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교육 질적 향상 위한 법 개정 목소리…팬데믹 이후 인력 감축 탓에 보안 점검 ‘수박 겉핥기’ 지적도
#법률만 지키면 문제가 없나?
지난 6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2022년 세계 항공편 568편 당 1건의 기내 난동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2021년에 비해 약 47%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자주 발생한 기내 난동 중 언어폭력과 기내 만취 빈도는 각각 61%, 58% 증가했다. 국내에서도 아시아나 항공기 문열림 사고 등 보안 사고 발생이 늘어나는 추세다.
보안 사고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지만 이와 관련된 교육 시스템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민간항공보안 교육훈련지침에 따르면 항공사의 신규 객실 승무원에게 할당된 보안 교육 의무 시수는 8시간이다. 대한항공 실탄 미적발 사고 이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보안 강화를 주문했으나 의무시수는 여전히 8시간에 머물고 있다. 대한항공의 한 직원은 “실탄 미적발 사고 이후 위해물품 교보재가 추가되었고 보안 관련 콘텐츠를 강화해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다만 정해진 교육 시간은 그대로”라고 말했다.
국가민간항공보안 교육훈련지침에 따르면 항공 관련 보안교육에는 △항공기의 운항 전 보안 점검 △운항 중 조종실 보안 관련 정책 및 절차 △항공기 납치 시 대응 및 인질협상 기법 △항공기의 폭발물 위협 대응 절차 △사보타지 시 항공기 수색 절차 △운항 중 폭발물 발견 시 처리절차 △잠재 난동자 행동 형태 인지 및 난동 시 대응 방법 등 총 17개의 목차가 있다. 황경철 한국항공대학교 한국항공안전교육원 부원장은 “다 가르치도록 되어 있는데 도저히 8시간 안에 숙지할 수 있는 분량이 아니다”라며 “법에 명시되어 있는 의무 시수 자체가 지나치게 적고 대한항공도 최소한만 지키는 셈”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지난 3월 10일 필리핀 마닐라행 여객기 안에서 9mm 실탄 2발이 발견되면서 곤욕을 치렀다. 특히 승객으로부터 실탄을 전달받은 승무원이 쓰레기로 착각해 2번째 실탄이 발견될 때까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이 드러나 질타를 받았다. 실탄을 사전에 발견하지 못한 보안검색요원은 검찰에 송치됐으나 대한항공은 항공보안법 제51조 1항에 따라 과태료 처분을 받는 데 그쳤다.
이와 관련, 조성환 서울문화예술대 항공보안학과 교수는 “(실탄을)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탑승교 조작판 위에 올려놨다”며 “비행시간을 지연시키지 않기 위해 보안을 허술하게 처리한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고 더 강도 높은 수사와 조치가 이뤄졌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승무원이 잘못한 건 맞지만 항공사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한 부분이 있기는 하다. 무기 등 총포류는 엑스레이 통과 시에 걸러졌어야 하는 게 맞고 항공사까지 넘어오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라며 “승무원들도 보안보다는 안전과 서비스를 주 업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만 늘릴 게 아니라 보안교육 자체를 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법률 정비 계획이지만 효과는 ‘글쎄’
정부도 관계 법령을 일부 정비할 준비를 하고 있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2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선임 객실 승무원(기내 보안 요원)과 일반 객실 승무원들은 각각 1년에 3시간, 2시간씩 보수 교육을 의무 이수해야 한다. 신규 승무원 교육과 마찬가지로 의무시수가 지나치게 적어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향후 관련 규정 개정을 추진해 기내 보안 요원 교육 시간은 3시간에서 5시간으로, 일반 승무원 교육 시간은 2시간에서 3시간으로 늘릴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앞서의 조성환 교수는 “일반인들에게 보안 교육 시간을 조금씩 늘려 가르친다고 효용이 생기지 않는다. 채용 단계에서부터 보안 의식이 갖춰진 지원자를 뽑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거 국내에도 무도 특기자 등을 가려 뽑는 보안 승무원 제도가 있었지만 인건비 등의 이유로 1994년 6월 폐지됐다. 현재는 2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남성 승무원들이 유사한 보안 업무를 겸직하고 있다. 그나마 대한항공은 2016년부터 2022년 말까지 객실 승무원 채용 시 ‘태권도, 검도, 유도, 합기도 등 무술 유단자는 전형 시 우대’한다는 조건을 내세운 바 있지만 올해 6월에 열린 신규 승무원 공개채용 프로세스에서는 그마저도 우대 사항에서 누락됐다.
항공사의 비용 감축 전략이 보안 사고 우려를 키우는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대한항공은 올해 5월 ‘노쇼’ 고객을 대비해 비용을 아끼려다 뒤늦게 추가 기내식을 들여오는 과정에서 보안 규정을 미준수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기도 했다. 대한항공 다른 직원은 “가장 큰 문제는 코로나 시국에 서비스 간소화를 이유로 탑승객 수 당 승무원 수를 줄였는데 정상화된 지금도 원상복귀가 되지 않은 점이다. 업무량이 과도해 지상 보안 점검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뤄진다”라고 말했다. 이어 “보안 점검이라는 것이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소홀해도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지금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문제를 조용히 안은 채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항공업계도 현재 비용절감이 절실한 상태다. 게다가 코로나 19를 계기로 침체 시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나락으로 갈 수 있다는 걸 항공사들이 이번에 체감했다”며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특성상 보안·안전 이슈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법령을 좀 더 과감하게 개정해 사고 방지를 위한 무거운 의무를 지울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 관계자는 “해당 사건 후 보안점검 강화, 브리핑 시 재강조, 교육자료 및 매뉴얼 관련내용 수정(시청각자료 등 업데이트), 관계기관 보고 프로세스 강화 등 재발방지 대책 수립 및 관리를 진행하고 있다”며 “유단자 채용 관련해서는 실제 업무와 크게 연관성 있는 부분은 아니어서 채용 공고 문구 간소화 및 개선 차원에서 해당 우대 조건을 삭제했으며 실제로 그간 무술 유단자 출신 지원자 수는 매우 미미했다”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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