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실패 후 빚 떠안았지만 재정비 절차 통해 재기…개인 파산 제도 선입견 불식시킨 좋은 사례
량원진은 대학 졸업 후 최대 경제도시 선전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직장생활 10년 차이던 2018년 6월 량원진은 본인의 사업을 꿈꾸며 창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가전제품 디자인 일을 해왔으며, 디자인 관련 특허도 2건 보유하고 있었다. 량원진은 성공을 확신했다.
2019년 3월 량원진은 블루투스 헤드셋 제품을 개발하는 회사를 설립했다. 그로부터 5개월 후 회사가 만든 첫 제품을 내놨지만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량원진은 “품질, 디자인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마케팅, 홍보 등에 신경 쓰지 않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직격탄을 맞았다.
량원진의 회사는 설립 1년 6개월 만인 2020년 9월 부도처리 됐다. 이로 인해 량원진은 76만 위안(1억 3500만 원)의 빚을 떠안게 됐다. 금융기관 대출과 8장의 신용카드로 급한 불을 껐지만 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채권자와 금융기관의 빚 독촉도 스트레스였다. 그를 믿고 돈을 빌려줬던 친척과 지인들에겐 그저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량원진은 2020년 10월 한 전자제품 회사에 취업했다. 그는 “업무 중에도 채권자들의 전화가 계속 왔다. 받지 않으면 사무실로 찾아올까 걱정됐다. 나의 채무 사실이 알려져 직장을 잃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매일 힘겹게 살아가던 그에게 희소식이 들렸다. 선전시가 2021년 3월 1일 ‘성실하고 불행한 채무자’를 보호하는 내용의 조례를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조례에 따르면 선전에 주소지를 두고 선전사회보험에 3년 연속 가입한 시민이 채무상환능력을 상실했을 때 파산 청산, 재정비 등을 신청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시가 정한 ‘성실하고 불행한 채무자’ 조건을 갖춰야 한다.
2021년 3월 9일 량원진은 조례 시행 후 처음으로 법원에 개인 파산 신청을 했다. 판사는 량원진이 창업에 실패했지만 곧 취직을 했고, 월급이 2만 위안(360만 원)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파산보다는 재정비 절차를 밟도록 했다. 원금까지 탕감해주는 파산과 달리, 재정비의 경우 이자 등은 면제해주는 대신 원금은 갚아야 한다.
중국정법대학 기업재편연구센터 소속의 파산법 전문가 리슈광은 “파산은 개인의 신용에 큰 영향을 미치고, 또 금융기관에도 부담을 준다. 파산은 정말 마지막으로 최후에 고민해야 할 수순”이라면서 “량원진이 안정적인 수입이 있음에도 법원이 파산을 결정했다면 채무자들에겐 큰 불이익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2021년 4월 27일 량원진의 재정비 신청이 이뤄졌다. 당시 량원진은 수중에 3만 6000위안(650만 원)의 현금만 있었다. 부동산, 자동차는 없었고 채무는 76만 위안이었다. 단, 매달 고정 수입이 있었다.
이날부터 량원진은 철저하게 법원이 지정한 파산 관리인의 감독을 받았다. 량원진은 매달 수입, 지출, 부채 상환 등을 보고해야 했다. 선전시 파산관리국은 이를 꼼꼼하게 체크하며 재정비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감시했다.
량원진은 3년 안에 차입원금을 상환할 경우 이자 30만 위안(5400만 원)을 면제 받을 수 있었다. 만약 이를 지키지 못하면 량원진은 법에 따라 남은 원금뿐 아니라 이자까지 내야 한다. 기초생활수급비 수준의 돈을 제외하곤 량원진의 수입은 모두 빚을 갚는 데 쓰였다.
조례에 따르면 량원진은 술집, 골프장을 다니면 안 되고 3급 이상 호텔에서 숙박해선 안 된다. 또 자녀들은 사립학교에 다닐 수 없다. 교통수단을 이용할 땐 항공기 비즈니스석, 열차 침대칸, 고속철도 등을 타선 안 된다.
이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량원진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고, 아내와 2명의 자녀를 먹여 살려야 했다. 또 량원진 본인도 몸이 좋지 않아 의료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량원진은 이를 악물고 지켰다. 다행스럽게도 회사의 급여가 크게 올라 채무상환에 숨통이 트였다. 량원진은 “법원 판결로 상환 계획에 들어간 후 심리적 압박이 많이 줄어들었다. 빚 독촉 전화가 오지 않았다. (돈은 부족했지만) 생활에 여유와 활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량원진은 약속했던 기한(2024년 4월)보다 9개월가량 앞당겨 원금을 모두 갚았다. 선전 중앙법원은 재정비 계획에 따라 량원진의 미상환 이자와 연체료 등을 모두 면제하기로 결정했다. ‘전국 첫 개인파산’ 사건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셈이다. 량원진은 “조례가 없었다면 빚의 늪에서 헤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나뿐 아니라 가정도 무너졌을 것”이라고 했다.
선전 파산법원 장루이 판사는 “이번 건은 채무자뿐 아니라 채권자들에게도 개인 파산 제도에 대해 좋은 인식을 줄 수 있는 사례다. 채무자가 빌린 원금을 모두 갚을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면 채권자 회의는 원활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전 법원은 파산 위험 모니터링 등을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개인이 이 제도를 악용할 수 있다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파산전문 변호사 류승쥔은 “성실하고 불행한 채무자가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게 사회 전체의 비용을 줄이는 일”이라면서 “채무자 역시 사회가 마련해준 난간을 잘 걸어야 한다. 여기서 탈선하지 말고 완주, 인생의 역전을 완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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