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진 항의에 3피트 규정 재논의…비디오 판독 항의는 자동 퇴장
#1위팀 감독도 예외는 없다
상황은 이랬다. LG는 1-4로 끌려가던 5회 말 선두타자 문보경이 유격수와 3루수 사이를 뚫는 안타를 쳐 무사 1루 기회를 잡았다. 이날 LG 타선이 친 첫 안타였다. 다음 타자 박동원은 3루 쪽으로 기습번트를 시도했다. 전진 수비를 하던 키움 3루수 송성문이 달려와 공을 낚아챈 뒤 1루로 송구했다. 공은 키움 1루수 이원석의 왼쪽으로 치우쳐 날아갔다.
공교롭게도 타자 주자 박동원과 공이 거의 동시에 1루에 도착했다. 그 순간 공을 받으려던 이원석의 미트와 박동원의 몸이 충돌했다. 이원석은 그 충격으로 공을 놓치고, 왼쪽 손목 통증도 호소했다. 심판진은 3루수의 송구 실책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키움이 비디오 판독을 신청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비디오 판독실은 이 장면을 박동원의 주루 방해라고 해석했다. 박동원은 오른발로 1루를 밟았고, 왼발은 3피트(91.44㎝) 라인 안쪽에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KBO는 7월 20일 "타자주자의 3피트 라인 안쪽 주루 행위가 명백히 수비(송구 또는 포구) 방해의 원인이 됐다고 심판원이 판단하는 경우에도 수비 방해를 선언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타자 주자가 오른발로 베이스를 딛을 경우 왼발은 어쩔 수 없이 3피트 라인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메이저리그(MLB)와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이 같은 행동을 금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KBO리그에서도 허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 판정에 따라 박동원은 세이프가 아닌 아웃 처리됐고, 3루까지 내달렸던 주자 문보경은 다시 1루로 돌아와야 했다. LG 입장에선 대량 득점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무사 1·3루 기회가 1사 1루로 둔갑한 것이다. 염 감독읃 코치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벤치를 박차고 나와 심판진에 항의했다. KBO 규정상 비디오 판독 결정에 항의하는 감독은 자동으로 퇴장당하지만, 감독의 어필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던 듯하다. 결국 심판진은 퇴장을 명령했고, 염 감독은 한동안 억울함을 호소하다 더그아웃을 빠져나갔다. LG는 염 감독 퇴장 후 연장 12회 접전 끝에 끝내기 승리를 거둬 7연승에 성공했다.
#키움도 같은 일 겪었다
물론 키움 입장에선 박동원의 플레이에 수비 방해가 선언되지 않았다면 꽤나 억울할 뻔했다. 불과 한 달여 전 같은 상황에 항의하다 홍원기 감독이 퇴장 당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6월 23일 고척 두산 베어스전. 키움은 1-2로 끌려가던 7회 말 무사 만루 기회를 잡았다. 타석에 선 임지열이 3루수 땅볼을 쳤고, 두산 3루수 허경민은 곧바로 포수 양의지에게 송구해 홈으로 뛰던 3루 주자를 잡았다. 이어 양의지가 병살타를 완성하기 위해 1루로 송구했는데, 공이 타자 주자 임지열의 등에 맞고 굴절되면서 그 사이 2루 주자가 홈을 밟아 동점이 됐다.
그러나 두산 벤치는 임지열이 파울라인 안쪽으로 뛰었다며 3피트 규정 위반을 주장해 비디오 판독을 신청했고, KBO 비디오판독센터는 두산의 주장을 받아들여 임지열의 아웃을 선언했다. 앞선 사례의 박동원과 마찬가지로 임지열은 전력으로 질주하다가 오른발로 1루를 밟았고 왼발이 자연스럽게 파울라인 안쪽으로 들어간 상태였기 때문이다. 홍 감독은 이에 거세게 항의하다가 퇴장당했고, 키움은 끝내 추가 득점에 실패해 1-2로 졌다.
홍 감독은 이튿날 "원래 말을 아끼려고 했지만, 이제는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싶다"며 "임지열의 주루 플레이는 주자의 정상적인 플레이였다"고 강조했다. "그때 임지열의 등 뒤로 송구가 날아와서 공을 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어떻게 송구를 방해하려는 목적이 있었겠는가. 베이스를 마지막에 오른발로 밟으면 자연스럽게 왼발이 파울 라인 안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또 "파울 라인을 침범하지 않으려면 무조건 왼발로 베이스를 밟아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그걸 발맞춰 뛰기란 정말 어렵다"며 "고의로 안으로 들어와서 뛴 게 아닌데 그런 결정이 나온 게 굉장히 아쉽다"라고 덧붙였다. 이날의 논란은 KBO가 올스타 브레이크에 3피트 관련 규정을 재논의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됐고, 결국 7월 20일 '수비 방해' 방침을 재차 명확히 발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경고받은 2위팀 감독
2위 팀 SSG 랜더스의 김원형 감독도 바로 하루 전인 8월 2일 수원 KT 위즈전에서 심판 판정 어필로 퇴장당했다가 KBO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았다. KT가 1-0으로 앞선 8회 말 상황이었다. SSG 두 번째 투수 문승원은 KT 선두 타자 김상수와 풀카운트 승부에서 6구째 슬라이더를 던졌다. 그러나 타격하러 나가는 듯했던 김상수의 배트가 완전히 돌지 않았고, 주심은 1루심의 콜에 따라 '노 스윙'을 인정했다. 김상수는 볼넷으로 출루했다.
이때 감원형 감독이 달려나와 1루심에게 "체크 스윙 아니냐"며 항의를 시작했다. 조원우 수석코치가 계속 말렸지만, 김 감독은 격분한 상태로 어필을 이어갔다. 결국 1루심의 퇴장 명령을 받고 더그아웃을 떠나면서까지 화를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패 상황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던 경기 후반인 데다 1위 LG와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심판 판정에 평소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한 듯했다. 경기는 김 감독 퇴장 후 별다른 변화 없이 그대로 KT의 1-0 승리로 끝났다.
KBO는 이튿날 "리그 규정 벌칙 내규 제1항에 따라 김 감독에게 경고 조처했다"며 "김 감독은 심판에게 반말하는 등 거칠게 항의했고, 퇴장 명령이 나온 후에도 격렬하게 항의를 이어갔다. 더그아웃에서도 강한 불만을 표하는 등 부적절한 행위를 계속했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도 다음 경기를 앞두고 "의도적으로 퇴장당하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경기에 너무 몰입하다보니 도가 지나쳤다"며 자책했다. 김 감독은 또 "미국에서는 감독들이 자주 퇴장당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요즘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 관심을 많이 보여주시는 것 같다"고 쑥스러워했다.
김 감독은 평소 신사적인 매너와 온화한 성격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어쩌다 한 번씩 심판에게 격한 감정 표현을 할 때가 있다. 전신 SK 와이번스의 지휘봉을 잡았던 2021년부터 1년에 한 차례씩 퇴장 명령을 받고 벤치를 떠나야 했던 경험이 있다. 특히 2021년에는 주심의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항의하다가 퇴장당한 뒤 주심의 가슴을 밀쳤다가 KBO 상벌위원회에 회부돼 벌금 100만원 제재를 받기도 했다. 지난해 6월에도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거세게 항의하다가 퇴장을 피하지 못했다.
#국민 타자의 첫 퇴장
두산의 역대 최다 11연승을 이끌어 박수를 받았던 이승엽 감독도 최근 사령탑 데뷔 후 처음으로 퇴장 명령을 받았다. 7월 29일 LG와 잠실 라이벌전에서 5회 초 수비 때 비디오 판독 결과에 항의하다 레드 카드를 받고 벤치를 떠나야 했다.
긴박한 상황이었다. 11연승 후 3연패에 빠졌던 두산은 0-0으로 맞선 5회 초 2사 만루 상황에서 LG 문성주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았다. 1루에 있던 LG 주자 홍창기가 두산 좌익수 김태근의 송구가 포수 뒤로 빠진 틈을 타 홈까지 내달렸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두산 포수 양의지도 다시 공을 받아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한 홍창기를 태그했다. 처음에는 아웃이 선언됐다. 그러나 LG가 비디오 판독을 신청했고, 그 결과 양의지의 오른발이 홈 플레이트를 막았다는 점이 인정돼 세이프로 번복됐다. KBO리그에서는 부상 방지를 위해 3루 주자가 홈으로 쇄도할 때 상대 팀 포수가 고의로 홈플레이트를 가로막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자 이승엽 감독은 더그아웃을 박차고 나와 심판진에 거세게 항의했다. 홈 플레이트 근처에서 포구 자세를 취해가며 심판 판정의 부당함을 강하게 어필했다. 두산 관계자는 "양의지가 홈 플레이트를 고의로 막은 것이 아니었다고 항의한 것"이라며 "처음에는 주로를 열어뒀다가 포구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막은 것이라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감독도 '비디오 판독 결과에 불복할시 자동 퇴장'이라는 규칙에 따라 퇴장 조처됐다. 두산은 결국 그 이닝에 4점을 내줬고, 접전 끝에 6-7로 석패했다.
이 감독은 다음 날 "심판 판정을 존중하고 판정 결과가 번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수긍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양의지는 다리를 미리 뺐다가 공을 잡은 뒤 (태그하러)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이상적인 플레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쉽다"고 재차 항변했다. 이 감독은 사령탑 부임 후 심판 판정에 큰 불만을 드러낸 적이 없다. 특히 승패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판정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조차 하지 않던 스타일이다. 그러나 두산이 긴 연승 후 다시 위기를 맞자 적극적인 행동으로 투지를 표출한 모양새다.
#비디오 판독 항의하면 자동 퇴장
올 시즌 가장 먼저 퇴장 당한 사령탑은 취임 첫 시즌을 보내고 있는 박진만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다. 박 감독은 13일 대구 LG전에서 7회 말 비디오 판독 결과에 항의하다 자신의 부임 첫 퇴장이자 올 시즌 감독 1호 퇴장 명령을 받았다. 삼성이 2-7로 뒤진 7회 말 선두타자 김지찬이 중전안타를 치고 나갔고, 이어 김태군이 좌익선상으로 빠지는 안타를 날린 뒤 2루까지 뛰었다.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한 김태군의 손이 먼저 2루에 닿아 세이프가 선언되는 듯했다. 그러나 LG 2루수 정주현이 두 번째 태그를 하는 순간 김태군의 손이 베이스에서 잠시 떨어져 아웃 판정이 나왔다. 김태군은 곧바로 벤치에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지만, 판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자 박진만 감독은 더그아웃을 뛰쳐나와 "정주현이 글러브로 김태군의 손을 밀어낸 것 아니냐"고 강력하게 항의하다 자동 퇴장을 당했다.
이강철 KT 감독은 6월 24일 KIA 타이거즈와 광주 경기에서 6회 말을 앞두고 비디오 판독 결과에 항의하다 퇴장 명령을 받았다. KT가 1-3으로 뒤진 6회 초 2사 1·2루에서 안치영이 우전 안타를 쳐 2루 주자 문상철이 홈으로 들어온 상황이었다. KT는 1점 차로 추격했다는 희망에 부풀었지만, KIA가 비디오 판독을 신청한 결과 아웃으로 판정이 번복돼 득점이 무효화됐다. 곧바로 이 감독이 "KIA 포수 신범수가 홈플레이트를 막았다"며 홈 충돌 방지 관련 비디오판독을 재차 신청했지만, 심판진은 "종합적으로 상황을 판독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감독은 격분하며 거세게 항의하다 자동 퇴장을 당하면서 선수단에 '그라운드에서 철수하라'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결국 KBO는 사흘 뒤 "경기 도중 심판의 퇴장 조치 후 선수단을 향해 그라운드 철수를 지시한 이강철 감독에게 경고 조치했다"고 발표했다. KBO리그 규정 1조 4항은 '감독이 어필 도중 또는 종료 후 선수단을 그라운드에서 일부 또는 전부 철수하는 경우 원활한 경기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로 감독을 즉시 퇴장시킨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감독은 이 조항 적용에 앞서 비디오 판독 관련 항의로 이미 자동 퇴장 조치된 뒤였는데, 이후 선수단에 철수를 지시해 경고까지 받았다. KBO는 "이번 사례와 같이 향후 원활한 경기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가 재발할 경우 엄중 처벌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 감독 역시 "내가 화가 난 상태로 뱉은 말 하나하나가 문제 사유가 되더라. 그 부분은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며 "1-3이라 이긴다는 보장은 없더라도 끝까지 해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퇴장을 당하면서 정말 아쉽고 안타까웠다"고 털어놨다.
#볼판정 항의도 금물
이외에도 래리 서튼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7월 23일 키움전에서 4-3으로 앞선 5회 초 무사 1·2루 위기에서 심재민이 상대 팀 로니 도슨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줘 무사 만루 위기가 이어지자 더그아웃에서 뛰어나와 주심의 볼 판정에 항의했다. 스트라이크-볼 판정은 심판의 고유 권한으로 인정해야 하지만, 팀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상황에서 서튼 감독이 화를 참지 못했다. 심판진은 경고했지만 서튼 감독이 항의를 멈추지 않아 결국 퇴장 명령이 떨어졌다.
서튼 감독은 다음 경기를 앞두고 "감독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선수를 보호하는 것"이라며 "당시 스트라이크 판정이 불규칙했다. 팀과 선수들을 위해 싸운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서튼 감독은 지난해에도 거친 항의로 두 번이나 퇴장당한 경험이 있다. 지난해 5월 18일 KIA전에서 상대 팀 소크라테스 브리토의 좌익선상 2루타에 관한 비디오 판독 결과에 항의하다가 퇴장 명령을 받았다. 또 지난해 9월 9일 삼성전에선 롯데 황성빈의 도루가 비디오 판독 끝에 세이프에서 아웃으로 바뀌자 항의해 퇴장당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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