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안전직, 열악한 근무환경
기록적인 폭우로 방재안전직 공무원 A 씨는 녹초가 됐다. 방재안전직은 폭우, 폭염, 홍수, 태풍 등 재난 대응을 전담한다. 호우 주의보, 호우 경보 등 기상특보가 내리면 방재안전직 공무원들은 비상근무에 들어간다.
A 씨는 “장마철 같은 시기에는 거의 이틀에 한 번씩 밤을 새운다”고 말했다. A 씨에 따르면 특보가 발령되면 재난 담당 공무원들은 24시간 교대 근무를 시작한다. 보통 6명의 팀원이 3명씩 2교대로 일한다. 그는 “다른 지역도 비슷하거나 더 적은 인원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기상특보가 내리지 않아 비상근무를 하지 않는 날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한밤중에 폭우가 내리면 방재안전직 공무원들은 출근해야 한다. A 씨는 밤에 비가 내리면 잠을 설친다고 전했다.
폭우가 내리면 민원이 빗발친다. A 씨는 “불어난 물 때문에 맨홀 뚜껑이 열린다거나 집이 침수되고 있다는 내용이 많다”고 했다. 민원은 비가 많이 오는 시간대에 집중된다. 업무 특성상 방재안전직 공무원들은 민원이 들어올 경우 현장을 방문한다. 보통 2인 1조로 움직인다. 근무자 3명 가운데 2명이 현장에 나가는 셈이다. 쏟아지는 민원을 응대해야 하는 것은 나머지 한 명의 몫이다. A 씨는 “일단 민원이 들어온 현장은 다 간다”면서도 “10곳이 같이 침수되면, 한 번에 10곳을 돌아볼 여력이 없다. 인원이 없어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장마가 끝나도 A 씨는 격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비가 그치면 무더위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폭염 특보가 내리면 A 씨는 다시 비상근무에 들어가야 한다. A 씨는 “폭염은 낮에만 신경 쓰면 되기 때문에 야간 근무를 할 일은 없다”고 했다.
무더위가 잦아들면 태풍이 오는 경우가 많다. 태풍 다음에는 겨울 한파가 찾아온다. A 씨는 “주의보나 경보가 떨어지면 관련 활동을 한 다음 보고서를 내야 해서 주말 없이 계속 일한다”고 했다. A 씨는 “봄을 제외하면 1년 내내 사실상 비상대기 상태”라고 말했다.
휴가도 다른 직군에 비해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 A 씨는 방재안전직 공무원 사이에 암묵적인 ‘위수지역’이 있다고 귀띔했다. 휴가를 가도 먼 지역으론 여행을 가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고도 했다. 재난이 발생하면 근무지로 복귀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방재안전직 공무원들은 승진도 녹록지 않다.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7급과 9급으로 임용된다. 승진하려면 자리가 생겨야 한다. 방재안전직 직렬은 인원이 적어 자리가 나는 경우도 드물다. 2022년 기준 지방직 5급 공무원은 8명에 불과했고, 4급 이상 공무원은 없었다.
방재안전직의 열악한 처우 문제는 이전부터 지적돼 왔다. 2019년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은 ‘안전한 대한민국, 기초자치단체 재난 안전 조직·인력 확충이 시작이다’는 논평을 내고 2017년 분석 대상인 8개 지역에서만 오후 10시부터 오전 9시까지 11시간 동안 갑작스럽게 발효된 기상특보가 126건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은 “재난 안전 전담 조직·근무자들은 상시적인 비상근무와 재난안전사고 책임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인해 높은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방재안전직군의 인력 유출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받아들여진다. 2022년 행정안전부가 장혜영 정의당 의원에게 제출한 ‘시·군·구 방재안전 직렬 공무원 채용·퇴직 현황 자료’에 따르면 방재안전직 채용 인원 대비 퇴직자 비율은 2017년 17.4%에서 2021년 48.6%로 증가했다. 새로 들어온 인원 가운데 절반가량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중배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대변인은 이번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도 방재안전직 인력 부족 문제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박 대변인은 “오송 재난 대응 담당자가 한 명, 청주시 전체 담당자가 한 명”이라며 “이 한 명이 수많은 전화를 받는다. 민원을 처리하다 보면 현장에 나갈 엄두도 못 낸다”고 설명했다.
#인력 유출로 전문가 양성 힘들어
연차가 짧은 직원들의 퇴직 증가로 전문 방재안전직 공무원 양성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박중배 대변인은 “경험이 많은 인력은 재난에 빠른 대처를 할 수 있다. 그런 전문 인력을 키워야 하는데 열악한 환경 때문에 다 다른 일자리를 찾아서 나가버린다”고 하소연했다.
조만간 그만둘 계획이라고 밝힌 방재안전직 공무원 B 씨는 “신규 공무원이나 낮은 경력을 가진 공무원이 얼마나 전문성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새로 들어온 인력이 숙련도를 쌓기도 전에 나가버리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이어 B 씨는 “민간 교육이나 이런저런 교육 기회가 있어도 다른 직원들에게 미안해서 안 듣게 됐던 것 같다”고 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발간한 ‘재난안전관리 역량 제고 방안 연구’에 따르면 다른 방재안전직 공무원들도 B 씨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재안전직 공무원들은 △법정 교육훈련 시간 확대 △다양한 재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 개발 필요 △직급별 교육훈련 프로그램 확충 등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근무 환경 개선을 통해 좀 더 자유롭게 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방재안전직 공무원은 전문직인 만큼 소방관이나 경찰관처럼 국가가 주기적인 전문 교육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 교수는 “소방이라면 소방학교가 있다. 학교에서 2년마다 한 번씩 교육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소방방재학과나 경찰행정학과처럼 대학 학과 개설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 교수는 방재안전직 직급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앞서 언급했듯 방재안전직 대다수는 7급과 9급으로 임용된다. 재난 안전 담당 부서에서 가장 낮은 직급을 구성하고 있다. 과장 등 책임자들은 다른 보직에서 옮겨온 경우가 대다수다. 공 교수는 “순환보직을 하면 전문 지식이 제대로 쌓이지 않는다”며 “재난 전담 부서 인원을 모두 방재안전직으로 채워야 한다”고 했다. 재난 대응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책임자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재난 유형 변하는데 시스템 그대로
재난 담당 부서엔 방재안전직 공무원과 다른 보직에서 옮겨온 공무원이 섞여 있다. 지역마다 편차가 있지만 보통 방재안전직 공무원은 한두 명 정도다. 재난 전담 부서의 전문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체계로는 재난 양상이 변화하는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상청이 발간한 ‘장마백서 2022’에 따르면 2039년까지 동아시아 평균기온은 1~1.5℃ 상승하고, 강수량은 5%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폭염과 폭우로 인한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손석우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극단적인 비가 자주 내린다. 짧은 시간에 극단적으로 많이 오는 형태의 비는 지난 60년 동안 뚜렷하게 늘어났다”며 “과거 경험에 기반해 대응하는 것은 많이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숙련된 인원조차 재난 상황에 대응하기 버거워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B 씨는 “여러 재난 상황을 겪어본 선배들도 요즘 재난은 양상이 달라 적응하기 어렵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채진 목원대학교 소방안전학 교수는 재난 유형은 변화하고 있지만 그 대응 체계는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채 교수는 “현장에서 재난을 관리하는 사람이나 중심을 잡아야 할 지방차치단체장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고 했다. 이번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도 소방, 경찰, 시청 등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채 교수는 미국처럼 지역 맞춤형 재난 대응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역마다 자주 발생하는 재난 유형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재난안전관리 체계가 지방정부 중심으로 이뤄진다. 소규모 재난은 지방정부에서 자체적으로 대응하고,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주 정부가 지원한다. 주 정부조차 대응하기 어려운 재난이 발생하면 ‘연방재난관리청’이 지원에 나선다.
채 교수는 “각 지역의 재난 담당 기관마다 전문 인력이 상주한다. 재난이 발생하면 그 인력들을 중심으로 재난에 대응한다”며 “지자체장이 이러한 전문 인력을 중심으로 공무원 인력을 유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뿐 아니라 채 교수는 △소방·경찰·지자체 재난 합동 대응 훈련 실시 △방재안전직 인력 확충 △지자체장 중심 지휘체계 확립 △담당 공무원에 대한 과잉 수사 자제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책임소재를 따지는 수사에 대해서는 “매번 공개적인 수사를 하면 공무원들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자신의 신분을 지키는 데 급급하게 된다”며 “수사는 조용하게 해야 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먼저 마련한 다음 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다.
실제 공무원들은 이번 오송 지하차도 발생 후 이뤄지고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해서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앞서 청주지검은 7월 24일 충북경찰청, 충북도청,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충북소방본부 등 관계 기관 1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박중배 대변인은 “2020년 발생한 부산 초량 제1지하도 침수, 이태원 참사 등 큰 사고가 터질 때마다 일선 공무원들이 수사 받았고 징계 받았다. 결국 하위직들이 최후에 책임을 떠안게 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A 씨도 “20년 더 이 일을 했을 때 그 안에 내 차례가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며 “열심히 해도 수사 받는 것을 피할 방법이 안 보인다”고 토로했다. 이어 “전문성을 기를 수도 없고, 진급도 안 되고, 도대체 이 직렬을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며 “누군가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기 위한 직렬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A 씨는 지난 4년 동안 격무에 시달리며 몸과 마음이 상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얻는 것은 없고 잃는 것만 있는 이 일을 조만간 떠날 생각이다.
박근혜 정부 때 신설…방재안전직 임용 절차와 현황
행정안전부는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2013년 방재안전직렬을 신설했다. 2014년부터 처음 임용됐다. 방재안전직 공무원은 △자연재해와 사회적 재난 대응 △안전관리 계획 수립 △안전교육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방재안전직 공채는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국가직 시험과 각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지방직 시험으로 나눠진다. 5급, 7급, 9급 등 급수별로 별도의 채용 절차가 이뤄진다. 7급과 5급은 만 20세 이상, 9급은 만 18세 이상 응시할 수 있다. 학력과 경력 제한은 없다. 시험 절차는 다른 직렬처럼 필기시험과 면접으로 구성된다. 다만 재난관리론, 안전관리론 등 방재안전 관련 과목이 추가된다.
국가직으로 선발된 인원은 행정안전부 등 중앙부처에 배치된다. 행정안전부의 공무원 인사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5급 40명, 6급 41명, 7급 47명, 8급 23명, 9급 6명 등 총 157명이 중앙 부처에서 근무하고 있다.
지방직의 경우 해당 지역 관청에 있는 재난 담당 부서에 배치된다. 2022년 기준 5급 8명, 6급 18명, 7급 197명, 8급 320명, 9급 224명 등 총 767명이 일하고 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