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피의자 전원 보석, 대검은 서울청장 기소 제동…“트라우마 고통” 현장 책임자들은 기소선상
#참사 책임으로 구속된 사람 없어
"159명의 희생자를 낳은 참사의 대비 및 대응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간부들이 모두 석방되고 처벌은 여전히 제자리입니다. 재판부는 유족과 피해자의 참담한 심정을 헤아려 주십시오."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 경찰을 지휘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 서장과 송병주 전 용산서 112상황실장이 구속 약 6개월 만인 7월 6일 보석으로 풀려나자 유가족들은 곧 입장을 내고 비통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 전 서장 등이 석방되며 이태원 참사 책임으로 구속된 사람은 이제 한 명도 없게 됐다.
앞서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배성중)는 6월 7일에도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구속된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최원준 전 안전재난과장의 보석을 허가했다. 이태원의 핼러윈 대규모 운집을 예상한 정보보고 삭제 등 혐의로 구속된 박성민 전 서울청 공공안녕정보부장과 김진호 전 용산서 정보과장도 같은 달 11일 풀려났다.
재판은 진행 중이므로 최종 책임의 무게는 지켜봐야 할 상황이지만 유족들은 갈수록 착잡함을 못 감추고 있다. 피의자들이 전부 잘못을 외면하는 것은 물론, 최근에는 한 보수단체가 박 구청장에 사퇴를 촉구한 유족들을 출근길 업무방해 이유로 고발하는 등 법원의 석방조치 후 또 다른 상처들이 새겨지고 있어서다.
박 구청장과 이 전 서장은 석방 후 각각 한 차례씩 진행한 재판에서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이 전 서장은 7월 10일 재판에서 "무전 속 인파 소리만으로 참사를 인지하기 힘들었다"고 주장했다. 박 구청장은 6월 26일 재판에서 '참사 직전 확대간부회의 등에서 안전 관련 지시가 있었는지' 등을 추궁하는 검찰 질문에 "기억이 안 난다"는 취지로 답했다.
#이상민 탄핵심리 기다리나
이들의 불구속 재판을 향한 유족과 시민사회의 비판이 단지 불쾌감 때문만은 아니다. 현재 피의자들의 죄의 무게를 가볍게 해줌으로써 윗선에 책임을 묻기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실제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에 이어 김광호 서울청장에 대한 수사도 마치 '간보기' 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김 청장은 2022년 경찰청 이태원 특수본 수사에 따라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으나 약 8개월째 처분이 미뤄지고 있다. 서울서부지검이 불구속 기소로 가닥을 잡았으나, 대검찰청이 추가 법리 검토 필요성 등을 이유로 최근 보완을 지시했다고 알려졌다.
업무상과실치사상은 사고의 '예견 가능성'을 중요하게 본다. 대검은 서울 경찰을 책임지는 김 청장이 이태원 참사를 예견할 수 있었는지에 회의적인 시각이란 분석이다. 이에 따라 김 청장이 불기소되면 그보다 윗선인 이 장관과 윤 청장은 자연스럽게 책임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대검이 헌법재판소의 이 장관 탄핵심리를 보고 정무적 판단을 내리려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김 청장을 기소하면 이 장관이 탄핵심리 도중 책임론에 또 휩싸일 수 있어 처분을 보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 장관 탄핵 여부가 어떻게 되는지 헌재의 법리 분석 등을 확인한 뒤 김 청장 기소를 따져보려는 계산이란 시각도 있다.
#윤희근 청장 책임도 가볍지 않은데…
이런 가운데 경찰의 수장인 윤 청장의 경우 책임론에서 거의 제외된 분위기마저 비친다. 윗선 가운데 유일하게 검찰이나 법정에 서지 않은 상태다. 2022년 11월 이태원 특수본의 집무실 압수수색이 이뤄지고, 2023년 1월에는 국회 국정조사에서 '이태원 유족 명단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해 위증죄로 고발당했으나 약 3개월 만에 불송치 결정을 받았다.
하지만 윤 청장의 책임도 가볍지는 않다. 그는 2022년 핼러윈에 휴가를 내고 충북 제천 캠핑장에서 술을 마시다 참사 발생 이후 두 번이나 보고를 놓쳤다. 캠핑장은 '닷돈재'라는 곳으로 알려졌는데 윤 청장의 체크인 기록이 없어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당시 캠핑에는 충북청과 제천서 소속 경찰관 4~5명이 윤 청장과 함께 있었다고 전해졌다. 단 '캠핑장을 누구 명의로 예약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경찰청은 논란 직후 "캠핑장이 아닌 곳에서 잤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수사가 말해줄 것"이라고 밝혔으나 여전히 말이 없는 상태다.
#현장 수습하고도 피의자 된 용산소방서장
수사가 이도 저도 아닌 식으로 전개되며 고통이 더해진 쪽은 또 있다. 사고 현장을 직접 수습하고도 피의자가 된 이들이다.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참사 발생 4시간 전부터 이태원을 지켰으나 소방대응 발령 등이 늦었다는 이유로 송치됐다. 적극적인 구호 활동을 폈음에도 입건되자 시민사회의 응원과 격려가 따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약 8개월째 기소 여부가 결정되지 않아 불안 속에서 내내 업무를 수행 중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최 서장의 기소 여부를 일종의 딜레마로 바라본다. 수사 선상에 오른 인물 가운데 현장 대응에 가장 적극적이었다는 점에서 기소가 무리하게 비칠 수도 있으나, 경찰관들을 재판에 넘긴 이상 소방 책임자를 불기소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구조 활동에 있어서 소방은 책임기관, 경찰은 지원기관이다.
최 서장은 일요신문에 "검찰 송치 후 3번의 소환조사를 받았지만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다"며 "용산소방서장 임기가 6월 말로 끝났는데 검찰 발표가 늦어 아직도 소방서를 떠나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매일 매일을 초조한 상태로 보내며 서서히 트라우마 증상까지 나타나고 있다"며 "그날의 참상 등 모든 것을 잊고 싶을 뿐"이라고 토로했다.
이태원파출소 순찰팀장도 최 서장과 같은 상황이다. 그는 참사 현장에서 피해자들의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위급환자 이송까지 도맡았다. 그러나 신고자 상담을 하지 않았음에도 전산에는 이행한 것으로 입력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넘겨져 아직까지 기소 여부를 기다리고 있다.
이 순찰팀장은 검찰 조사에서 "신고가 너무 많아 시스템이 과부하돼 접수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때 놓친 상담들이 '이행'으로 자동 처리됐다"고 진술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그 역시 심각한 스트레스에 건강이 악화했다고 한다. 동료 경찰관 100여 명이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돕고 있지만 결과는 알 수 없다.
그의 한 동료 경찰관은 "해당 순찰팀장은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가 사람들을 구조하고 경력 지원도 적극적으로 요청했으며 전부 CC(폐쇄회로)TV 등으로 확인 가능한 사항"이라며 "그 사이 자느라 중요한 보고를 놓친 총책임자 등은 수사조차 받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참담한 심경"이라고 털어놓았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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