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연대 가능하지만 인위적 세력 규합 거부…류호정·장혜영, 정의당 안 맞으면 신당 만드시라”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1992년 삼성전자 재직 중 두 번째 E-3(대졸 사원 직급) 승진심사 면접장에서 했던 말이다. 당시 양 의원은 이렇게라도 자신을 던져야 나중에 후배들의 승진 길이라도 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74년 삼성전자가 반도체 산업에 진출한 뒤 여직원을 E-3로 승진시킨 전례는 없었다. 하지만 이날 면접 이후 삼성전자는 발칵 뒤집어졌다. 양 의원은 여직원 최초로 E-3로 승진하는 데 성공했다. 남성 중심 학력차별이 심했던 기업문화 혁신을 위한 첫 물꼬를 텄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3년 양 의원은 고졸 출신 여성 최초로 삼성전자 임원 자리까지 오르는 신화를 썼다.
제3지대 길을 선택한 양향자 의원은 이번엔 한국 정치판에 충격을 주고자 한다. 거대 양당 체제에선 극단적 대립을 끝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양 의원이 주도하는 신당 ‘한국의희망’은 8월 28일 창당대회를 연다. 일요신문이 8월 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양 의원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신당 창당 배경이 궁금하다.
“선진국을 뒤쫓는 ‘추격국가’에서 세계를 이끄는 ‘선도국가’라는 새로운 시대로 건너가기 위해서다. 정치권은 4류라고 고 이건희 회장께서 말씀하신 이유를 알겠다. 대한민국 정치권에선 국가 어젠다가 안 보인다. 미국의 어젠다는 ‘퍼스트 아메리칸’이다. 다른 국가가 이에 도전하려면 과감히 제재한다. 중국은 ‘중국몽’ 어젠다를 실현하고자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일본은 ‘보통국가화’라는 어젠다가 있다. 어젠다는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가치다. 반면 대한민국은 산업화, 민주화 이후 어젠다를 설정하지 못하면서 대내외적 위기를 겪고 있다. 정치가 제 역할을 못 하면서다. 극심한 진영 싸움밖에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국가란 없다.”
―거대 양당을 진단해 달라.
“거대 양당 모두 국가 운영을 방해하는 세력이다. 정치의 궁극적 목표는 국가 운영이다. 정치가 국가 운영을 잘하게 해도 대한민국을 도약시킬까 말까다. 그런데 거대 양당은 정쟁에서 이겨내서 내 자리 찾는 것에 몰두한다. 정치 세력을 완전히 바꾸지 않고선 ‘선도국가’로 나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이것이 국민 인식이다. 최근 민주당의 정당지지율도 23%로 떨어졌다. 다 떠나고 있다.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김남국 코인거래 논란, 이재명 사법리스크 등 모든 상황이 부끄럽게만 만들고 있고, 자랑스러운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국정 운영에 있어서 신뢰를 못 받고 있다.”
―‘한국의희망’이 기존 정당과 다른 점은.
“차별점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차별화돼 있다. 국가 어젠다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학교, 투명정당 플랫폼 등을 만들었다. 기존 정치 세력의 이합집산이 아니다. 존경받는 삶의 궤적을 그려온 분들이 공동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이런 분들이 정치권에 자연스럽게 진입해 사회에 봉사할 수 있도록 정당을 운영하려고 한다. 특히 부패는 돈으로 귀결되는데, 거대 양당에선 당비와 후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잘 모른다. 반면 저희는 당원, 공천, 후원금, 정책 등을 투명하게 국민께 공개한다. 국민께서 100% 신뢰할 수밖에 없다.”
―신당 창당의 한 축을 맡은 최진석 교수와는 어떻게 손을 잡게 됐나.
“뵌 지는 5년 정도 됐다. 최 교수님은 오랜 시간 국가 미래를 위해 인재를 육성해오셨다. 그동안 국가 미래를 위해서 앞뒤 재지 않고 몸을 던지는 사람이 없었는데, 저는 다르게 보셨다고 한다. 그렇게 철학가이신 최 교수님이 국가 미래를 위한 방법을 고안하고, 저는 방법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수단으로서 역할을 한다. 그렇게 둘이 새로운 정치 세력을 만들어서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고자 의기투합하게 됐다.”
―제3지대 세력이 내년 총선을 노리고 우후죽순 나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도전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세력들을 존중해야 한다. 누가 그렇게 하겠나. 국가는 뒤에 앉아서 훈수만 두고 평가하는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행동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그들이 영웅이 된다. 다만 제3지대가 국민께 순수하게 비치지 않으면 문제다. 내년 총선만 노리고 있고, 국회의원 특권을 누리려고 하는 듯한 인식을 주면 안 된다.”
―무당층이 제3지대 세력 지지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나.
“무당층을 보고 창당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미래를 생각하고, 국민을 보며 만든 정당이다. 미래 세대들을 위해 우리 사는 동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정당이라고 보면 된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의 ‘국민의당’이 2016년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지만 결국 양당 체제로 흡수됐다.
“가치와 비전이 흔들렸기 때문에 거대 양당에 흡수될 수밖에 없었다. 정당이 성공하려면 정당성과 세력, 그리고 이것을 세상에 널리 알릴 기술이 필요하다. 안철수 의원은 ‘새 정치’라는 정당성을 갖고 창당했으나, 세력이 부족해서 호남 기득권과 결탁했다. 총선을 앞두고 조급한 결정을 내렸고, 그 결과 정당성을 잃어버리고 국민 신뢰를 잃고 끝났다.”
―정의당이 양향자 의원 등과 내년 총선 때 연대·연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정의당, 제3지대 등은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비전을 실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거기서 나온 정책 산물들을 연대할 수는 있다. 즉, 정책 연대는 가능하지만 인위적 세력 규합은 거부한다. 세력 규합은 100% 실패한다. 지분 싸움 일어나고, 그러면 의사결정 구조가 흔들린다. 그게 이제까지의 정당 모습이자, 실패 원인이다.”
―내년 총선 때 지금의 지역구(광주 서구을) 출마 선언을 했다.
“(많은) 지역에서 와달라는 요청도 많았다. 하지만 험지로 출마해서 당선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정치가 새롭게 바뀔 것이란 신호탄이 될 것이다. 호남은 민주당이 아니면 당선되기 어려운 곳이다. 그래서 현재 지역구에 나가기로 했다.”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양부남 민주당 법률위원장의 광주 서구을 출마설이 있다.
“양부남 위원장은 지역에서 부패한 검사라고 보인다. 천 전 장관은 7선 당선되며 국회의장 돼서 지역 발전하겠다고 말한다. 그럼 이제까지 국회의장 아니라서 지역 발전을 못 시켰나. 6선까지 그동안 뭐 했나 되물을 수밖에 없다. 국회의장이 돼서 지역 발전시킬 수 있다고 누가 믿겠나. (천 전 장관) 본인 욕심일 뿐이라고 말한다. 저는 8년 동안 지역을 떠나지 않고 다져왔다. 지역민들한테는 신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민주당을 밀어준다고 광주가, 국민의힘을 밀어준다고 대구가 발전하나. 막대기만 꽂으면 된다고 하는 지역구 국회의원들 배만 불리는 것이다. 그 당을 다시 밀어주면 발전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이 어느 때보다 크다.”
―10월 치러지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관련 계획이 있는지.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전국민적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선거다. 제대로 후보를 내서 정당으로서 역량을 검증받을 수 있다. 후보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창당대회 이후부터 후보를 추릴 예정이다. 색다른 후보 선출을 기대하라.”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할 때 제3지대가 하나가 돼서 단일후보를 내야 된다”고 말했다.
“어제(8월 2일)도 류 의원이 왔다갔다. 제3세력이 하나로 후보를 내도, 정치 세력에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소구력이 있을까 싶다. 정당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우리 후보를 내서 정정당당하게 선택을 받는 일에 올인하고 있다. 제3지대가 하나가 된다는 논의 자체를 염두에 둔 적이 없다. 다른 정당과 연합한다는 건 자신 없는 것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연대 러브콜을 보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장혜영 의원과는 평소에 자주 전화하는 사이다. 장 의원이 해당 기사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고 한다. 안타깝다. 장 의원은 제가 광주시장 후보 경선 뛸 때 저를 도와줬다. 그때 장 의원이 훌륭한 분이란 걸 알았고, 가깝게 지낸다. 류호정 장혜영 의원은 정의당 수명 다했다고 하더라. 두 분께 조언을 한다면, 당의 가치 안 맞으면 신당 창당하는 게 좋다. 또 가치와 비전이 맞는 세력과 함께하는 것도 좋다. 대신 자신이 갖고 있는 걸(비례대표 국회의원직) 버려야 한다. 그래야 가능하다.”
―국민의힘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자리를 제시했으나 거절했다고 들었다.
“제가 언급하긴 조금 어렵다. 국민의힘이 저를 영입하고자 노력을 많이 했다. 제가 갔으면 국회의원 배지 한 번 더 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에 들어가서 역할을 하면, 양당 전쟁이 끝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봤다.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선 창당의 길이 맞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어려워도 누군가는 가야 하는 길이다.”
―민주당 복당 제안은 없었나.
“민주당에서 비공식적으론 ‘양향자 같은 정치적 상품은 없다’라고 했다. 제가 호남 출신, 여성, 국회의원 300명 중 유일한 반도체 전문가 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에 저를 영입했다. 그런데 저를 단 한 번의 조사도 없이 제명했다. 제명 당시 국회부의장을 지낸 한 여성 의원이 ‘상황이 정리된 뒤 돌아오면 되니 제명 의결한 것에 대해서 재심 신청하지 말고 나가달라. 바로 돌아오면 된다’며 탈당 요청을 했다. 그렇게 저를 제명한 것을 두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성했다고 들었다.”
―‘검수완박’을 계기로 민주당과 완전히 결별했다.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에 양향자를 뺏기면 안 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제가 ‘검수완박’ 법안 추진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면서 그런 분위기가 사라졌다. 당시 민주당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법안 자체가 허술했고, 통과될 시 사회적 약자들한테 불리하게 적용될 우려가 컸다. 민주당에선 ‘법을 왜 자세히 보나. 당론 어기면 공천 불이익 자명하다’ ‘광주가 지역구면 앞으로 재선, 삼선까지 탄탄대로인데, 왜 무모한 짓을 하느냐’고 저를 나무랐다. 하지만 자랑스럽지 않은 일을 할 순 없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는 아직 연락하는지.
“문 전 대통령 임기 동안에는 공식적 자리 외에 뵌 적이 없다. 평산마을로 내려가신 뒤에는 뵙고 싶어서 만남을 곧바로 신청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회신이 안 오고 있어서 못 만나고 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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