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협의회 중 원고 작성해 즉흥 발표, 대통령실과도 협의 안 거친 듯…민주당 “명백한 직권남용” 공세
#원희룡 "정말 필요하면 다음 정부에서 하라"
7월 6일 정부와 국민의힘은 국회에서 긴급 당정협의회를 열었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일가가 소유한 땅 근처로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을 변경하려 했다는 특혜 의혹과 관련해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국민의힘은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김정재 강대식 서범수 유경준 정동만 의원 등이 참석했다. 정부에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백원국 국토부 2차관, 이용욱 국토부 도로국장 등이 자리했다. 이날 협의회는 비공개로 1시간가량 진행됐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당정협의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사업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원 장관은 “아무리 팩트를 얘기하고 아무리 노선을 설명해도 이 정부 내내 김건희 여사를 악마로 만들기 위한 민주당의 가짜뉴스 프레임을 우리가 말릴 방법이 없다”며 “서울-양평 고속도로에 대해선 노선 검토뿐 아니라 도로개설사업 추진 자체를 이 시점에서 전면 중단하고 이 정부에서 추진됐던 모든 사항을 백지화하겠다”고 말했다.
원 장관은 “이 노선이 정말 필요하고 최종 노선이 있다면 다음 정부에서 하라”며 “그 과정에 대해서는 나중에 열심히 일한 실무 공무원을 골탕 먹이지 말고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이 처음부터 관여하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그는 “제가 김 여사 땅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이 사건이 불거지기 전 조금이라도 인지했다면, 노선 결정 과정에 김선교 전 의원이 양평 나들목을 만들어달라는 것을 상임위에서 검토하겠다 한 것 외에 더 구체적으로 노선에 관여한 사실이 있다면, 이와 관련된 권력층이든 의원이든 민간이든 연락이나 청탁 압력을 받은 사실이 있다면, 제 휘하 업무 관여자들에게 구체적으로 보고받거나 지시받은 게 있다면 저는 장관직을 걸 뿐만 아니라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강조했다.
원 장관은 “민주당은 더 이상 추측과 정황만으로 찔끔찔끔 소설 쓰기로 의혹 부풀리기에 몰두하지 말고 자신 있으면 정식으로 국토부 장관인 저를 고발하라. 수사에 응하겠다. 고발 수사 결과 민주당이 제기한 의혹들이 근거가 없고 무고임이 밝혀지면 민주당은 간판을 내리라”고 했다. 발언을 마친 뒤 떠나면서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향해 “민주당 간판 걸고 한 판 붙자”고 제안했다.
원희룡 장관 발언은 비공개 당정협의회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되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협의회에 참석했던 한 의원은 “가짜뉴스에 대응하기 위해서 팩트를 확인하는 것을 위주로 이야기했다. 여러 가지 의견들이 단편적으로만 나왔다. 사업 전면 백지화도 일부 논의가 되긴 했다. 다만 시간이 짧아서 어떤 구체적인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결론을 내릴 것인가 했을 때, 권한과 책임이 국토부에 있으니까 원 장관이 고민하고 정리해서 발표하기로 했다”며 “(원 장관 발언은) 미리 써온 건 아닌 것 같다. 회의 진행 중에 원 장관이 손 글씨로 열심히 쓰더라”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에서도 원희룡 장관 발언에 선을 그었다. 7월 6일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원 장관 결정에 대통령 지시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지역 숙원 사업인데 여러 가지 근거 없는 주장 때문에 정쟁에 휘말리는 것을 원 장관이 안타깝게 생각한 것 같다”며 “말씀한 부분에 대해선 제가 구체적으로 알고 있지 못하다”고 답했다.
7월 7일 원희룡 장관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최종 백지화 결정을 독자적으로 내렸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다”라고 답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논의했느냐는 질문엔 “아니다”라고 했다. 원 장관은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은 대통령 공약사업이었는데, 제가 공약을 만든 정책본부장이다. 대통령을 흠집 내기 위해 여사님을 계속 물고 들어가는 민주당의 날파리 선동 프레임”이라며 “이 점에 대해서는 장관은 정치적 책임까지도 지는 것이고, 책임을 묻는다면 인사권의 책임까지도 각오하고 고뇌 끝에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사석에서 “3선 양평군수 출신인 김선교 전 국민의힘 의원이 직접 자신이 노선을 변경해달라고 했다고 발표했다. 원 장관은 이 문제에서 책임이 없을 것”이라며 “원 장관 입장에선 이번을 계기로 장관 자리에서 물러나면 내년 총선에 나갈 수 있으니까 좋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총선 출마까지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취지로 읽힌다.
#이재명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래서는 안돼"
7월 6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사업 전면 백지화 발표에 대해 “일국의 장관이 감정 통제를 못 하고 국책사업에 대해 감정적 결정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며 “(논란은) 양서면에서 강상면으로 고속도로 위치를 옮기는 게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문제가 없으면 그냥 시행하고, 문제가 있으면 원안대로 시행하면 된다. 화난다고 수조 원짜리, 수년간 논의해서 결정했던 국책사업을 아예 안 하겠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래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국토부는 이번 사업 백지화에 따른 매몰 비용은 용역비용인 10억 원대일 것으로 추정한다. 공사가 아직 진행되지 않은 단계라 직접적인 손실은 크지는 않다는 것. 다만 약 6년간 사업 추진에 투입된 각종 사회적 비용이 순식간에 없던 일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7월 7일 민주당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 진상 규명 TF와 국토교통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원희룡 장관 결정에 대해 “독재적 발상이며 명백한 직권남용”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고속도로의 시점과 종점이 뒤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그런데 바뀐 종점이 김건희 여사 일가의 토지 인근으로 변경된 건 누가 봐도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떤 법적 근거와 권한으로 1조 8000억 원 예산 사업을 한순간에 날린 것인가. 지역의 숙원사업이었던 고속도로 건설사업을 도대체 왜 중단하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반면 여당은 민주당 책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7월 7일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민주당의 아니면 말고식 의혹제기로 최대 피해는 양평군민이 보게 됐다”며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중단의 책임은 오로지 민주당이 져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국토부가 김건희 여사 일가에 특혜를 주고자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은 2017년 1월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고속도로 건설 5개년 계획(2016~2020)’에 포함됐다. 이후 2019년 3월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사업에 선정됐고, 2021년 4월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 추진이 확정됐다. 2022년 6월 전략환경영향평가 용역 공고에서도 종점은 양서면이었다.
그런데 5월 8일 국토부가 공개한 전략환경영향평가 항목 등의 결정 내용에서 고속도로 종점이 ‘양평군 강상면’으로 변경됐다. 김선교 전 국민의힘 의원(경기 여주시·양평군)이 2022년 8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원희룡 장관에게 IC(나들목) 신설을 요구한 것이 계기가 됐다. 문제는 김 여사 일가가 변경된 종점에서 500m 떨어진 지점에 축구장 3개 넓이(2만 2663㎡)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관련기사 [단독] “4년 임기 동안 없었던 노선” 전직 양평군수가 본 김건희 일가 부동산 특혜 의혹). 민주당 등이 문제를 삼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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