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럽급여’ 운운하며 축소·폐지 검토…“최소한의 사회 안정망으로 오히려 대상·지급 기간 확대해야” 중론
노동 분야 전문가들은 실업급여 제도는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며, 실업급여가 보장돼야 생계를 유지해 더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부정수급은 정부에서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할 부분인데, 이를 실업급여 제도 축소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12일 실업급여 제도개선을 위한 민당정 공청회를 열었다. 공청회에서는 실업급여 하한액(최저임금의 80%) 하향 또는 폐지, 부정수급 방지를 위한 행정조치 강화, 실업급여 수령 최저 근무기간 연장(180일 →1년) 등이 논의됐다.
실업급여는 노동자가 비자발적으로 일자리를 잃었을 때 재취업활동을 위해 일정 기간 소득을 지원하는 제도다. 실업급여 하한액은 최저임금의 80%(월 184만 원) 또는 전 직장 평균임금의 60%로, 최장 9개월까지 수급 가능하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공청회에서 “실업급여를 받는 게 일해서 버는 것보다 많아지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현장에서는 실업급여가 취업을 촉진하기는커녕 실업급여를 타려고 퇴사와 재취업을 반복하고, 사업주는 퇴사시켜달라는 직원을 달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고 말했다. 박 의장에 따르면 지난해 실업급여 수급자 163만 명 중 28%인 45만 3000명의 최저 월 실업급여는 184만 7040원으로 최저임금 근로자의 세후 월 근로소득(179만 9800원)보다 많다. 이를 근거로 당정은 최저임금과 실업급여의 역전현상이 일어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소장은 “역전현상 주장은 객관적이지 않은 셈법”이라며 “최저임금 수준만 받는 사람들 중에는 4대보험을 다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데 세금 떼는 비율을 일괄적으로 정해 단순 시뮬레이션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기준 세후 월 근로소득보다 실업급여를 더 많이 받은 수급자의 비율이 28%라는 주장은 세금과 사회보험료로 세전 소득의 10.3%가 빠져나가는 것으로 일괄 계산해 나온 수치라는 것이다. 연 소득 2000만 원 이하인 근로자는 실효 세율이 0.1%에 불과해 근로소득세를 거의 내지 않으며, 10인 이하 사업장 근로자들은 사회보험료를 정부 지원금을 통해 해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경우들을 배제하고 모든 대상이 똑같이 세금을 뗄 것이라고 가정해 나온 수치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후 월급 자체가 적게 산정돼 실업급여가 더 많아 보일 수 있다.
김종진 소장은 “최저임금보다 실업급여를 더 많이 받는다는 주장은 거꾸로 말하면 최저임금이 낮다는 것”이라며 “실업급여 하한액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을 향상시키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실업급여는 지원 수준이나 지원 기간에서 아직 선진국 대비 안전망의 수준이 높다고 볼 수 없다”며 “근로자가 근속을 오래하면 할수록 근로자가 고용보험금을 더 내면서 기여하는 부분이 있어서, 이런 것까지 감안하면 단순히 실업급여를 월 급여랑 비교하는 것은 실업급여 제도 개선 논의 초점에 맞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실업급여 축소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는 정치인들은 고용보험금을 한 푼도 내지 않은 사람들”이라며 “노동자가 낸 기금을 가지고 왜 돈도 내지 않은 사람들이 왈가왈부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번 공청회에서는 일부 참석자들이 실업급여 수급자들을 비하하는 발언도 해 논란이 됐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한 보너스라는 뜻으로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말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지방노동청 관계자는 “여성과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들은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온다”며 “실업급여를 받는 도중 해외여행을 가거나 일했을 때 자기 돈으로 살 수 없었던 샤넬 선글라스를 사든지 옷을 사든지 이런 식으로 즐기고 있다”는 말도 했다.
조영훈 직장갑질119 노무사(노무법인 오늘)는 “실업급여를 논의하면서 밝고 명랑한 얼굴, 해외여행, 명품선글라스, 여성, 청년, 이런 얘기들이 대체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성실하게 구직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모욕하는 말”이라고 말했다. 김종진 소장은 “공짜로 받는 것도 아니고, 직장 다니면서 낸 고용보험금을 토대로 실직했을 때 실업급여를 받는 것”이라며 “근로자가 낸 돈으로 무엇을 사든, 무엇을 하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는 “실업급여로 명품을 사는 사람이 얼마냐 되겠냐”며 “극히 일부 사례로 전체 제도를 설계하려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김영웅 베스트컨설팅 대표(전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부위원장)는 “극소수 사례로 전체를 비하하며 정책 설계를 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제도를 악용하는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맞지 실업급여가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향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부정수급 사례가 실업급여 제도 축소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장윤미 변호사는 “어떤 제도 운영이든 환부가 있기 마련인데 부정수급 사례들이 있다고 해서 제도 자체를 흔드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종진 소장은 “부정수급은 정부기관에서 모니터링을 통해 적발하고 조치하면 되는 문제”라며 “부정수급 때문에 실업급여 축소를 검토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실업급여를 축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상과 지급 기간 등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지급 기간이 너무 짧다”며 “코로나19 이후 구직이 불안정해져서 지급 기간을 기존 1년에서 2년으로 늘린 나라가 많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몇 달 안에 새 직업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결국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업급여 제도가 지속적으로 운영되기 위해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정적인 측면에서 제도를 유지하려면 하한액을 조금 낮게 설정하거나 실질근로자의 실제 소득을 더 반영하는 등의 대안이 필요하고, 구직에 대한 노력을 실질적으로 심사할 수 있도록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고 있고, 수급자들의 근로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개선한다는 목적이 크다”며 “실업급여 축소를 결정한 것도 아니고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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