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기기 반납 나흘 만에 숨져 “착용 강제할 순 없어”…GPS 오차 심해 출동 지체되자 ‘기술 개선 시급’ 지적
스마트워치는 위치추적 겸 비상호출 장치로서 보복 우려가 있는 피해자에게 지급된다. 그러나 스마트워치로 신고해 경찰이 빠르게 현장에 출동했음에도 안타깝게 피해자가 살해당한 사건도 있었다. 그리고 와이파이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신호가 약한 곳에서는 위치 오차가 심해서 경찰의 현장 도착이 늦어지는 등 스마트워치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꾸준히 생겼다. 이에 가해자에게도 위치추적 장치를 달아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으며, 스마트워치 성능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잠정조치 받은 가해자 ‘스토킹 살인’
인천 논현경찰서에 따르면 30대 남성 A 씨는 7월 17일 오전 5시 54분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한 아파트에서 옛 연인이었던 30대 여성 B 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B 씨는 심정지 상태로 숨졌고 A 씨는 범행 후 자해를 시도해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범행을 말리던 B 씨 어머니도 A 씨가 휘두른 흉기에 양손을 다쳤다.
조사 결과, A 씨와 B 씨는 보험설계 일을 하고 있으며 같은 직장 동료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이들은 연인 사이였다가 헤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A 씨는 헤어진 뒤 지속적으로 B 씨를 스토킹했다. A 씨는 2월 19일 자신의 주거지 소재인 경기 하남시에서 B 씨를 폭행해 경찰에 112 신고가 접수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A 씨의 스토킹이 지속되자 B 씨는 6월 2일 경찰서를 찾아 스토킹 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A 씨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지만 같은 달 5일 고소를 취하했다.
A 씨는 스토킹 사건으로 수사받는 중이었던 6월 9일 다시 B 씨 집 주변을 배회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당시 경찰은 A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으며, A 씨는 조사 받은 지 4시간 만에 석방됐다. 경찰은 인천지방법원에 잠정조치 신청을 했는데, 법원은 A 씨에게 6월 10일부터 8월 9일까지 “B 씨로부터 100m 이내에는 접근하지 말고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도 금지하라”는 내용의 2∼3호 잠정조치 명령을 내렸다.
#스마트워치 지급한들 ‘무용지물’
경찰은 피해자 B 씨가 고소장을 제출했을 때 그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했다. 또한 B 씨의 휴대전화 번호는 관련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이 더 빠르게 출동하는 ‘신변보호 112 시스템’에도 등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B 씨는 사건 발생 나흘 전인 7월 13일 경찰에 스마트워치를 반납한 것으로 밝혀졌다. A 씨가 B 씨에게 연락하거나 접근하는 등의 행위가 없어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했기에 B 씨가 직접 방문해 반납했다고 경찰 측은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보복이 우려되는 피해자 모두에게 강제로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게끔 조치할 수는 없다”며 “피해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스마트워치를 지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건도 피의자에게 전자발찌 같은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한 게 아니다 보니 접근금지 조치를 어겨도 사실상 미리 알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음에도 피해 여성을 찾아가 범죄를 저지른 사례는 최근에도 있었다. 지난 2월에는 피해자의 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를 절단한 뒤에 피해자를 납치한 사건이 발생했다. 20대 남성 C 씨는 지인 D 씨와 함께 “두고 온 짐을 빼러 가겠다”며 2월 12일 새벽 서울 강남구에 있는 옛 연인 E 씨 집에 찾아갔다. 그 뒤 E 씨를 폭행하고 납치해 차량에 가뒀는데, 납치 과정에서 E 씨의 스마트워치를 자른 뒤에 인근 화단에 버렸다.
전북 익산에선 가정폭력으로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전 남편이 전 부인의 집에 찾아가 불을 지르고 투신한 사건도 있었다. 5월 4일 오전 60대 남성 F 씨는 3년 전 이혼한 전 부인 G 씨의 원룸으로 찾아가 인화성 물질을 뿌리고 불을 냈다. F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고, G 씨는 전신화상으로 중상을 입었다. 경찰은 스마트워치를 통한 G 씨의 신고를 받고 5분여 만에 현장에 도착했으나 상황은 이미 끝나 있었다.
잠정조치를 받은 스토킹범이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것은 물론 살해하는 일이 여러 번 생기자, 가해자에게도 스마트워치나 전자발찌 등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채우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실제로 미국, 스페인, 프랑스 등에서는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한 사람에게 위치추적기를 채운다. 6월 21일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이 국회를 통과해 판결 전에도 스토킹 가해자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등)를 부착할 수 있게 됐는데, 공포 6개월 후인 2024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GPS 오차 심해 출동 헤매기도
GPS나 와이파이 신호를 받기 힘든 곳에는 위치 오차가 많이 발생해 경찰이 엉뚱한 위치로 출동하는 사례도 있어 성능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2021년 11월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스토킹 신변보호 대상이었던 30대 여성 H 씨가 전 연인 김병찬에게 흉기로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 H 씨는 스마트워치로 경찰을 두 차례 긴급 호출했다. 그러나 위치 오차가 너무 커서 경찰은 오피스텔이 아닌 명동에 있다가 첫 신고 시각으로부터 12분 뒤에야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H 씨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사건 현장 도착이 다소 늦어진 데 대해 경찰은 “기술적 결함으로 인해 스마트워치의 위치 값과 피해자의 주거지가 500m가량 떨어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2월 14일에는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50대 스토킹범이 서울 구로구 호프집에서 40대 중국 국적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에도 GPS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사건 발생 전 남성 I 씨에 대해 스토킹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이 기각했다. 유치장에서 풀려난 I 씨는 피해 여성 J 씨에게 바로 접근했다.
J 씨는 I 씨에 의해 흉기에 찔린 오후 10시 12분경 경찰에서 받은 스마트워치를 눌러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4분 만인 오후 10시 16분경 근처에 도착했다. 하지만 범행 현장에 진입한 것은 오후 10시 19분이었다. 경찰은 실내여서 스마트워치에 내장된 GPS가 작동하지 않았고, 와이파이 위치 정보에도 오차가 있었다며 현장 진입이 지체된 이유를 설명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이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가해자를 24시간 감시할 수 없기에 가해자의 위치를 파악해 피해자와의 접근을 막는 것은 힘든 실정”이라며 “법 개정 이후 스토킹범에게도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할 수 있기에 범죄 예방이 수월해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이어 “현재 경찰이 위치값 오차 범위를 대폭 줄이기 위해 통신사 기지국 신호와 공유하는 방안을 구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스마트워치 오차를 줄이기 위한 기술이 상용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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