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연합뉴스 |
지난 7월 24일 웅진코웨이 지분 60%를 KTB 사모펀드가 인수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지난 2월 초 매각을 발표한 지 5개월이 넘는 동안 설왕설래했던 웅진코웨이 매각이 마침내 일단락된 것이다. 웅진코웨이 매각 대금은 9600억 원. 웅진 측은 웅진홀딩스 차입금 상환에 5000억 원을 투입하고 나머지로는 극동건설을 정상화시키는 등 이 돈을 그룹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 웅진코웨이 정수기 광고. |
그러나 웅진코웨이 매각 과정에서 보여준 윤석금 회장의 모습은 이전과 달랐다. 아무리 흥행을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사실이 아닌 정보를 슬쩍 흘린다거나 인수 희망 업체에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 얘기가 들린다는 것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단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명쾌하지 않았다는 것이 큰 오점으로 남는다. M&A업계 관계자는 “골드만삭스의 언론플레이에 대해서는 이미 좋지 않은 평이 업계에 파다하다”며 “이번 건에서도 잘못된 정보가 톱기사로 다뤄진 경우가 많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웅진코웨이 매각과 관련, 당초 유력한 우선협상대상자로 GS리테일이 떠올랐다. 롯데와 신세계 등 유통 강자들도 유력 후보로 거론됐지만 롯데는 하이마트 인수로 여력이 없었던 데다 신세계는 아예 인수전 불참을 선언해버렸다. 그렇기에 남는 곳은 GS리테일뿐. 업계에서는 GS리테일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직전까지 갔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다 갑자기 중국 콩카그룹이 부상했다. 웅진코웨이 인수전이 본격화됐을 때 콩카그룹의 일정에 따라 매각 측이 일정을 연기한다고 할 정도로 웅진코웨이 인수를 강력히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로 콩카그룹은 웅진코웨이 인수에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콩카그룹은 몇 년째 수백억 원의 손실을 보는 적자기업이어서 1조 원이 넘는 웅진코웨이를 인수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웅진과 골드만삭스에 의혹의 눈초리가 쏟아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인수전 흥행을 위해 웅진과 골드만삭스가 무리하게 일을 벌인 것으로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윤석금 회장의 ‘변심’도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윤 회장의 심정이 지난 2월 ‘사업구조 개선안’을 발표했던 때와 달라졌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쉽게 말해 윤 회장이 웅진코웨이를 팔기 싫어졌다는 것이다. 한 재계 인사는 “매각 주관사가 있기는 하지만 프라이빗 딜에서 대부분 결정은 결국 오너가 한다”며 “도장을 찍기 전까지는 욕을 먹더라도 어떤 결정이든 오너의 자유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 지난해 공공기관 선진화 워크숍에 참석한 윤석금 회장(왼쪽서 두 번째). 최근 웅진코웨이 매각 과정에서 오락가락 행보를 보여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주력하기로 한 태양광사업 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것도 윤 회장이 웅진코웨이 경영권을 유지키로 ‘변심’한 배경 중 하나로 해석된다. 태양광업체들의 공급계약 해지와 파기가 잇따른 가운데 웅진에너지 역시 대규모 공급계약이 몇 차례 파기된 바 있다. 지난 7월 17일에는 585억 원에 달하는 계약이 해지되기도 했다.
결국 윤석금 회장은 웅진코웨이 경영권을 지킬 수 있게 됐다. 4년 후 매각한 지분을 되사올 수도 있다. KTB 사모펀드는 당초 교원그룹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웅진코웨이 인수전에 참여했으나 웅진 측이 경쟁사인 교원에 매각하는 것에 난색을 표하자 단독으로 참여했다. KTB 측은 “교원과 컨소시엄에 대해서는 그쪽(웅진)에서 의사결정을 한 것”이라며 “투자자로서 단독으로 참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록 지분 매각이 결정됐으나 잡음은 여전하다. 지분을 인수하기로 한 KTB 사모펀드의 적격성이 불거지고 있는 것. KTB는 부실과 비리의 온상이었던 부산저축은행 대주주로서 경제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웅진홀딩스와 KTB 측은 모두 “현재 마무리 절차만 남은 상태”라고 답했다. 설사 순조롭게 마무리된다 해도 유입되는 자금은 1조 원이 채 되지 않는다. 1조 5000억 원을 마련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려 했던 것을 1조 원이 안 되는 자금으로 해결하려 하니 당연히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나은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그룹 재무 부담 및 최대주주 관련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은 점, 적극적 구조조정을 통한 기업 가치 제고 기대감 희석, 시장 신뢰 훼손 등은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웅진코웨이의 손자회사인 웅진케미칼 매각설이 불거진 까닭도 여기에 있다. 웅진홀딩스 측은 “웅진케미칼 매각 계획이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웅진홀딩스 관계자는 “지분 매각 자금으로 재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리가 없다”며 “완전 매각 시 1조 3000억 원으로 예상했던 것을 60% 매각만으로 9600억 원을 마련했으니 되레 더 비싸게 매각한 셈”이라고 말했다.
그룹 재무구조 악화의 원인 중 하나가 된 극동건설이 과연 정상화될지도 관건이다. 현재까지는 부정적인 시선이 더 강하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원래 극동건설을 매각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자 웅진코웨이를 내놓은 것 아니겠느냐”며 “대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서는 극동건설의 가장 큰 걸림돌로 ‘핵심경쟁력이 없다’는 점을 꼽고 있다. 국내 건설경기는 캄캄하고 해외에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마당에 핵심경쟁력이 없는 건설사는 국내외에서 힘들 수밖에 없다는 것. 건설 전문가가 많지 않다는 것도 극동건설의 단점으로 지적된다.
웅진은 내부적으로 웅진씽크빅과 웅진패스원 합병이 무산돼 골머리를 앓는다. 웅진은 태양광사업 투자와 함께 교육사업에서 새로운 성장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이 합병을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합병을 반대하는 주주들이 무려 433억 원어치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이 같은 점을 예상치 못한 웅진 측은 자진해서 합병을 철회했다. 윤석금 회장은 M&A에서 또 한 번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웅진그룹과 윤석금 회장에 대한 신뢰는 적잖이 추락했다. 지난 2월과 입장도 변화했다. 매각하겠다는 웅진코웨이는 투자 유치나 마찬가지로 돌변했고 올인하겠다는 태양광사업에는 당분간 설비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극동건설 인수로 ‘M&A 귀재’라는 명성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윤석금 회장은 최근 M&A에서 잇따라 불분명한 모습을 보이면서 시장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딜로 급한 불은 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웅진홀딩스 관계자는 “재무건전성을 확보하는 게 우선 아니냐”며 “이를 토대로 사업을 펼쳐나가는 게 순리”라고 반박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 2012년 2월 6일 웅진그룹, 웅진코웨이 매각 발표.
- 2월 8일 매각 주관사로 골드만삭스 선정. 프라이빗 딜로 매각 추진. 롯데, 신세계, GS리테일 등 인수 유력 후보로 등장.
- 6월 15일 중국 콩카그룹 사정으로 매각 일정 연기, 상반기 마무리 계획 무산. 인수 후보로 GS레테일, 중국 콩카, MBK파트너스 거론.
- 6월 말 본입찰 실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계속 연기.
- 7월 6일 우선협상대상자로 사실상 GS리테일이 선정됐다는 소문 유포.
- 7월 13일 중국 콩카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거의 확정됐다는 소문 유포.
- 7월 18~19일 콩카그룹 적자기업으로 밝혀짐. 콩카그룹이 인수 의사 없었다고도 알려짐.
- 7월 24일 KTB 사모펀드에 웅진코웨이 지분 60% 매각 결정. 웅진의 경영권 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