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동 용도변경 등 배임 혐의에 이 대표 “박근혜 정부의 요구” 반박…회기 중 영장 치면 민주당 또 소용돌이
#벌써 4번째, 이재명 출석하던 날
8월 17일 오전 9시쯤 촛불연대 등 이재명 민주당 대표 지지자 수백여 명이 서울중앙지검 동쪽 정문 앞에 결집했다. 이경 민주당 상근부대변인 등 원외 인사들도 함께했다. 그들은 ‘검찰 독재 정권 반드시 이겨낸다’ ‘윤석열 퇴진·김건희 구속’ 등이 적힌 손 팻말을 들고 있었다. 반대쪽 서쪽 옆문에는 신자유연대 등 보수성향 단체가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대형 트럭에 전광판과 대형 스피커를 설치하고 ‘이재명 구속’을 외쳤다. 이날 경찰은 기동대 10개 중대를 배치하고, 차로 통제에 나서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오전 10시 24분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서울중앙지검 동쪽 정문 앞에 도착했다. 그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나눈 뒤 단상 위에 올라 A4용지 2쪽 분량(1900자) 입장문을 읽어 내려갔다. 지지자들은 “이재명”을 연호하며 이 대표를 응원했다.
이재명 대표는 “벌써 네 번째 소환”이라며 “저를 희생 제물 삼아 윤석열 정권의 무능과 정치실패를 덮으려는 것 아니겠나. 없는 죄를 조작해 뒤집어씌우는 국가폭력, 정치검찰의 공작수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나”라고 반문했다. 이 대표는 “권력이 영원할 것 같지만, 화무도 십일홍”이라며 “(윤석열) 정권의 이 무도한 폭력과 억압도 반드시 심판받고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단 한 푼의 사익도 취한 바가 없다”며 “티끌만큼의 부정이라도 있었다면 10여 년에 걸친 수백 번의 압수수색과 권력의 탄압으로 이미 가루가 돼서 사라졌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떤 고난에도 굽힘 없이 소명을 다하겠다. 기꺼이 시지프스가 되겠다”고 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로부터 바위를 정상에 올려놓는 일을 무한 반복하는 영원한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에 본인을 빗댄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입장문 낭독을 마친 뒤 오전 10시 40분쯤 서울중앙지검 현관 포토라인에 섰다. 그는 “이런 무도한 일을 벌인다고 이 무능한 정권의 정치 실패, 민생 실패가 감추어지지 않는다”고 짧게 말한 뒤 조사실로 향했다. 이 대표는 올해만 총 4번의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앞서 △‘성남 FC 불법 후원금’ 의혹(1월 10일) △대장동·위례신도시 개발 특혜 의혹(1월 28일, 2월 10일)으로 세 차례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부장 엄희준)는 이재명 대표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위증교사 등의 혐의로 피의자 신문을 진행했다. 별도의 티타임은 없었다. 수사팀은 약 300쪽 분량 질문지를 바탕으로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 개입 여부, 범죄 동기 등을 캐물었다. 이 대표는 30쪽짜리 서면진술서로 답변 대부분을 갈음하며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이 대표가 2019년 2월 ‘검사 사칭 의혹’ 관련 재판에서 백현동 사업 관계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도록 종용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가 진행됐다.
이재명 대표는 8월 18일 새벽 0시쯤 조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취재진에게 “객관적인 사실에 의하면 전혀 문제될 수 없는 사안인데 목표를 정해놓고 사실과 사건을 꿰맞춰 간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며 “제가 검찰에 진짜 배임죄는 용도 변경을 조건으로 땅을 팔았으면서 용도 변경 전 가격으로 계약한 식품연구원이나 이를 승인한 국토부다, 거기가 진짜 배임죄라는 얘기를 했다”고 말한 뒤 떠났다.
#검찰, 영장청구 시기 ‘꽃놀이패’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은 2014년 1월 한국식품연구원이 부동산 개발회사 아시아디벨로퍼와 매각 합의서를 작성하면서 시작됐다. 그해 아시아디벨로퍼는 두 차례에 걸쳐 성남시에 자연녹지였던 백현동 부지를 제2종 일반주거지로 2단계 상향해달라고 신청했다. 성남시는 두 차례 모두 거부했다. 2015년 1월 아시아디벨로퍼는 이재명 대표 측근으로 알려진 김인섭 전 한국하우징기술 대표를 영입한 뒤 3차 용도 변경 신청을 냈다. 성남시는 돌연 입장을 바꿔 용도 변경을 수용했다.
2015년 9월 성남시는 연구개발(R&D) 용지 면적 비율을 일부 늘리되 백현동 부지 용도를 자연녹지에서 준주거지역으로 4단계 상향했다. 대신 용도 변경 조건으로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업 참여, R&D센터(1만 6948㎡) 완공 뒤 기부채납 등을 내걸었다. 하지만 사업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추진됐다. 공사는 특별한 이유 없이 개발에 참여하지 않았고, 기부채납은 개발 불가능한 원형보존지(7995㎡)를 받는 데 그쳤다. 임대주택 공급 계획은 100%에서 10%로 축소됐고, 나머지 90%는 수익성이 높은 일반 분양 아파트로 대체됐다.
검찰은 △백현동 부지 4단계 상향 용도 변경 △민간임대 축소·일반분양 확대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업 참여 배제 등을 특혜로 보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이 같은 특혜를 민간업체에 몰아줬고, 이로 인해 성남시가 피해를 받아 배임죄라는 것이다. 검찰은 이 대표 조사를 끝으로 구체적인 배임액 산정에 들어갔다. 앞서 2022년 7월 감사원은 공사가 10%의 지분으로 개발에 참여했다면 314억여 원(2021년 감사보고서 기준)의 분양이익을 환수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검찰은 김인섭 전 대표가 70억 원을 받고 백현동 사건에서 ‘토지 용도변경 과정의 로비스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의심한다. 김 씨는 2006년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후보 캠프 선대본부장을 지냈다. 2008~2010년에는 민주당 분당갑 부위원장으로서 위원장인 이 대표와 함께 활동했다. 2010년 성남시장 선거 때도 이 대표를 도왔다.
7월 18일 정바울 아시아디벨로퍼 대표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판사 김옥곤) 심리로 진행된 김인섭 전 대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김 전 대표가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을 대가로 현금 200억 원을 요구했고, 그중 절반은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 대표와 정진상 전 당대표실 정무조정실장에게 주려 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8월 15일 이재명 대표는 SNS에 “(김인섭 전 대표) 로비 때문이 아니라 옛 식품연구원 부지를 준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국토교통부의 요구 때문”이라며 “또한 식품연구원이 민간임대를 일반분양으로 변경해달라고 요구했고, 성남도시공사를 사업에 참여시켰다면 오히려 직권남용, 제3자 뇌물죄 소지가 있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도시기본계획에 맞추면서 아파트 용지로 바꾸라는 정부 요구를 들어줄 방법은 준주거지역 지정이 유일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추가 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구속 영장 청구 시기 검토에 돌입했다. 검찰이 국회 비회기인 8월 말과 정기국회 기간인 9월 중 언제 구속영장을 청구할지를 놓고 관측이 무성한 상태다. 비회기 때는 체포동의안 표결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법원에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아야 한다. 반면 회기 때는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이 보장되기 때문에 체포동의안 표결을 진행해야 한다.
민주당에선 검찰이 정무적 판단으로 9월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민주당이 이 대표 체포동의안을 놓고 다시 거센 소용돌이로 접어들 수 있다는 계산을 검찰에서 하고 있다는 의심이다. 지난 2월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은 ‘무더기 이탈표’ ‘방탄국회’ 등 각종 논란을 낳은 바 있다. 이는 민주당 내 친명과 비명 간 대립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실제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넘어올 경우 결과와 무관하게 민주당은 후유증이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면 이 대표는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비명계에선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한 만큼, 체포동의안이 넘어오면 가결을 당론으로 해야 한다고 압박한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더라도 방탄국회 프레임에서 피해가긴 어렵다. 민주당으로선 진퇴양난에 놓인 셈이다.
이번 영장 청구가 검찰의 ‘꽃놀이패’로 비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검찰이 체포동의안 표결 직전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스모킹건’을 공개할 것이란 얘기도 무성하다. 이 대표는 검찰 조사 전 발표한 입장문에서 “회기 중 영장을 청구해 분열과 갈등을 노리는 꼼수를 포기하고 당당하게 비회기 때 청구하라”고 촉구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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