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산관리공사 별관이 입주해 있는 아셈타워 건물(오른쪽)과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의 모습. 자산관리공사의 경영참여 선언에 대해 교보 측은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
자산관리공사 측은 교보생명에 대한 경영 간섭에 대해 교보의 실적 부진을 주된 이유로 들고 있지만 교보 측은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도 ‘교보의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의견과 ‘자산관리공사가 다른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견해가 부딪친다.
교보생명과 자산관리공사가 경영권 간섭 여부를 놓고 갈등을 벌이게 된 배경의 시작점은 교보생명의 지분구조에 있다. 자산관리공사의 교보생명 지분은 담보로 갖고 있는 대우인터내셔널 지분 24%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지분 11%, 신창재 회장의 상속세 대용으로 획득한 6.3% 등이다. 모두 합하면 41.48%에 이른다. 반면 신창재 회장 우호지분은 현재 58.25%로 자산관리공사가 확보한 지분에 근소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자산관리공사는 올 초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교보생명 지분에 대한 연내 매각을 선언했다. 그러나 상장설이 끊이지 않는 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온 실정이다. 현재 증권선물거래소에 T/F팀이 구성돼 교보생명을 비롯한 생보사 상장안을 연구 검토하고 있지만 언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이번 경영 참여 선언에 대해 자산관리공사 관계자는 “사실상 정부 지분이 투입돼 있는 교보생명이 기대만큼의 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교보생명 관계자는 “지난해 순이익만 2300억 원을 냈는데 실적이 저조하다는 게 말이 되냐”며 항변한다. 이 관계자는 “자산관리공사가 사외이사 파견한다고 해서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자산관리공사 관계자는 “시장에서 교보의 위상이나 규모를 감안할 때 기대치에 못 미치는 실적”이라고 반박한다.
올 초부터 생보사 상장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교보생명 지분 역시 상장 이후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게 사실이다. 자산관리공사의 이번 경영 참여 선언은 교보생명 상장 시점까지 지분 가치를 높여 지분 매각 때 막대한 공적자금을 회수하겠다는 속셈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선 현재 시장에서의 교보생명 입지를 감안할 때 상장되면 자산관리공사가 교보생명 지분 매각을 통해 5000억 원 정도의 처분이익을 취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교보생명 입장에선 신 회장에 필적하는 지분을 보유한 자산관리공사가 본격적으로 경영에 간섭하기 시작할 경우 성가실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신 회장 본인 소유가 아닌 우호지분이 흔들릴 가능성마저 제기한다. 창업주인 고 신용호 회장의 아들인 신창재 회장 체제가 되면서 경영일선에서 멀어진 고 신 회장 동생 신용희 씨와 그 아들 신인재 씨가 보유한 지분이 13.27%에 이른다. 만약 교보생명 경영권을 노리는 특정집단이 자산관리공사 보유지분을 매입하고 나서 신용희-신인재 부자의 지분마저 접수한다면 신 회장은 하루아침에 경영권을 빼앗길 수 있는 셈이다. 얼마 전부터 ‘신용희-신인재 부자가 적정한 가격에 지분을 매각하려 한다’는 소문까지 나돌아 신 회장 경영권에 대한 호사가들의 입방아를 부추기고 있다. 올 초 교보생명 임원진 20명의 집단사퇴 파동 등 신 회장 주변을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교보생명 관계자는 “그 분들(신용희-신인재 부자)이 신창재 회장의 우호지분 주주로 있어야 최대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며 “친인척의 신 회장 경영권 위협 가능성은 0퍼센트”라고 밝힌다. 설사 신용희-신인재 부자가 지분을 매각한다 해도 그 지분이 신 회장을 위한 우호지분이 되게끔 할 것이란 설명이다.
교보생명의 한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교보생명의 경영권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마치 논란거리가 되는 것처럼 부풀리는 세력이 있다”고 밝혔다. 교보생명 경영권과 실적에 대한 논란이 자산관리공사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지적한 셈이다.
하지만 2세인 신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한 이후, 경영권이 신동아에서 한화그룹으로 바뀌는 등 내홍을 겪은 대한생명에도 밀리는 등 실적이 좋지 않은 점이 경영권 논란의 원인 중 하나라는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상장도 하기 전에 35%에 가까운 지분이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에게 넘어가게 된 것도 경영권 논란을 부추긴 셈이다. 이는 교보의 창업자인 신용호 회장대에서 벌어진 일로 진상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다만 현재의 신 회장 일가가 이 지분을 다시 사들일 여력이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신 회장의 경영권에 대한 논란 못지않게 자산관리공사에 대한 이런저런 추측도 쏟아지는 상황이다. 자산관리공사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전 직원 400명 정도의 조직이었지만 외환위기 이후 몸집이 커지면서 지난 2000년엔 1700명 선에 이르게 됐다. 자산관리공사가 관리해야 할 부실기업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 이후부터 자산관리공사는 매년 구조조정을 거듭해 현재 1000명 선으로 축소된 상태다. 부실기업들에 대한 매각과 공적자금 회수가 이뤄질수록 자산관리공사의 할 일은 줄어들고 그만큼 몸집도 작아지게 마련이다.
이런 탓에 일각에선 자산관리공사가 지분 보유 중인 법인에 사외이사나 상임감사 파견 등을 통해 ‘자산공사 출신 인사들의 일자리 만들기’에 나섰다는 지적마저 등장했다. 그러나 자산관리공사 관계자는 “교보생명에 보낸 사외이사는 자산관리공사 출신도 아니다. 일자리를 위한 것이라면 고작 이사직 두 개만 요구했겠나”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교보생명 지분에 대한 경영권 참여의 주체는 분명 자산관리공사다. 그러나 이는 자산관리공사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정부와 금융당국과의 조율 끝에 이뤄진 일”이라 설명했다.
지분매각 시점에 대해 자산관리공사 관계자는 “상장 이전에 할지 아니면 후에 할지 구체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황”이라고만 밝혔다. 언젠가 처분해야 할 교보생명 지분에 대해 지금은 그 가치를 부풀리는 데 주력해야할 시점이라는 뜻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