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라이트플라이급 한국챔피언 등극…“두 가지 일 병행하며 울면서 운동, 승부욕이 지금의 나 만들어”
#한국챔피언 오른 의사 선생님
간단한 소개를 부탁했다. 자신을 소개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먼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순천향대학교 부속 천안병원 신생아분과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한국타이틀전 승리로 라이트플라이급 한국챔피언에 오른 복서"라는 설명도 이어갔다.
이전에도 '의사 복서'로 이름을 알렸으나 챔피언 타이틀 획득한 후 파급력은 달랐다. 그는 "인터뷰 요청도 많고 방송 출연 제의도 오고 있다. 관심 가져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복싱 스승이자 스케줄 관리에 도움을 주고 있는 손정수 관장은 "하루이틀 만에 전화 통화만 100통은 한 것 같다. 통화하느라 업무를 할 수 없을 정도다.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입술이 텄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관심을 쏟는 쪽은 매체만 아니었다. 챔피언이 되면서 주변의 의견도 달라졌다. 그는 "이전까지 복싱 선수 활동을 권장하기보다 만류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다친다, 의사나 해라'라는 말로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타이틀을 획득하니까 응원을 많이 받는다. 타이틀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주변 상황마저 반전시킨 타이틀전은 '작전'이 중요했던 경기였다. 신장에서 우위를 보였던 서려경 교수는 아웃복싱으로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어갔다. 상대에게 거리를 주지 않으면서 유효타를 날렸다. 결국 8회 KO 승리로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본인도 이날 경기에 대해 '의도한 대로 흘러갔다'고 설명했다.
"체급 내에서 아웃복싱을 하기 좋은 신체조건이다. 이번 경기도 신장 차가 있어서 관장님이 아웃복싱 위주의 경기를 주문하셨다. 훈련도 그런 경기 스타일로 했고 좋은 결과가 나왔다."
'전략의 성공'을 설명하면서도 덧붙일 말이 있다고 했다. 그는 "내 장점은 사실 펀치력이다. 아웃복싱뿐 아니라 인파이팅에도 자신감이 있다"며 웃었다. 이에 대해선 손정수 관장도 인정했다. 그는 서려경 교수의 장점을 말해달라는 요청에 '펀치력'을 꼽았다. "남자들도 스파링을 할 때 얼굴을 맞든 몸통을 맞든 쓰러질 정도다. 나도 몸통에 펀치를 맞고 겨우 버틸 정도였다"며 웃었다.
#'투잡 복서'의 만족감
복싱에 입문했던 2019년. 처음부터 그가 선수 생활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시작은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했다. 선배 의사가 복싱 체육관을 다니고 있었고 운동에 관심이 있었던 그에게도 복싱을 권유한 것이다.
"웨이트 트레이닝 같은 운동을 꾸준하게 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무슨 운동을 하든 잘했다. 초등학생 때는 육상 도대회에 출전할 정도였다. 복싱도 처음부터 잘한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다. 칭찬도 받고 배우면서 재미도 있었다. 체육관에서 선수 생활 등에 대한 권유가 있었고 나도 관심이 생겨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의사와 프로 복서. 하나에만 집중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열심히 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이번 타이틀전을 앞두고 정말 열심히 운동했다"며 "복서는 러닝이 중요하지 않나. 매일 아침 달렸는데 어떤 날은 정말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울 정도였다. 그래도 복싱을 잘하고 싶어서 참고 했다. 운동이 두렵기도 하지만 실력이 향상될 때 성취감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그는 "2년간 펠로우 생활 중 두 번째 해는 서울(삼성병원)에서 했다"며 "아무래도 체육관에 가지 못하고 혼자 운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불안감이 있었다. 1년간 복싱 실력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 그리고 펠로우 생활 자체가 정말 바쁘다. 병원 생활만으로도 힘이 들었는데 운동도 해야 했다. 울면서 운동을 할 때도 있었다"고 했다.
2023년을 앞두고는 의사생활을 잠시 멈춰야 하나, 고민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챔프전까지도 생각이 있었기에 복싱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다행히 지금은 당직 위주로 근무를 하고 있어서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고 했다.
의사로서 만족감도 높았다. 그는 "소아과 의사가 부족하기도 하고 교수님들이 좋게 봐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중간에 쉬려고 한 적도 있었으나 교수님들의 강권에(웃음) 이끌려왔다. 정말 힘들었지만 덕분에 의사로서도 성장할 수 있었다"고 했다.
#세계챔피언 도전
의사와 복서 양쪽에서 서려경 교수는 모두 성공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현재의 자신에 대해 "내가 운동에도 소질이 있고 머리도 나쁘지 않았던 것은 맞다. 하지만 정말 내가 자신 있어 하는 것은 '열심히 하는 것'이다"라며 "어쩌면 승부욕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때 승부욕이 '발동'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다. 지는 것을 싫어하기에 정말 치열하게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변에선 아마 나를 '독하다'고 표현하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복싱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복싱은 정말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온몸을 사용하며 유산소·무산소 운동을 병행할 수 있다. 나중에 할머니가 됐을 때도 취미로 계속 복싱을 하고 싶다"고 했다.
"복싱 인기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그는 "취미로 하려고 해도 여자가 복싱 체육관을 찾기가 어려운 분위기다. 종목 자체가 좀 더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프로 복싱의 인기도 더 많아지면 좋을 것 같다. 이번에 타이틀전에 승리하면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좀 가져 주시는데 복싱 자체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의 체급에서 국내 1인자 자리에 올랐으나 서려경 교수의 눈은 더욱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세계무대에도 도전할 뜻을 밝혔다.
"처음 복싱을 시작할 때 관장님이나 주변에서 '세계챔피언'을 말씀하셨는데 그때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챔피언 자리에 막상 오르니 욕심도 난다. 세계 4대 기구가 있는데 한 기구 챔피언 타이틀만 따내도 너무 만족스러울 것 같다."
세계챔피언을 바라보는 그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지금과 같은 선수 생활을 오래 지속할 생각은 없다. 만약 세계챔피언에 오른다면 더 이상 미련 없이 곧장 은퇴할 것이다. 그래도 취미로 복싱은 계속할 계획이다. 건강과 즐거움을 함께 챙기면서 좋은 의사로 살아가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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