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연패 뒤 최종 독일전 무승부로 체면치레…“얼굴에서 부담감 보였다”
#기대감 높았던 대표팀
2019 프랑스 여자 월드컵에서 3전 전패를 겪었다. 직전 대회(2015년) 16강에 올랐기에 실망감은 컸다. 장기 집권하던 윤덕여 감독과 작별을 고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2019년을 전후로 대표팀 지원이 확대됐다. 새로운 스폰서가 가세했다. 경기력을 점검할 수 있는 친선전이 늘었다. 전가을은 "내가 대표팀과 멀어지고 나서 A매치가 많이 열리더라(웃음). 과거보다 대표팀이 전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역사상 최초 외국인 감독 체제를 갖췄다. 잉글랜드 출신 콜린 벨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유럽축구연맹(UEFA) 여자 챔피언스리그 우승 경력이 있는 지도자다. 성과도 있었다. 세계 최강 미국과 평가전에서 무승부(0-0)를 거두는가 하면 2022년 인도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는 준우승 메달을 따냈다. 결승 진출은 역대 최초 성과였다. 결승전에서도 중국을 상대로 대등하게 싸웠지만 2-3으로 석패했다.
#충격의 2연패 "얼굴에서 부담이 보인다"
여자 월드컵에서 역대 최고 성적은 16강(2015년)이었다. 이번 대표팀은 그 이상을 바라보며 대회 개최지 호주에 들어섰다.
하지만 세계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콜롬비아와 모로코를 만나는 경기 일정에서 대표팀은 2패를 안았다. 각각 0-2, 0-1로 패배했다. 특히 피파랭킹 72위로 한 수 아래로 여겨지던 모로코에 당한 패배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표팀은 단 하나의 유효슈팅도 기록하지 못했다. 전가을은 대표팀의 선수 기용, 전술 등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공격수인 최유리와 이금민이 미드필더 역할을 하거나 중앙 미드필더 조소현이 측면에 서는 등 실험적인 포지션 배분이 있었다. 과연 선수들에게 맞는 옷을 입혔는지 의문이다. 포지션 파괴를 추구한다면 그동안 평가전에서 실험을 해봤어야 한다."
이상윤 해설위원도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는 "뛰고 있는 선수들도 의아해할 것 같다. 부상이나 경고 누적으로 뛸 선수가 없다면 포지션을 바꿀 수 있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다"라며 "한때 '여자 대표팀이 남자 대표팀보다 월드컵에서 우승할 확률이 더 높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2패라는 결과가 더 안타깝다"고 했다.
전가을은 "선수들의 부담감이 커 보인다"는 평가도 했다. 전가을은 현 대표팀 주축 선수들 다수와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춰 온 인물이다. 그는 "선수들 표정이 다 굳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며 "보통 대회를 앞두고 인터뷰를 하면 '골을 넣겠다, 승리하겠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은 여자축구의 현실, 미래 등 무거운 주제를 내놓는다. 운동장에서 뛰면서도 그런 부담과 짐을 안고 뛴다. 좀 더 가볍게 뛰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승 후보 상대로 따낸 첫 승점
대표팀의 조별리그 최종전 상대는 피파랭킹 2위이자 대회 우승후보로 꼽힌 독일이었다. 독일을 상대로 5골 차 이상 승리를 거둬야 16강행을 바라볼 수 있었다. 낭떠러지에 선 대표팀은 승리라는 성과를 거두진 못했지만 독일을 상대로 승점을 따냈다. 조소현이 선제골을 넣었고 단 1골만 내주며 승점 1점을 획득했다.
이번 월드컵은 '황금세대'가 함께 나서는 마지막 월드컵으로 불렸다. 우리나라 여자축구는 2010년을 전후로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09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2010 U-20 월드컵 3위, 2010 U-17 월드컵 우승이라는 성과를 냈고 이들이 성인 대표팀에 합류해 세 번의 월드컵을 치렀다.
황금세대가 주축이 된 이번 월드컵에 나선 대표팀의 평균 연령은 29세에 육박했다. 조별리그 3전 전승으로 토너먼트에 진출한 일본의 24.8세와 비교해 노쇠화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자연스레 향후 황금세대의 퇴장과 동시에 대표팀 전력 약화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독일전을 지켜본 이상윤 해설위원은 우려보다 희망을 이야기했다.
"앞서 두 경기보다 어린 연령대 선수들이 기회를 받았다. 자신감 있는 경기를 선보였다. 황금세대의 퇴장에 대해 걱정하는 시선이 많은데 어린 선수들이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대표팀이 기대가 된다."
전가을도 미래를 이야기했다. 그는 "지난 10년을 이끌어 온 선수들이 있고 앞으로 10년을 이끌어 갈 선수들이 있다"며 "이번 대회가 끝났다고 해서 그냥 지나가선 안된다. 그동안 대표팀을 이끌어 온 선수들의 이야기들을 들어봐야 한다. 그들의 의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전가을은 이번 월드컵을 돌아보며 우리나라 여자축구의 현재를 진단하기도 했다. "최종전 무승부로 모든 것을 털어내면 안된다"며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질책도 받아야 한다. 세계 무대와 격차를 확인하는 대회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발전을 했지만 그들은 그 속도가 더 빨랐다. 부족했던 부분을 돌아보고 보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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