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신문·방송 등 여러 매체에서 소개돼 사람들에 온정을 전달한 글귀다. 시민들이 채워 넣은 먹거리를 누구나 꺼내 가고, 돈 대신 감사의 쪽지를 남기도록 한 전북 완주군 '행복채움 냉장고'의 따뜻한 단면이었다. 그 후 이 냉장고는 전국으로 퍼졌다. 하지만 최근 불경기에 물가마저 치솟자 사라지는 곳도 늘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나 적극적인 협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북 완주군 이서면이 운영해온 행복채움 나눔냉장고. 이를 이용한 어느 시민은 '가난을 드러내지 않고 이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쪽지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각종 민원 등으로 없어지고 말았다. 사진=완주군 제공](https://storage1.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3/0803/1691042454445403.jpg)
가장 크게 주목받은 때는 2017년이었다. 완주군 이서면에 설치된 행복채움 냉장고 옆에 남긴 시민들의 편지가 미디어에 소개되면서다. '죽으라던 세상, 냉장고는 살라는 용기를 줬다'는 등 음식을 넣어준 이들에게 전한 각종 감사 메시지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해 전국에서 음식들이 트럭에 실려 왔다.
이후 '필환경'(친환경을 넘어 이제는 환경을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 가치까지 대세로 떠오르며 이 같은 나눔냉장고는 전국으로 퍼졌다. 멀쩡한 음식을 버려 쓰레기를 발생시키는 현상을 개선하고자 '제로웨이스트' 챌린지의 성격을 띤 형태로도 운영하는 곳이 많아졌다. 그 결과 현재는 전국 약 250개 도시로 퍼지며 작은 시골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 냉장고가 골칫거리로 전락하거나 아예 운영을 중단한 사례가 많아지면서 관심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잇따른다.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잠시 멈췄던 냉장고를 올해 초 재가동했으나, 불경기에 운영비를 감당 못하거나 각종 민원이 제기되는 현실이 문제다. 홍보가 부족한 탓인지 기부 행렬도 줄고 있다고 한다.
나눔냉장고의 관심을 촉발한 완주군 이서면만 하더라도 최근 운영을 멈춘 것으로 파악됐다. 완주군 관계자는 "냉장고가 위치한 아파트 단지에서 그동안 운영비를 부담해줬는데 전기료 인상 등으로 부득이 중단하게 됐다"며 "특정 인원들이 너무 많이 가져간다는 등의 민원도 운영을 멈추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경기 수원의 한 나눔냉장고에 가보니 텅 빈 채 사실상 방치돼 있었다. 인근에서 만난 환경미화원은 '채워져 있는 모습을 자주 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사진=주현웅 기자](https://storage1.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3/0803/1691042539199845.jpg)
그나마 남은 곳도 온전하게 운영 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요신문이 확인한 수원 권선구의 한 냉장고는 텅 빈 채 사실상 방치돼 있었다. 여기서 만난 한 환경미화원은 "가끔 공무원들이 행사를 치를 때 물 같은 것들이 채워지곤 한다"며 "그렇지 않고는 대부분 비어있어 제가 마실 물을 가끔 보관하는 용도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나눔냉장고 대부분은 지자체 예산보다 각 지역 협동조합이나 비영리 법인에 의해 운영된다. 이에 자세한 운영 실태나 통계 등이 파악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의미 없이 자리만 차지한 채 방치된 곳이 적지 않다. 동사무소 등 공공기관에 설치됐음에도 직원들이 운영 여부를 제대로 모를 정도다.
경기 평택의 한 행정복지센터가 꼭 그런 예다. 일요신문이 직접 방문해보니 '생활용품' 용도의 나눔냉장고는 구석진 곳에 덩그러니 놓여 마치 버려진 듯했다. 이곳 공무원에 문의하자 "여러 사정상 현재는 운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는데, 다른 직원한테서는 "운영은 하는데 기부 물건이 없을 뿐"이라는 말이 뒤따랐다.
식품용 나눔냉장고에는 '기초생활수급자 이용 가능'이라는 안내물이 부착돼 있었다. '가난을 드러내지 않고 이용할 수 있다'는 애초의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한 모습이었다. 여기서 만난 민원인 A 씨는 "별로 관심도 없고 이용할 자격도 안 되지만 꺼내가기 민망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 평택 어느 행정복지센터의 한 생활용품형 나눔냉장고는 비어 있는 채 구석에 버려진 형태였다. 공무원들조차 운영 여부를 잘 모르고 있었다. 사진=주현웅 기자](https://storage1.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3/0803/1691042675043020.jpg)
공익사업인데도 진입장벽이 너무 낮고, 지자체마다 천차만별인 운영 방식을 문제로 꼬집는 목소리가 나온다. 무분별한 설치와 서투른 운영으로 금세 무용지물이 돼 곤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운영은 민간의 몫인데 행정복지센터 등 지역시설에 설치된 냉장고가 많아 일부 공무원들은 난처함을 토로한다.
익명을 원한 수도권 어느 지자체 관계자는 솔직한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지역의 비영리 법인이 선한 뜻으로 들여왔지만 행정력을 투입해 돕기에는 골치 아픈 면도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일반 시민 가운데 먹거리를 기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어쩌다 기부할 뜻을 전하는 일부 기업에만 의지한 채 없으면 마는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이는 지자체 등의 지원과 정교한 운영 방식을 담보해야 설치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진다. 경기 파주나 전남 목포 등 지자체의 보조금이 직간접적으로 투입되는 곳도 있으므로,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혈세 낭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에서 제로웨이스트샵을 운영하는 김민이 전 땡큐플레이트 대표는 촘촘한 매뉴얼을 갖추고 나눔 냉장고를 가동했음에도 현실적 한계에 부딪혀 사업을 중단했다. 그는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해 기부 등에 참여할 네트워크망부터 조성하고 서울 성북구에서 나눔냉장고를 운영했음에도 코로나 이후 재가동을 하지 못했다.
김민이 전 대표는 "공급이 충분히 이뤄져도 수요층 역시 냉장고 운영의 취지와 방식 등을 인지해야 원활할 수 있다"며 "소규모 비영리 법인이 냉장고의 존재나 식품 안전성 등을 시민들에 충분히 홍보하기란 특히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자체가 적더라도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