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전 씨 역시 손자‧손녀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전 씨의 장녀 전효선 씨는 슬하에 2녀가 있으며, 장남 전재국 씨는 1남1녀, 차남 전재용 씨는 2남2녀, 막내 전재만 씨는 1남2녀를 두고 있다. 이렇게 전두환 씨 손자‧손녀는 모두 11명이다.
전 씨는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반란수괴·살인‧뇌물수수 등 13가지 죄목이 모두 유죄로 확정돼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수감 당시 일화다.
그가 감옥에서 읽은 책들 가운데는 생뚱맞게도 ‘걸리버 여행기’ ‘엄지왕자’ ‘아서 왕의 모험’ 등과 같은 이야기책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야기책을 읽은 까닭은 손자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였다고. ‘전두환 회고록’에 따르면 전 씨는 자신이 감옥에 있는 동안 손자‧손녀들이 옛날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할 때마다 이야기 밑천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옛날이야기들을 읽었다. 또 손자‧손녀들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 월요일엔 손자, 화요일엔 손녀, 수요일엔 자녀들에게 번갈아가며 편지를 썼다.
그렇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손녀들에게 ‘크게 한 몫’ 떼 주고 싶은 건 어찌 보면 인지상정. 그 돈의 성격이 뇌물이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 치부한 전 씨는 재산을 3세들에게 직접 건네지 않았다. 손자‧손녀의 부모(전두환 자녀들)나 친인척 등의 명의로 증여했다. 이 같은 정황들 가운데 일부는 일요신문을 통해 처음 밝혀지기도 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전두환 3세들이 보유했던 부동산은 다른 사람에게 매각됐거나 검찰의 전두환 미납 추징금 특별환수팀에 압류 당했다. 그럼에도 전 씨는 추징금 2205억 원 가운데 922억 7800만 원이나 납부하지 않은 채 2021년 11월 23일 사망했다.
전두환 씨 장녀 전효선 씨는 2006년 12월 외삼촌 이창석 씨로부터 경기도 안양시 관양동 17XX번지 일대 임야 4개 필지(총 2만 6876㎡‧8144평)를 증여 받았다.
전효선 씨의 큰딸 전서연 씨는 2007년 2월 이곳에 있는 77.39㎡(23평) 규모의 단층 주택과 9.36㎡(3평) 화장실을 3000만 원에 매입했다. 이 주택 등은 2010년 12월 정 아무개 씨에게 매입가와 동일한 3000만 원에 팔렸다. 그런데 2년 뒤인 2012년 1월 어머니 전효선 씨가 이 주택 등을 3700만 원에 되샀다.
검찰은 이 부동산 매입 자금 출처 역시 전두환 비자금으로 판단했다. 이에 2013년 9월 서울중앙지검 특별환수팀은 전효선 씨 땅 4필지와 주택 등을 압류했고 이후 공매 처분했다.
전두환 장남 전재국 씨의 장녀 전수현 씨는 외증조부 김종록 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았다. 전수현 씨는 만 11세였던 1997년 1월 서울 마포구 서교동 45X-XX번지 토지 330.2㎡(100평)와 건물을 유증 받았다. 5년 뒤인 2002년 2월 연면적 369.56㎡(112평)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건물과 토지를 매각했다. 당시 시세는 약 10억 원(공시지가 6억 원). 이와 관련해 전두환 비자금이 김종록 씨를 거쳐 전수현 씨에게 편법 유증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어 전수현 씨는 2002년 4월 최 아무개 씨와 함께 서울 강남구 논현동 8X-X번지 소재 토지(384.2㎡, 116평)와 건물을 공동 매입했다. 당시 나이는 만 16세. 이곳 토지와 건물 지분 70%는 전수현 씨, 나머지 30%는 최 아무개 씨였다. 이 자금 출처 역시 전두환 비자금이 아니냐는 강한 의심을 샀다. 그 뒤 전수현 씨는 2004년 1월 최 아무개 씨에게 토지·건물 지분 70%를 전부 이전했다.
매각 당시엔 지하 1층, 지상 1층에 연면적 167.16㎡(51평) 규모 대중음식점이 있었다. 당시 인근 부동산 업자에 따르면 해당 토지 시세는 최소 20억여 원이었다. 따라서 전수현 씨의 70% 지분을 고려하면 최소 14억 원에 지분을 넘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전수현 씨는 경기 연천군 왕징면 북삼리에 위치한 허브빌리지를 전재국·정도경 부부와 함께 소유했다. 전재국 씨 가족이 소유했던 허브빌리지 토지 면적은 총 5만 9892㎡(1만 8117평). 이 중 전수현 씨는 2004년 5월에 1만 4219㎡(4301평)의 토지를 구매했다. 당시는 만 18세. 2004년 평당 시세는 10만 원에서 20만 원선. 전수현 씨는 최소 4억 3000만여 원에 해당 토지를 매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북삼리 2XX번지에 위치한 두 건물도 전수현 씨 소유였다. 한 건물은 지상 3층에 연면적 679.26㎡(205평) 규모인 음식점 및 소매점이다. 또 다른 건물은 지상 3층에 연면적 642.32㎡(194평) 규모인 문화 및 집회시설이다.
전재국 씨 가족이 소유했던 허브빌리지는 2013년 서울중앙지검 특별환수팀에 의해 압류됐다. 최초 감정가는 250억 원이었으며, 4차례 유찰됐다가 2015년 12월 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이 자신의 법인을 통해 118억 원에 인수했다.
전재국 씨의 장남 전우석 씨는 어머니 정도경 씨와 함께 홍익대학교 인근에 있는 전시장 건물을 지분 50%씩 보유했다. 1992년 12월 매입한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연면적 804.58㎡(243평) 규모였다.
정도경 씨는 1992년 12월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X-XX번지 토지(414.9㎡, 126평)를 매입했다. 전우석 씨의 외증조부 김종록 씨는 1993년 2월 매입했던 36X-OO번지 토지(284.3㎡, 86평)를 1997년 1월 전우석 씨에게 유증했다. 유증 당시 전우석 씨 나이는 만 8세.
서교동 36X-XX, 36X-OO번지 토지·건물 소유권은 2004년 9월 다른 사람에게 이전됐다. 매각 당시 해당 토지 매매가는 최소 60억 원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장편소설 ‘모던하트’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정아은 작가는 최근 펴낸 책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에서 “전두환의 후손들이 물려받은 유산은 잘못된 역사 인식만이 아니다”며 “그들은 전두환이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막대한 부를 물려받았다. 후손들이 소유한 법인, 건물, 토지, 차명 보유 의혹을 빚고 있는 국내외 사업체들은 전두환이 국민의 피를 묻힌 손으로 그러모은 돈뭉치가 후손들에게 흘러갔음을 동시대인들에게 시시각각 알려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독] "법원 판단 매우 부당" 전재국, 북플러스 대표이사 직무정지에 이의신청
전직 대통령 고 전두환 씨 첫째 아들 전재국 씨가 자신이 실소유한 도서 유통업체 '북플러스' 대표이사 직무를 정지시킨 법원 결정에 불복했다. 전 씨는 "법원의 판단은 매우 부당하다"며 이의신청을 했다.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제11민사부는 전 씨가 제기한 북플러스 대표이사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이의신청 심문기일을 21일 오전 열었다. 전 씨 소송대리인은 이날 법정에서 특별한 진술을 하지 않았다.
앞서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제11민사부는 북플러스 최대주주인 유 아무개 씨가 전 씨와 북플러스 전 대표이사 김경수 씨를 상대로 제기한 대표이사 등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5월 18일 받아들였다. 법원이 인정한 전 씨의 배임 혐의는 크게 세 가지. △전 씨, 김 씨 등 임원들의 법인카드 사적 사용 △북플러스와 관계사 '케어플러스'와의 불투명한 자금 거래 △북플러스와 김 씨의 불투명한 자금 거래다.
법원은 원심 결정문에서 "설령 각각의 행위가 그 자체만으로는 부정행위나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반한 중대한 사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더라도 일련의 행위를 모아보았을 때 법령이나 정관을 심히 위반한 경우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또 법원은 "채무자들(전 씨, 김 씨)은 상당한 시간과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업무관련성이나 합리성을 소명하려는 노력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경영판단의 원칙을 내세우며 부적법한 자금거래 및 사용이 정당하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씨 소송대리인은 이의신청서에서 "채무자들(전 씨, 김 씨)은 고의로 법령이나 정관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반발했다. 전 씨, 김 씨 등 임원들의 법인카드 사적 사용에 관해선 "채권자(북플러스 최대주주 유 씨)의 소명이 부족한데도 사용금액 모두를 사적 사용으로 단정하는 잘못을 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원심에서 "법인카드 사용처와 결제금액, 사용횟수와 기간 등을 고려할 때 개인적인 용도로 법인카드를 사용했음이 넉넉히 소명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법인카드 사적 사용으로 회사에 발생한 손해 규모를 4년간 2억 1303만 원(전 씨 1억 224만 원, 김 씨 1억 1079만 원)으로 인정했다.
아울러 법원은 "채무자들(전 씨, 김 씨)은 법인카드를 사전에 정해진 사용한도 내에서 업무 용도로 사용하였다고 포괄적으로 주장만 할 뿐,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아무런 자료도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 씨 소송대리인은 북플러스와 관계사 '케어플러스'와의 불투명한 자금 거래에 관해선 "경영판단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경영판단의 원칙은 경영진의 판단이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치더라도 성실하고 합리적인 과정을 거쳐 판단이 이뤄졌다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해당 사안에 경영판단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케어플러스는 북플러스로부터 3억 3000만 원을 빌려놓고 1억 9000만 원만 갚은 채로 회사를 해산했다. 케어플러스는 북플러스와 마찬가지로 전 씨와 김 씨가 운영하는 회사였다.
법원은 원심에서 "채무자들(전 씨, 김 씨)은 이 사건 회사(북플러스)로 하여금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은 채 케어플러스에 돈을 대여하도록 했다. 이자나 변제기 약정 등 구체적 조건을 정한 계약서조차 마련되지 않았다"며 "경영판단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전 씨 소송대리인은 북플러스와 김 씨의 불투명한 거래와 관련해선 "북플러스가 상환받지 못한 김 씨에 대한 대여금은 0원임에도 원심은 3억 1800만 원은 변제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며 "추후 이에 관한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법원은 원심에서 김 씨가 북플러스 대표이사 시절인 2018~2019년 회사로부터 11억 원을 이사회 결의도 없이 빌려놓고 7억 1045만 원만 반환했다고 판단했다. 김 씨가 빌린 11억 원은 북플러스의 2018년 말 북플러스 현금보유액 10억 원보다도 많은 거액이었다.
특별취재팀=김지영‧남경식‧허일권‧노영현 기자 you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