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가리켜 ‘바다에서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조용한 사람’이라고 묘사한 섀독은 말 그대로 ‘바다 사나이’였다. 바다를 사랑한 그가 ‘벨라’와 함께 단 둘이 쌍동선 ‘알로하 토아’호를 타고 바다로 나간 것은 지난 4월이었다. 출항지는 멕시코 라파스, 최종 목적지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였다. 그날 밤에는 보름달이 휘영청 떠있었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하지만 출발하고 몇 주 후 태평양 한복판에서 갑자기 폭풍우를 만나고 말았다. 거친 파도에 휩쓸리면서 배는 파손됐고 통신 장치는 먹통이 됐다. 그렇게 항로를 이탈한 그는 기나긴 생존을 위한 사투에 들어갔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배 안에 낚시 도구를 비롯한 생존에 필요한 장비들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살기 위해 낚시를 한 그는 참치를 비롯한 생선들을 잡아 날 것으로 먹기 시작했다. 수분은 빗물을 마시면서 보충했고, 뜨거운 햇볕에 화상을 입지 않도록 한낮에는 배의 캐노피 아래 숨어 지냈다.
다만 언제 물고기가 잡힐지 또는 언제 비가 올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루치 식량과 물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했다. 그는 “바다에서는 엄청나게 나쁜 날들도 많았지만, 좋은 날들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그는 “기력이 떨어지고 피로감이 드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계속해서 무언가를 고치면서 시간을 보냈고 ‘그냥 물속에 있는 것을 즐기기 위해’ 긍정적으로 지내려고 애썼다. 그는 “나는 내 안에 있는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바닷속 많은 생물들이 혼자 살고 있었고, 나도 물속에 들어가서 그냥 있는 그대로 즐기려고 했다”며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표류가 마침내 끝이 난 것은 3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어선단을 운영하는 ‘그루포마르(Grupomar)’의 참치잡이 저인망 어선을 동행하던 헬리콥터가 섀독의 쌍동선을 발견하면서였다. 조종사는 바다 위에 떠있는 그에게 생수를 던져준 뒤 날아갔고 잠시 후 쾌속정 한 대가 그를 구조하기 위해 나타났다.
3개월 만에 육지를 밟게 된 섀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살았다. 내가 정말 해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나는 괜찮다. 훨씬 더 기분이 좋아졌다”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아주 오랫동안 바다에 혼자 떠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휴식과 맛있는 음식이 필요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이에 대해 포츠머스대학의 인간 및 응용생리학 교수이자 해양 생존 전문가인 마이크 팁튼은 ‘위크엔드투데이’ 인터뷰에서 “운과 기술이 조합된 결과”라고 했다. 예를 들어 셰독은 한낮의 더위 동안에는 (햇볕으로부터) 몸을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탈수 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땀을 흘리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열사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도 이는 필요하다.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수분과 영양 보충도 매우 중요하다. 섀독은 하루 식량을 엄격하게 배분할 줄 아는 요령이 있었기에 굶어죽지 않을 수 있었다. 생존을 위한 핵심 요소인 수분 확보의 경우에는 사실 주기적으로 비가 내려줘야 하는 등 운도 필요하다. 섀독에게는 따뜻한 기후와 태평양이라는 위치가 운으로 작용했다. 팁튼은 “역사적으로 볼 때 추운 환경에서는 생존 확률이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반려견 ‘벨라’와 함께 있었던 것이 ‘엄청난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팁튼은 말했다. 그는 “이런 종류의 시련을 견디고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매우 긍정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면서 “밤이 되면 사방이 얼마나 깜깜하고 외로울지 상상해 보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벨라’는 그의 곁을 지키면서 고립감과 외로움을 견딜 수 있도록 의지가 됐다.
또 한 가지 극적인 운이라면 망망대해에서 우연히 발견됐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팁튼은 섀독의 구조를 가리켜 “건초더미 속에서 바늘 찾기와 같은 상황”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그 배가 얼마나 작고 태평양은 얼마나 광대한지를 생각하면 감사해야 한다. 누군가가 바다 위에서 발견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도 섀독처럼 긴 시간 동안 바다 위에서 사투를 벌이다 기적적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더러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상선 SS밴로몬드 호의 부선장이었던 중국 출신의 판리안은 당시 독일의 잠수함인 U-172호의 어뢰를 맞고 배가 좌초되자 극적으로 탈출했다. 탈출 후 그가 뗏목을 타고 남대서양에서 표류한 기간은 133일이었으며, 브라질 해변에 도착한 후에야 구조될 수 있었다.
1982년, 미국의 모험가인 스티븐 캘러한은 범선이 고래와 충돌한 후 좌초되자 바다에 빠졌고, 그 후 구명 뗏목에서 76일 동안 버티다가 구조됐다. 2006년에는 멕시코의 상어잡이 어부인 헤수스 비다나가 악천후로 배가 전복된 후 태평양에서 270일을 표류하다가 지나가는 대만 참치잡이 배에 의해 발견돼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2015년, 낚시를 하기 위해 바다로 나갔던 미국의 루이스 조던은 폭풍우를 만난 후 66일 동안 전복된 배 위에서 생활하면서 떠다녀야 했다. 운 좋게 지나가는 독일 컨테이너선에 의해 구조됐으며, 날 생선과 빗물을 마시면서 버틴 사람치고는 꽤나 건강한 상태였다.
하지만 호세 살바도르 알바렝가의 생존기만큼 극적인 사례는 없었다. 무려 438일 동안 태평양을 둥둥 떠다녀 역사상 바다에서 가장 오랜 기간 생존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가 에제키엘 코르도바라는 10대 소년과 함께 당일치기 낚시 여행을 떠난 건 2012년 11월이었다. 예기치 않은 폭풍우를 만난 둘은 방향을 잃었고 항로를 이탈하고 말았다. 알바렝가는 “처음에는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선 신호가 잡히지 않았고, 그러는 동안 바람은 계속 불어서 우리는 더 먼 바다로 떠밀려나갔다”고 회상했다.
둘은 살기 위해서 날 생선과 거북 피, 그리고 소변을 마시면서 버티기 시작했다. 하지만 4개월이 지나가면서 코르도바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태가 됐다. 알바렝가는 “소년은 날것을 먹지 못하고 계속해서 구토를 했다. 코를 막고 먹게 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결국 병이 난 소년은 먹기를 거부했고 그렇게 굶어죽고 말았다. 충격에 빠진 알바렝가는 6일 동안 소년의 시신을 배에 태운 채 지냈다. 죽은 소년과 대화를 하면서 외로움을 달랬지만 이대로는 미쳐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시신을 바다로 던져 버렸다. 훗날 그는 “내가 뭘 더 할 수 있었겠는가”라며 괴로웠던 당시를 떠올렸다.
한때 자신도 목숨을 끊어버릴까 고민했지만 종교적 신앙심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그는 “종종 바다거북이 배 가까이 와서 부딪히곤 했다. 그러면 나는 물속에 손을 넣어 거북을 잡아 올렸다. 표류하는 동안 정말 많은 거북들을 잡았다”고 회상했다. 낚시 도구로 물고기를 잡아 먹었고, 바다 새들이 손에 잡힐 정도로 가까이 날아올 때까지 흔들거리는 배에서 가만히 서있는 법도 터득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해야 했던 가장 힘든 일은 내 소변을 마시는 일이었다”고 토로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어쩔 수 없이 소변을 마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끝없이 표류하던 도중 마셜제도의 외딴 산호섬을 발견하면서 그의 고난은 끝이 났다. 2014년 1월 30일, 마침내 유인도를 발견한 그는 보트를 버리고 해변으로 헤엄쳐 가서 구조 신호를 보냈다.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머리는 햇빛에 의해 탈색이 된 상태에 누더기가 된 속옷만 걸친 차림이었지만 섬사람들은 그를 환대해줬고 5일 후 경찰의 도움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발견 당시 그는 놀라울 정도로 건장한 체격이었다. 입술이 트거나 피부에 물집이 잡혀있긴 했지만 그 밖에 다른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는 없었다. 그는 버틸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물론 죽을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또띠아를 먹거나 가족들과 재회하는 꿈을 꾸면서 버텼다”고 말했다. 또한 믿고 있던 신앙도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식인 논란’으로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코르도바의 유가족이 그가 살기 위해서 시신을 먹었다며 시신 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알바렝가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알바렝가의 변호사인 리카르도 쿠칼론은 유가족이 소송을 한 이유가 금전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요컨대 알바렝가의 생존 이야기를 담은 책 ‘438일’이 출간되자 이를 통해 창출되는 수익을 배분해주길 바랐다는 것이다. 쿠칼론은 “판권 수익을 나누라는 가족들의 압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이 책이 내 의뢰인을 부자로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가 벌어들인 돈은 훨씬 적었다”고 주장했다.
빗물 없으면 '거북 피'라도 마셔야…바다에서 살아남는 법
팁튼 포츠머스대학 교수는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산소, 혈액순환, 체온, 물, 식량 순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5°C의 물에서 약 1시간, 10°C의 물에서 약 2시간, 그리고 15°C의 물에서는 약 6시간 동안 생존할 수 있다. 만일 수온이 20°C 이상이면 약 25시간 동안 버틸 수 있다.
무엇보다 차가운 물속에 오래 있으면 쇼크 상태에 빠질 수 있어 위험하다. 이런 경우 호흡을 조절하는 능력을 잃어서 물을 들이켜게 되거나 이로 인해 익사할 수도 있다. 또한 체온이 떨어지면 몸이 나른해지거나, 의식이 흐릿해지거나, 방향감각을 잃을 수 있다.
팁튼 교수는 “우리 몸은 물속에서 여섯 배 더 빨리 체온이 내려간다. 때문에 물속에 있는 것보다는 가능한 밖에 있는 게 더 낫다”고 조언했다. 때문에 물에 빠졌다면 즉시 주위에 떠다니는 것을 찾아 붙잡고 올라가야 한다.
만일 구명조끼가 없는 상태로 물에 빠졌다면 가능한 헤엄을 치기보다는 무릎을 가슴까지 끌어올린 상태로 한곳에 가만히 떠있는 게 낫다. 팁튼 교수는 “침착하게 차분한 상태로 있는 게 최선”이라고 말한다. 영국왕립구명정협회(RNLI)에 따르면, 옷과 신발은 공기를 가둬두기 때문에 물속에서 순간적으로 사람의 부력을 향상시켜준다. 따라서 몸을 많이 움직이기보다는 차라리 가만히 떠있는 게 더 도움이 된다.
수분 보충도 매우 중요하다. 팁튼 교수는 “특히 신장과 같은 중요한 기관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분이 반드시 필요하다. 수분 없이는 이틀 이상 못 버틴다”고 충고했다. 바다 위에서 가장 좋은 수분 공급원은 빗물이다. 하지만 비가 내리지 않을 경우에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런 경우 거북과 바다 새의 피를 마시면서 버텨야 한다. 20kg의 거북이 한 마리는 약 1리터의 피를 공급해준다.
반면 팁튼 교수는 소변을 마시는 행위는 가능한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히려 탈수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식량의 경우 고지방일수록 생존 확률을 높여준다. 이런 이유에서 날 생선을 먹는 데는 심각한 단점이 하나 있다. 팁튼 교수는 “물고기는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이다. 단백질은 소화의 부산물을 씻어내기 위해 많은 양의 수분을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탈수를 촉진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보다는 지방과 당류를 섭취하는 것이 더 좋다. 이런 이유에서 생존 식량도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말한 그는 “하지만 물론 바다 위에 초콜릿 바가 떠다니는 것을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조난당한 사람에게 가장 이상적인 식량은 물고기가 아니라 거북이다. 거북의 껍질 밑에는 지방이 많다”고 조언했다.
따뜻한 기온도 생존 확률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팁튼 교수는 “지금까지 바다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의 경우, 모두 적도 해역에서 구조됐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하면서 “고온의 열대성 햇볕은 탈수와 일사병의 위험을 증가시키긴 하지만 차양을 만들어 피한다면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