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서는 무엇보다도 ‘말’이 중요하다. 물론 침묵까지도 말이다. 적절히 말한다는 것과 말이 많다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말로 강동 6주를 회복한 서희가 말이 많았을까? 아닐 것이다. 사실 말이 많은 사람, 침묵할 줄 모르는 사람이 적절한 리더십을 행사하기는 쉽지 않다.
리더의 자질 중의 자질은 바로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조직을 이끌거나 여론을 수렴해야 하는 자가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가리지 못하면 폭탄을 들고 있는 것과 같아서 어떤 일도 되지 않는다. 정약용 선생은 말을 할 때는 필요한 말인지, 덕이 되는 말인지, 그리고 상대가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했다.
우리 모두 알 듯 정약용 선생은 생의 반을 귀양지에 보냈다. 선생에게 귀양은 무엇이었을까. 알 수는 없지만 정조의 사랑과 지지 속에서 승승장구하며 유능한 관료로만 살았다면 우리는 그저 그를 역사의 한 줄로만 기억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우리가 그를 기억하며 문득문득 소환하는 이유는 유배지에서 선생이 배운 지혜 때문일 것이다.
독살설이 힘을 가질 정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정조대왕 사후 선생의 집안은 박살이 났다. 오죽하면 1801년 신유박해를 정약용 일가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까. 형 정약종은 죽고, 약전과 약용은 귀양을 가야 했다. 절망적인 삶이었을 것이다.
하늘이 바뀌자 조정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들에게 모함되어 정치적 희생양으로서 험난하고 고독한 삶을 살면서 그가 쓴 책과 편지에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시선을 내부로 돌리며 연꽃으로 피어난 중심의 힘이 보인다.
그는 강진에서 무려 18년간이나 유배생활을 하면서 스스로를 다산(茶山)이라 칭했다. 언제 사약이 내려올지 모르는 귀양지에서 차 한 잔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이는 이미 스승일 수밖에 없다. 그는 혜장선사, 초의선사와 가깝게 지내며 스스로 보왕삼매론의 마지막을 배우게 된 것 같다.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이르시기를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의 문을 삼으라.”
부당한 모함을 삼키며 분노를 삭인 그에게 배운다. 삼키고 삭이면 자기에너지가 된다는 것을. 그렇게 만인의 스승이 된 그는 ‘목민심서’ 등 우리가 아는 다양한 책을 쓰면서 종종 유배지에서 가족과 지인들에게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기도 했다. 벼슬도 잃어보고, 형제도 잃어보고, 땅도 잃어보고, 꿈도 잃어본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변치 않는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지 고작 땅주인 되는 데 인생을 걸어서야 되겠는가.”
마음의 주인이 되는 방법으로 그가 강조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입단속이었다. 말이 많아지면 끊임없이 흔들려 타고난 성품 그대로 살기 어렵다. 오죽하면 그가 호랑이 입보다 사람의 입이 무섭다고 했겠는가. 특히 리더는 말의 무게가 있어야 한다. 당연히 많은 말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왜곡할 준비가 되어있는 상대가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 많아지면 실수하게 된다. 정약용 선생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삼가야 할 덕목으로 말실수를 들었다. 말실수 중에 ‘일침’이 들어있는 것이 신기했다. 그가 말한다. 어제 한 말을 오늘 뒤집고, 뭘 뒤집었는지 관심도 없는 리더에게 일침을 놓는 것이 무슨 덕이 되겠냐며 차라리 묵언하라는 것이다.
말실수가 잦은 사람이 중심인 조직은 끊임없이 흔들린다. 중심이 없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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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