아직 출마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지만 정치권에서 이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가 최근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는 장면이 여러 군데에서 포착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의 정치 재개 선언으로 정치권은 받아들이고 있다.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뇌물로 받은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2022년 12월 신년 특사로 잔형 면제·복권된 최 전 부총리는 내년 출마의 법적 장애물은 없다. 최 전 부총리는 사법 처리된 전력으로 인해 당원권 정지 상태이긴 하지만 사면을 받은 만큼 당원권 정지가 정치 활동의 굴레가 될 가능성은 낮다.
박근혜 정부 때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와 경제부총리를 지낸 그는 경북 경산에서 내리 4선(17·18·19·20대)을 지냈다. 그가 경산에 다시 도전한다면 만만찮은 세력을 모을 수 있을 전망이다. 이 전 대표와의 만남에서 암시했듯 그는 ‘친박’을 앞세우는 대신 보수대통합을 간판으로 내걸고 공천 획득 시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 유영하 변호사 등 다른 친박 예상 출마자들도 같은 명분을 내세울 것으로 점쳐진다.
친박 간판 대신 보수대통합을 내세운 것은 현실적 상황을 고려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과거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던 ‘박근혜 마케팅’은 박 전 대통령 고향이자 보수 심장인 대구경북(TK)에서조차 먹히지 않고 있다. 2022년 4월 박 전 대통령 최측근 유영하 변호사가 여당의 대구시장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을 때 박 전 대통령이 영상 메시지까지 공개하면서 응원했지만 유 변호사가 고배를 마셨던 것이 단적인 예다.
더욱이 최근 박 전 대통령 행보를 보면 정치와는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공개 행사를 거의 하지 않는 데다 외부에 나가더라도 언론에 알리지 말라는 당부를 내놓고 있다. 친박 그룹이 박 전 대통령을 지렛대로 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 셈이다.
당 안팎에선 “친박 그룹이 보수대통합이라는 풍선을 띄워놓으면 이를 여권 핵심부가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큰데 최 전 부총리가 보수 분열의 책임을 여권 지도부에 돌리며 무소속 출마의 명분을 쌓으려는 포석”이라 해석도 나온다.
국민의힘 출신이자 친박 그룹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7월 3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나가 “이준석 전 대표를 만나면 제일 싫어하는 측은 대통령실 아니냐. 윤석열 대통령이 제일 싫어하실 것 같은데 왜 만났을까”라며 “최경환 부총리가 국민의힘 공천보다는 무소속으로 (출마를) 완전히 결정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합치는 게 능사일까
여권 핵심부 내엔 ‘합치는 게 능사가 아니다’라는 기류가 강하다. 보수대통합을 내세웠다가 ‘과거로의 회귀’라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복수의 여론조사를 볼 때 윤 대통령이 이권 카르텔 타파를 내세우면서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 확인되면서 구태여 옛 동지들을 모으지 않아도 국정 성과 도출을 통해 총선 심판이 가능할 것으로 여권은 보고 있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은 7월 6일 서울 서초구 플로팅아일랜드에서 청년정책 점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우리 정부가 지금 국회에서는 소수 정당이라 뭘 하려고 하면 무조건 발목 잡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희망을 가지십시오. 내년부터는 근본적인 개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내년 총선을 기점으로 대반전이 가능할 것이라는 암시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친윤 인사들은 보수대통합 기조로 갈 경우, “야당보다 더 세게 때린다”는 당내 비판을 받고 있는 유승민 전 의원과 이준석 전 대표 등까지 품어줘야 해 당의 화합을 오히려 더 깰 수 있다는 걱정을 내비친다. 유 전 의원이나 이 전 대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제 같이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게 친윤계의 입장이다.
특정 정파가 힘이 약해서 상대를 이기는 것이 벅찰 때 연합·동맹·통합의 형태를 만드는 것이 상례이지만 현재 정치적 구도는 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여권 주류 세력이 워낙 강해 구태여 힘을 빌리진 않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또 여권의 가장 강력한 상대인 제1야당 민주당이 여러 리스크에 휩싸인 채 내홍을 겪고 있어 ‘야당 복’만 고려해도 굳이 보수대통합을 추진하진 않을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금태섭 전 의원과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신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는 3지대 위력이 약하다는 점도 여권의 변화를 추동하지 못하는 요인이다. 금태섭, 양향자라는 신당 구심점이 만들어졌지만 현역 의원이 단 한 명도 새로운 세력에 뛰어들지 않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여권은 보수대통합을 통해 옛 동지를 내세우기보다는 참신한 새 인물을 내세워 총선 심판을 받겠다는 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 본인이 ‘0선’인지라 윤석열 정부 전체 이미지와도 일맥상통한다. 대통령실에 근무하던 젊은 행정관들이 일찌감치 내년 총선 출사표를 던지고 있는 것도 이와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읽힌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지금까지 외치 성과를 내밀어 지지율을 끌어올렸다면 최근엔 뜨거운 감자인 수능을 터치하면서도 지지율이 올라가는 성과를 정부가 만들어냈다”며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버텨주는 것을 보면서 여권 전체에 자신감이 붙었고 내년 총선을 통합 형태의 외부 조력 없이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고춧가루 얼마나 매울까
경북 경산에서 여전히 세력을 갖고 있는 최경환 전 부총리나 자신의 고향인 경북 영주에서 적잖은 인지도를 누리고 있는 우병우 전 수석 등 일부 친박 그룹은 국민의힘 공천을 받지 못한다면 무소속 출마를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본다. 무엇보다 이들은 총선을 통한 명예회복에 대한 의지가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의 가장 큰 걱정은 공천에서 탈락한 이들이 반발 심리를 갖고 대거 무소속 출마를 강행, 친박 그룹과 손을 잡는 장면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부분이다. 이렇게 된다면 여당 후보와 친박을 표방하는 무소속 후보가 표를 분점하는 상황이 여러 지역구에서 나올 수 있어 민주당에 어부지리를 내주는 격이 될 수 있다. 심지어 국민의힘 텃밭인 대구경북에서조차 지명도 있는 민주당 후보가 나온 상태에서 여당 성향 무소속 후보가 나오면 자칫 민주당 후보가 승리를 가져갈 수도 있다.
김용남 전 새누리당 의원은 7월 4일 YTN라디오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에 전화 출연해 “민주당도 분화 가능성이 상존하지만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라면서 18대 총선 당시 등장했던 무소속 친박 연대가 재차 나타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는 “최 전 총리나 박근혜 정부 핵심으로 활동했던 분들도 그런 것까지 염두에 두고 계신 것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무소속 고춧가루 부대에 대한 이런 저런 걱정이 있기는 하지만 과한 우려라는 목소리가 일단은 더 크다. 최 전 부총리나 우 전 수석 등 고향에서 인지도가 높은 중량감 있는 인물이 개인전으로 선거를 치러 무소속 당선이 될 수는 있겠지만 친박 간판을 내건 ‘단체전’으로는 명분부터 약해 선거 경쟁 수행이 어렵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역할을 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데다 설사 다른 동기가 생겨 나선다 해도 파괴력이 없다는 전망이 주를 이룬다. 결국 전국 선거 판세에 영향을 끼칠 만한 친박의 재등장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박지원 추미애 전 의원 등 민주당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목격되듯이 몇몇의 ‘올드보이’가 정치에 재도전하는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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