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당위론’ 속 치고 나가…나경원 외부활동 나서며 몸 풀기…오세훈 서울시정 집중하며 대선 행보
그러자 “역시 인물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후선으로 물러나 있는 ‘강호의 고수’들을 등판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 나경원 전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이름이 거론된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간판을 잘못 내세웠다가는 당내 세력 전이가 일어나 친윤 중심 힘의 구도가 바뀔 수 있다는 우려다. 싸늘해진 민심 앞에 여권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치고 나오는 안철수
새 간판론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안철수 의원이다. 구원투수진 중 유일한 원내 인사여서 언론의 발언 주목도가 가장 높다. 3·8 전당대회 때 용산 대통령실과 거리가 멀어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장 출신이라 윤 대통령에 대한 비토 세력으로 보기도 어렵다. 집권세력 지지층과 더불어 폭넓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중도세력에 대한 호소력도 강하다는 평이다.
‘윤석열 대통령 정치 멘토’로 잘 알려진 신평 변호사가 “안 의원 자질을 높게 평가한다”며 ‘안철수 간판 당위론’을 적극적으로 들고 나온 것 자체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신 변호사는 7월 13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당이) 그를 홀대하면 안 된다”며 “당내에서 지금 안 의원만큼 수도권이나 중도층 마음을 가져올 수 있는 정치인이 누가 있는가. 당대표 선거에서 안 의원이 졌지만, 당이 너무 홀대한다. 그래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안 의원에게 (총선에서) 지역구 하나 선택할 수 있는 재량도 주지 않아서야 되겠냐”며 “(공천) 그 이상 가는 거라도 줘야 한다. 총선에 선대위원장 자리도 안 의원에게 주는 게 맞다”는 주장도 내놨다.
신 변호사가 갖는 정치적 영향력을 감안하면 정치권에서는 ‘안철수 간판론’을 허투루 들을 수 없다. 안 의원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논리가 명분은 물론 실현 가능성까지 동시에 갖췄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내각 완성도 측면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현재 자리에 묶여야 한다면 “대안은 안철수뿐 아닌가”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이런 환경 변화를 감지한 듯 안 의원은 벌써부터 실전 투구 연습에 나선 모양새다. 안 의원은 7월 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내년 총선 분당갑 출마설이 나오는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에 대해 “아직 여러 가지 해야 할 역할들이 정부 내에서 많을 수 있다”며 견제구를 날린 뒤 “내가 분당(갑)에서 당선된 지 만 1년 됐다. 정치인이 이렇게 지역구를 함부로 옮기는 건 아니다”라고 지역구 방어막을 쳤다.
7월 18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서는 윤 대통령 우크라이나 방문과 관련해 국민의힘 당론과 다른 비판적 메시지를 내놨다. 안 의원은 “장마가 끝나면 그때 비밀리에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하셨으면 어땠을까”라며 “국내에 수해가 많이 났고 인명 피해가 났으니까 이번에는 우크라이나에 가지 않고 돌아와서 수해를 수습하고 다시 가는 게 맞다”고 꼬집었다.
특히 이날 방송 인터뷰에서 ‘수도권 대표론’을 내세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안 의원은 이준석 전 대표가 언급한 부산 출마 가능성에 대해 “전체적으로 22대 총선을 이기기 위해서는 수도권 승리가 절대적이고, 나는 당직과 관계없이 수도권 승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수도권 험지 출마에 대해서도 “(지난 선거에서) 다른 지역에 많이 당선되는 데 기여를 했었다”며 “그런데 만약 험지라고 하면 어느 누구도 내가 이렇게 지원 유세를 하거나 도와드리지 못할 거다. 크게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몸 푸는 나경원, 오세훈은?
3·8 전당대회 국면에서 이른바 ‘윤심’의 비토로 중도낙마해 체면을 구겼던 나경원 전 의원 움직임이 최근 빨라지고 있다. 나 전 의원은 7월 19일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이승만 초대 대통령 제58주기 추모식에 참석했다. 나 전 의원은 자신의 SNS에 “오늘은 정권 교체를 가장 크게 실감한 날”이라며 “오랫동안 이승만 대통령 서거일은 늘 아쉬움이 남는 추도식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나 전 의원은 “이승만 대통령 기념사업회 부회장을 맡아온 나로서는 늘 외로움을 느꼈다”며 “문재인 정권 시절 자유민주주의 궤멸과 종전선언에 맞섰던 그 모든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보수 여전사’로서 문재인 정부에 맞서왔던 자신의 노력을 재조명해달라는 의지로 보였다.
그는 외부활동 범위도 늘리고 SNS 가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정치인으로서 존재감을 각인시키려는 의도로 읽힌다. 수도권에서 인지도로 통하는 원외 그룹이라면 나경원 전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이 선두주자로 꼽힌다. 윤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을 날리고 있는 유 전 의원과는 철저하게 대비된다는 점에서 당내에서는 나 전 의원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이들이 적잖다.
특히 당내 주류가 비주류를 품는 통합의 모습을 총선 국면에서 보여줘야 한다는 점까지 고려할 때 나 전 의원은 적절한 대상으로 평가받는다. 여권에선 유승민 전 의원 경우 이미 넘어서는 안 될 선을 침범했다는 의견이 많다. 유 전 의원은 7월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당 바로 세우기(정바세)’ 주최 강연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신당을 만들지, (국민의힘에) 남을지, 무소속으로 나올지 등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언급, ‘탈당 결심’을 적극 고려 중임을 내비쳤다. 정바세는 이준석 전 대표의 당대표 해임을 반대하는 책임당원 모임인 ‘국민의힘 바로 세우기’가 명칭을 바꿔 출범한 모임이다.
여러 제약이 많은 지자체장 특성상 오세훈 서울시장은 철저하게 지자체 수장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정치적 사안에 대해 입담을 과시하고 있는 것과 달리 오 시장은 발언을 자제하면서 정책 행보에만 집중하고 있다. 호우 대처 과정에서 시민 안전 확보를 강조하거나 평소엔 녹지 확대, 부실 공사 방지 등에 천착하는 식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오 시장의 이런 스탠스가 멀리 내다본 포석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눈팔지 않고 서울을 잘 지키는 이미지 관리를 통해 차기 대선 준비를 차곡차곡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오 시장이 7월 13일 TJB(대전방송)에 출연해 한 발언은 주목을 끈다. 국회의사당의 세종 이전 계획에 대해 묻자 “예정된 타임 스케줄대로 잘 옮겨가 충청지역 발전의 토대가 됐으면 한다”고 밝힌 것. 이어 “서울에서 뭔가 바깥으로 이전해간다고 하면 당연히 시장으로서 섭섭한 마음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대승적 관점에서 요새 지방이 너무 어렵다. (국회 이전 추진을) 축하드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상생 방안으로는 ‘관광 산업’을 제시하며 “서울의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곳에 지방을 소개하는 이른바 ‘안테나샵’을 군데군데 만들고 있다. 지방과 서울의 상생구조를 만드는 시도가 여러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계획 역시 전국 표심을 모아야 하는 대선과 연관된 행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오 시장이 튀는 행보를 하지 않고 서울 시정을 잘 이끄는 모습만 보여도 총선 국면에서 수도권에서 우리 당의 큰 간판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력 전이에 대한 우려
당내에서는 총선 국면이 다가올수록 새 인물 등용 등 다양한 시도가 나올 것이라는 데 공감하면서도, 간판을 내세우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엄연히 당 지도부가 구성돼있어 김기현 대표 중심으로 총선을 치르면 되는데, 굳이 특별한 인물을 내세우면 공천 과정에서 시끄러운 잡음만 커진다는 이유다.
3·8 전당대회 진행 과정만 복기해도 새 간판론 구상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반론이 나온다. 여당 내 새롭고 강한 힘의 발현을 허용하지 않고, 대통령실이 국정을 주도하면 당이 뒤에서 받쳐주는 구도의 실현이었는데 지금 와서 다른 그림을 굳이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논리다. 대통령 임기 초반인데 갑자기 총선 사령탑이 등장하면 여권 전체의 원팀 분위기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목소리도 여기에 녹아있고, 총선 사령탑이 미래 권력으로 급부상할 수 있다는 경계감도 깔려있다.
더욱이 안철수 의원 등 특정 구원투수를 앞에 내세워보자면서 깃대를 잡을 원내 세력이 현실적으로 없다는 점도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데 무게를 더한다. 안 의원만 해도 당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생이어서 ‘친안 세력’이 당내에 전혀 형성돼있지 않다.
구원투수나 간판 교체론이 추동하는 것은 결국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 추이에 달려있다는 분석이다. 윤 대통령이 국정에 성과를 내면서 대선 때 지지율 48%를 회복한다면 당내에서 딴소리가 나오지 않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야당세가 강하다고 볼 수 있는 수도권 현역 의원이나 출마 희망자들이 동요하고 상황 변화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나올 수밖에 없다.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하지 못하고 정체국면이 장기화되면 수도권에서 총선에 내세울 새 인물을 찾기 어려운 ‘인물 품귀 사태’를 겪을 수도 있다. 제3지대까지 연이어 태동하는 구조 속에서 내년 총선은 인물 구하기 전쟁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은데, 수도권 인물난 악재가 여권에 폭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올 하반기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 상황에 따라 그대로 가느냐, 바꾸면서 가느냐의 결정이 나올 전망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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