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사고 이후 SPC그룹 계열사에 대해 기획 감독을 실시했는데, 전체 52개 사업장의 86.5%에 해당하는 45개 사업장에서 총 277건의 산업안전 관련법 위반이 있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사고 원인을 더 구체적으로 규명해야겠지만, 사업장 내 안전보건관리는 총체적으로 실패했음이 분명하다. 법률적 책임은 향후 조사와 법적 절차를 통해 묻겠지만, 그와 별개로 안전보건관리 실패에 대한 경영상 책임은 당연히 경영진에게 있다.
그러나 안전보건관리에 실패한 경영진과 회사에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충분히 물었는지는 의문이다. 지난해에도 이번에도 SPC그룹을 향한 사회적 공분이 일었고, 회사는 정해진 수순처럼 ‘깊은 위로’와 함께 사고 원인 파악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왠지 모를 기시감과 함께, 이번에도 딱 여기까지일 것 같다는 회의감이 든다. 사실 우리 사회는 ‘일하다 죽을 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꽤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산재 사망사고 속보를 홈페이지를 통해 알린다. 샤니 공장에서 사망사고가 났던 8월 8일 다른 노동 현장에는 지게차로 자재를 운반하던 중 1명이 자재에 깔려 사망했고, 천장주행 크레인으로 자재 인양 중 회전하는 인양물에 맞아서 1명이 사망했다.
유독 이날만 사망사고가 많았던 것은 아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2년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람은 총 2223명이다. 이 중 사고 사망자수는 874명, 질병 사망자수는 1349명이었다. 하루 평균 2.4명이 사고로 사망했고, 질병을 포함해 6.1명이 산재로 사망했다.
샤니 사고는 SPC그룹에서 재차 발생한 사고였기에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을 뿐, 사실 국내에서는 매일 이 정도로 노동자가 일하던 중 사망한다. 사망사고만인율(근로자 1만 명당 산재 사망자수)은 예상대로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 순위로 한때 10위까지 오르기도 했고, 현재 13위인 대한민국의 어두운 단면이다.
앞서도 강조했지만, 법률적 책임과 별개로 안전보건관리 실패에 대한 최종적·포괄적 책임은 경영진에게 있다. 이사회가 실질적으로 구성되고 운영될 만큼 규모가 있는 회사라면, 이사회가 안전보건에 대해서도 관리 및 감독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물론, 법과 제도로 강제하는 안전보건관리도 매우 중요하고, 그마저도 제대로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안전보건관리는 결국 회사가 수행하는 것이다. 나아가 경영진과 이사회가 안전보건관리에 대한 실질적인 책임을 부담해야만 회사의 자발적인 안전보건관리도 개선될 수 있다. 경영진이 수익 확대나 이윤 창출만큼 안전보건을 중요하게 인식한다면, 산재는 지금보다 훨씬 감소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 투자자 등 기업의 이해관계자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 모두가 ‘일하다 죽을 수 있다’가 아니라, ‘일하다 죽어서는 안 된다’라는 믿음을 공유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지속가능한 기업의 성장과 경제 강국으로 도약도 어려울 것이다.
최근 유행처럼 상장대기업을 중심으로 이사회 내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위원회’가 신설됐다. 이사회가 ESG 이슈를 직접 담당하려는 변화이므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ESG위원회가 실질적인 역할을 할 때 비로소 그 취지가 실현될 수 있다.
특히 기업마다 중요한 ESG 이슈가 서로 다른 만큼, 보다 중요한 이슈에 책임과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사업장에서 두 번의 붕괴사고가 발생했던 HDC현대산업개발은 APG(네덜란드 공무원연금 운용사)의 주주제안을 계기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이사회 내에 설치했고, 그 권한과 책임을 정관상 매우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다른 기업에게도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노종화는 회계사이자 변호사다. 현재(2017년 5월~)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3월부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상근)으로도 재직 중이다.
노종화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