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혜 (실명: 다구치 야에코). |
수사관들은 김현희를 심문하면서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었다.
“은혜 선생은 일본사람이 틀림없습니다.” 김현희는 단호하게 말했다.
“어떤 점에서 일본 사람이라고 생각해? 예를 들어 볼 수 있어?”
“이따금 리은혜는 일본에서 자기가 학교 다닐 때 자신이 살던 동네에 조선인들이 몇 가구 살고 있었으며 학급 친구들 중에도 조선아이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것은?” “조선 사람들은 식사 후에 물을 입에 넣고 입가심을 한 뒤 그 물을 그대로 삼켜 더러워, 이런 말도 했습니다.” 이은혜는 김현희와의 대화 도중에 가끔 조선사람 흉을 봤다는 것이다.
“밥을 국이나 물에 말아 먹어서 지저분해 보여.”
“물건 크기를 표시할 때 손으로 팔뚝이나 손목을 잡고 크기를 나타내기 때문에 망측스러워.”
김현희는 이은혜가 했다는 말을 하면서 일본인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은혜가 말했던 이런 내용들은 후에 김현희가 우리에게 잡혀온 직후 일본인으로 거짓 행세를 할 때 그대로 수사관들에게 했던 말들이었다.
“아무리 공작원 교육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외국인인 일본 사람을 납치하여 일본어 교육을 시킨 것은 지나치지 않아? 죄의식이나 미안함이 없었나?”
“공작원 교육을 받을 당시에는 워낙 사상교육이 철저했던 때여서 우리나라의 분단에는 일본도 막중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임 있는 일본인이라면 한반도 통일을 위한 혁명 사업에 그 정도의 대가나 희생은 마땅히 치러야 한다고 배웠고 또 그렇게 믿었습니다.”
김현희가 대답했다. 우리는 납치마저 합리화시켜 아무런 죄책감 없이 말하는 김현희를 보며 인간의 기본적인 인간성과 윤리의식마저 말살된 모습에서 섬뜩함과 동시에 가여움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북한 사람들이 저 정도까지 의식이 세뇌되어 있다면 과연 통일 후 남과 북의 사람들이 아무런 갈등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의구심도 들었다.
▲ 김현희가 2009년 3월 11일 일본인 납북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이은혜)의 오빠인 이즈카 시게오와 아들 이즈카 고이치로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또 일본의 일상생활에 대한 교육으로는 밥공기나 국그릇은 손에 들고 먹는다는 등의 식사 예절부터 여성들의 화장법, 옷 입는 법과 함께 특히 술시중 드는 법도 배웠는데 이것은 일본에 침투하여 정착하려면 가장 쉬운 곳이 술집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매우 빡빡한 교육 일정 속에서 하루 5시간 정도만 잘 뿐 하루 내내 이은혜와 같이 있으면서 일본어로만 대화하고 생활해야 했다. 공작원 교육이 아무리 규율이 엄격한 생활이라고는 하지만, 1983년 3월까지 1년 8개월간 늘 같이 붙어 지내면서 둘은 매우 친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김현희와 5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같이 지냈지만 이은혜와 김현희의 관계와는 또 달리 우리는 수사관과 범인과의 관계였다. 나는 혹시 잘못되기라도 할까봐 늘 긴장 속에서 감시와 보호를 해야 했고, 비록 곁에서 아무리 사소한 것까지 챙겨주었다고는 하지만 수사관으로서의 권위를 가지려고 했기 때문에 친구처럼 편하게 다가가지는 못했다. 김현희 역시 자신의 처지가 나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가끔은 흉허물 없이 지내기도 했지만 나에게 결코 속내를 털어놓지는 않았다. 그래서 어쩌면 나와의 5년보다 이은혜와의 1년 8개월간의 기간 동안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더 친밀감을 갖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현희는 담당 지도원으로부터 이은혜는 어디까지나 일본인이기 때문에 속까지 다 주면 안 되니 지킬 것은 지키라고 하여 서로 개인적 신분에 대해선 비밀에 부쳐 말하지 않았지만 초대소에서 일을 도와주는 식모를 통해, 또 가끔은 이은혜의 입을 통해 그녀의 신상에 대해 알았다고 했다.
김현희가 말하는 이은혜의 신원은 일본 도쿄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결혼하여 아들과 딸 하나를 낳은 뒤 이혼했고, 그 후에는 아마도 술집 같은 데서 일한 걸로 알고 있는데 1979년 경 해변을 거닐다가 북조선으로 납치되었다고 했다. 납치당한 직후에는 한동안 울며불며 밥도 안 먹고 반항했지만 곧 체념하고 적응해 갔다는 얘길 들었다고 했다.
‘이은혜라는 여자가 불쌍하구나.’
나는 강제로 납치되어 북한에서 살고 있는 이은혜를 생각하자 동정심이 일어났다. 이은혜의 옷장에는 일본에서 납치당해 올 때 입었던 옷이 걸려 있었는데 이은혜가 말하길 작은 배를 타고 올 때 멀미가 심해서 무척 고생하였다고 했다.
또 이은혜는 고등학교 시절에는 테니스 선수였으며 그때 허리를 다친 적이 있었는데 김현희와 있을 당시 테니스 선수 시절 다친 허리가 재발하여 보름 정도 공작원 전용 병원인 9·15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병원에 있으면서 이은혜는 음식 조절을 안해서인지 살이 쪘는데 남한에 와서 일본경찰이 보여준 이은혜 사진을 보니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와 비슷하게 살찐 모습이었다고 한다.
평소 초대소에서 이은혜는 아침에 아주 적은 양의 식사와 블랙커피를 마셨는데 처음엔 그 이유를 몰랐으나 나중에 그것이 다이어트를 위한 것이라는 걸 알고 김현희 자신도 따라서 쓴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서 속이 쓰려서 블랙커피를 덜 먹었다고 했다. 김현희는 나와 함께 조사실과 안가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블랙커피는 거의 마시지 않았고 달콤한 자판기 커피를 좋아했다.
“이은혜에게 신체적 특징이 있었어?”
“어떤 거 말이에요?”
“몸에 점이 있다든가….”
“그런 것은 없어요.”
김현희는 이은혜의 몸 전체에 잔털이 많았는데 일본여자와 서양여자는 솜털이 많아 대부분 면도를 하는 편이라고 하면서 가끔 얼굴 면도를 했다고 말했다. 김현희에게도 얼굴을 면도할 것을 권했는데 북한 여성들은 얼굴 면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싫다고 거절했다.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여서 얼굴 면도를 하면 화장이 잘 받는다는 말이 있는데도 대부분의 한국 여성들은 얼굴 면도를 하지 않는다.
김현희는 이은혜의 신체에 대해 묘사해 주었다. 그녀는 이은혜와 함께 가끔 목욕한 적이 있는데 몸에 비해 허리가 굵고 유두가 검고 컸던 걸로 봐서 신체적으로 아기를 낳은 여성의 몸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이은혜가 가족들 이야기는 안 했어?”
“안했어요. 아이들이 있다고 했는데….”
이은혜는 가끔 멍하게 창밖을 응시하는가 하면 술을 먹으면서 눈물을 흘리곤 했는데 아마 아이들이 보고 싶어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이은혜와 술도 마셨나?”
“가끔이요.”
“술자리에서 행동은 어땠어?”
“술집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듯 술도 잘 먹고 지도원들과도 술을 먹으면서 잔이 비면 얼른 따라주고 음담패설 같은 농담도 잘했어요. 지도원들과도 잘 어울렸어요.”
나는 김현희의 진술을 들으면서 이은혜의 모습을 막연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자신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북한 땅에 납치되어서 지도원들과 어울리는 그녀의 모습을 생각하자 가슴이 아팠다. 이은혜에게 그것은 생존 방법일지도 몰랐다.
김현희는 이은혜가 갈증 해소에는 맥주가 좋다고 권해서 같이 맥주를 마신 일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가끔 우리와 대화하는 중에 이은혜가 술집에 나갔기 때문인지 행동이 단정하지 못했고 화장도 너무 진하게 하여 천박해 보였다고 은근히 얕보는 느낌의 말을 하곤 했다.
명절인가 어느 날에는 쉬면서 술을 먹고 취한 이은혜와 함께 TV를 보고 있었는데 이은혜는 취중에 자기가 김정일 생일 축하연회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최혜옥이라는 공훈가수가 옷 벗기 게임에 계속 져서 옷을 벗게 되어 민망했으며, 그 자리에는 자기처럼 끌려온 것으로 보이는 일본인 부부도 있었다는 얘기를 하면서 절대 비밀이니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애원했다고 했다.
‘지도자 동지가 그런 지저분한 행동을 할 분이 아닌데….’
김현희는 이은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긴가민가했다고 했다.
또 일본어 교육을 위해 일본 잡지를 보던 중 ‘야마구치 모모에’라는 여자 가수가 나오자 이은혜는 자기가 이 여자 가수를 좋아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 연예인과 결혼하는 바람에 싫어졌다는 얘기를 했다고 했다. 김현희의 이 진술이 일반에 공개되자 누군가가 김현희에게 야마구치 모모에의 노래 테이프를 선물로 주었다. 김현희는 매우 좋아하면서 안가에서 카세트로 자주 들었는데 자꾸 듣다보니 나 역시 그 중 몇 곡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자 김현희는 ‘언니는 어느 노래가 좋으냐’고 하면서 노래 가사를 적어 주어 함께 따라 부르기도 했다.
야마구치 모모에는 1975년에 방송된 <붉은 의혹>(赤い疑惑)에서 백혈병을 앓는 소녀로 등장해 최고 시청률 30.9%에 이르는 인기를 끈 배우 겸 일본의 1세대 아이돌 가수다. 일본에서 시청률 30%라면 한국에서 50%나 마찬가지다. 1982년 중국에서 처음 방송된 드라마 <혈의>(血疑)는 그녀를 중국에서도 일약 스타로 만들었을 정도다.
이은혜는 일본의 가수이자 탤런트인 사와다 겐지라는 남성 연예인을 매우 좋아했는데 얼마나 좋아했던지 초대소에서 기르던 누렁이 개에게 사와다 겐지의 ‘쥬리’라는 애칭을 붙여주고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고 했다.
김현희는 이은혜로부터 일본인화 교육을 받으며 각별한 정을 나누며 지내다가 83년 3월 중순, 어느 정도 일본인화 교육이 끝났다고 판단하였는지 다른 초대소로 옮겨지면서 이은혜와 헤어지게 되었다.
정리=이수광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