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수해 중 우크라이나행 두고 여야 충돌…국민의힘 소속 김영환 지사·이범석 시장 ‘책임론’
#여당 내에서도 비판
7월 15일 오전 8시 40분쯤 폭우로 미호강 인근 제방이 무너지면서 6만 톤(t) 이상의 물이 오송 궁평2지하차도로 순식간에 흘러 들어왔다. 단 몇 분 만에 물이 차오르면서 이곳을 지나가던 시내버스 등 차량 17대가 침수됐다. 그 안에 있던 14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이 밖에도 전국적으로 폭우 피해가 속출했다. 7월 18일 오전 6시 기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폭우 사망·실종자가 50명으로 집계됐다. 폭우로 인한 사망·실종자 수는 2011년(78명) 이후 12년 만에 가장 많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행을 강하게 질타했다. 7월 16일 권칠승 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지난 5월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자국에 홍수 피해가 심각하자 조기 귀국해 사태 수습을 진두지휘한 바 있다”며 “집중호우에 따른 피해가 계속 늘어나고 이번 주말이 최대 고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귀국 일정을 연기하면서까지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에서도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행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7월 18일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우크라이나에 방문하는 게 맞다. 오히려 좀 늦은 감이 있다”면서도 “국내에 수해가 많이 났고 인명 피해가 났으니까 이번에는 우크라이나에 가지 않고 돌아와서 수해를 수습하고 다시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해명은 더 큰 논란을 낳았다. 7월 16일(현지시간)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폴란드 바르샤바 현지 브리핑에서 ‘국내에서 집중호우가 심각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방문 취소 등을 검토했냐’는 질문에 “그 시간 아니면 우크라이나를 방문할 기회는 다시 없을 것 같았고, 대통령이 당장 서울로 가도 그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다”고 답했다. ‘당장 서울로 가도 그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다’는 발언은 뭇매를 맞았다.
7월 17일 천하람 국민의힘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대통령실에서 내놓은 ‘지금 가도 (홍수 피해에 대해) 뭐 특별하게 바꿀 수 있겠느냐’라는 해명은 굉장히 잘못된 메시지”라며 “(윤석열 대통령은) 모든 재난의 컨트롤타워가 대통령이라고 수차례 언급하셨기 때문에 국내 문제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재난 컨트롤타워 부재 논란이 불거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8월 8일 수도권 집중호우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택에서 전화로 지휘를 내렸다가 비판을 받았다. 이틀 뒤인 8월 10일 윤 대통령은 집중호우 피해와 관련해 “국민께 정부를 대표해 죄송한 마음”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 관련해서 직접 사과한 것은 취임 후 처음 있는 일이다.
민주당은 이번에도 대통령 부재를 비판하고 나섰다. 대통령실은 현지에서 윤 대통령이 수시로 챙겼다며 진화에 나섰다. 서면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후인 15일 오후 1시 20분쯤 중대본을 화상으로 연결해 한덕수 국무총리로부터 국내 호우 피해 상황을 보고 받고 총력 대응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후에도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메시지를 계속 내놓았다. 7월 16일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 바르샤바로 돌아오는 열차 내에서 참모들과 집중호우 대응 긴급 상황 점검회의를 가졌다”고 밝혔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이 현지시각 (오전) 4시 50분경 폴란드 현지에서 중앙안전대책본부(중대본)과 화상으로 연결해 집중호우 대처 점검회의를 주재했다”고 했다.
#관련기관들, 책임 회피 태도 뭇매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두고선 ‘인재’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와 지자체, 행정기관들의 총체적 부실 대응이 속속 드러나면서다. 이날 참사 발생 전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사전 경고가 있었지만 관련 기관들의 적절한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참사 4시간여 전인 7월 15일 4시 10분쯤 금강홍수통제소는 미호강 주변에 홍수 경보를 발령했다. 이어 국무총리실과 행정안전부, 충북도, 청주시, 청주시 흥덕구 등 관계 기관 76곳에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다. 오전 6시 34분엔 흥덕구에 전화로 교통통제, 주민대피 등을 요청했다. 이 같은 사실을 흥덕구는 오전 6시 36분쯤 청주시 하천과에, 오전 6시 39분쯤 청주시 안전정책과에 각각 보고했다.
미호강 인근 공사 현장에 있던 감리단장도 오전 6시 14분, 20분, 33분 세 차례에 걸쳐 청주시에 전화해 미호강 범람 위험을 알리며 주민대피를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오전 8시 3분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은 미호강이 범람하고 있다고 상황실에 전파했고, 상황실은 청주시에 이 같은 내용을 전파했다. 하지만 청주시는 관할 구역이 아니라며 통제에 나서지 않았다. 관리주체인 충북도에도 관련 내용을 공유하지 않았다.
청주시 측은 “사고가 발생한 궁평2지하차도는 시 관할이 아니다. 당시 동시다발적으로 상황이 발생했는데, 시가 도 관할까지 조치를 할 정도의 인력이 없다”며 “현행법에 따라 통제소장이 도를 포함해 기관들에 홍수 경보를 발령했다. 시가 다시 충북도에게 알릴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충북도는 관련 기관들로부터도 어떤 정보도 받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7월 17일 이우종 충북도 행정부지사는 “사고 직전까지 사안의 임박성이나 심각성 등에 대한 정보는 접수받은 게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지하차도 중심부 수위 50cm’라는 교통 통제 매뉴얼 기준에 맞지 않아 교통을 통제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궁평2지하차도가 포함된 508번 지방도의 관리주체는 충북도다.
하지만 충북도가 공개한 ‘오송 지하차도 사고 관련 시간대별 상황 및 조치 사항’ 자료에 따르면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은 오전 6시 31분, 38분, 7시 2분 세 차례에 걸쳐 충북도 자연재난과에 미호강 범람 위험을 알리며 재난문자 발송을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충북도는 세 차례의 전화를 받고서도 어떤 조치를 하지 않았다.
7월 20일 김영환 지사는 충북도청 합동분향소에 방문해 “(내가) 거기(사고 현장)에 (일찍) 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골든타임이 짧은 상황에서 사고가 전개됐고, 임시제방이 붕괴하는 상황에서는 어떠한 조치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생명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도마에 올랐다. 이날 이범석 청주시장은 취재진 질문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오송 참사는 중대시민재해"
7월 17일 국무조정실은 오송 지하차도 참사 원인을 규명하고자 감찰에 착수했다. 조사를 위해 사건 당일 새벽 충북도, 청주시, 흥덕구 등 현장을 관할하는 광역·기초자치단체와 경찰·소방에 접수된 모든 위험신고, 후속 조치의 기초자료를 확보하는 작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수사당국도 오송 지하차도 참사 관련 수사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7월 20일 경찰은 인력을 추가로 투입해 138명의 대규모 수사본부를 꾸렸다. 7월 21일 대검찰청은 국무조정실로부터 수사의뢰서를 접수해 수사본부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앞서 7월 19일 희생자 유가족과 시민단체는 김영환 지사와 이범석 청주시장 등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제1호 중대시민재해 처벌이 이뤄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중대시민재해는 공중이용시설이나 공중교통수단의 설계·제조·설치·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발생한 재해다.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중대시민재해로 처벌된 사례는 아직 없다. 경찰은 지난 4월 발생한 성남시 분당구 정자교 붕괴 사고를 중대시민재해로 적용할지 여부를 검토 중이다. 앞서 지난해 10월 서울 이태원 참사에도 중대시민재해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참사가 발생한 골목길이 공중이용시설에 포함되지 않아서 적용되지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에 이번 사건과 유사한 2020년 부산 초량동 지하차도 침수 사건은 관련 공무원 11명이 모두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중대시민재해 요건은 △사망자 1명 이상 △2개월 이상 치료 필요한 부상자 10명 이상 △3개월 이상 치료 필요한 질병자 10명 이상 등이 발생할 경우다. 또 터널구간이 연장 100m 이상인 지하차도는 공중이용시설에 해당한다고 명시했다. 이번 참사에서 14명이 숨졌고, 오송 궁평2지하차도 전장이 685m인 만큼 중대시민재해 요건을 충족한다. 쟁점은 공중이용시설의 설계·제조·설치·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발생한 재해인지 여부다.
7월 20일 ‘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중대재해전문가넷)’는 기자회견을 열고 “오송 궁평제2지하차도 참사는 중대시민재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충북지사, 청주시장, 행복청은 각자 중대재해법상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 여부를 수사해야 한다”며 “환경부 장관은 미호강 관리를 (청주시장에게) 임한 만큼 미호강 하천관리에 대한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지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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