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서 맞붙은 여야
8월 21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을 논의하기 위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전체회의가 파행됐다. 국민의힘은 청문보고서 채택을 합의한 이후 과방위 전체회의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위원장과 간사를 포함해 전원 불참했다. 반면 민주당은 당초 여야 간사 협의대로 전체회의를 열어 토론하는 시간을 갖고 채택 여부를 협의해야 한다고 반발하며 야당 단독으로 회의를 진행했다.
이날 전체회의가 열리지 않으면서 이 후보자 청문보고서 채택도 불발됐다. 8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에 이 후보자 인사청문요청안을 송부했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국회는 인사청문요청안을 받은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채택을 마쳐야 한다. 국회가 청문보고서 법정 채택 시한을 넘기면서, 윤 대통령은 10일 이내에 청문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동관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8월 22일 윤 대통령은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했다. 송부 시한은 이틀 뒤인 24일이다. 국회가 이 기간 안에도 청문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다음 날부터 임명할 수 있다.
8월 18일 여야는 이동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맞붙었다. 민주당은 이 후보자가 자녀 학교폭력 사건을 무마하고자 학교에 외압을 행사해 특혜를 받았고, 이명박 정부 청와대 대변인과 홍보수석으로 재직할 당시 ‘언론 장악’을 주도한 부적격 인사라고 규정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야당이 제기한 의혹은 정치공세일 뿐이고, 이 후보자가 낙마할 만한 중대한 사안은 없다고 맞섰다. 또한 편향된 공영방송을 정상화할 적임자임을 강조했다.
이 후보자는 아들 학교폭력에 대해 “일부 있었을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CC(폐쇄회로)TV도 없고 아무도 그 현장을 본 사람이 없다. 결국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학생들의 진술이 가장 중요한데, 나중에 진술서에 서명날인하라고 했더니 거부했다. 이게 어떻게 공식 진술서냐.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되려면 본인의 서명날인이 있어야 한다. 누구의 서명날인도 없는 것을 놓고 ‘이게 진실이니 인정하라’면 강변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재직 당시 국정원에 언론 장악을 지시했다는 민주당 주장엔 “저는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적 없다”며 “제가 (언론 사찰에) 관여했다면 (문재인 정부) 엄혹한 적폐청산 수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겠나”고 반문했다. 이어 “홍보수석실에 (국정원 직원이) 누가 한 명이 와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당시에는 몰랐다”고 해명했다.
이 후보자 아들의 1학년 시절 담임교사 A 씨는 청문회 답변을 곧바로 반박했다. 8월 18일 A 씨는 국회 소통관에서 “아이들이 썼던 글 안에 23개의 폭력 사건이 있었다”며 “한두 개 갖고도 학폭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후보자 부인이 아들의 생활기록부 내용을 고쳐 달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A 씨가 집사람과 아이에게 전화해 ‘미안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A 씨는 “그런 적 없다”고 반박했다.
#언론 장악 마지막 퍼즐?
시민단체 등은 이동관 후보자 임명이 윤석열 정부의 언론 장악을 위한 마지막 퍼즐이라고 주장한다. 8월 23일 참여연대 등 41개 시민사회단체는 “윤 대통령이 이동관 후보자 임명을 강행한다면, 언론 장악을 반드시 해내겠다고 국민 앞에 선언하는 것”이라며 “대통령과 청와대, 국정원, 검찰, 감사원 등이 한 몸처럼 움직였던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과 여론조작 공작을 재현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은 “이동관 후보자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특별고문, 대통령 대외협력특별보좌관 등 지낸 만큼 방통위법 제10조에 따라 정치적 독립성이 필요한 위원의 결격사유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언론계 이사진의 ‘줄 해임’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안형환 전 위원장 후임으로 민주당이 추천한 최민희 전 민주당 의원을 방통위원으로 임명하지 않았다. 5월 30일 윤 대통령은 임기 만료 두 달을 남겨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을 면직했다. 그렇게 방통위는 2 대 1 여야 구도로 재편됐다. 5인 체제인 방통위는 대통령(2명), 여당(1명), 야당(2명)에서 각각 임명한다.
김효재 방통위원장 직무대행(국민의힘 추천)과 이상인 상임위원(윤 대통령 추천)은 야권 성향인 공영방송 이사 4명의 해임안이나 해임건의안을 의결했다. 윤 대통령도 해임건의안을 곧바로 재가했다. △윤석년 KBS 이사(7월 12일) △남영진 KBS 이사장(8월 14일) △정미정 EBS 이사(8월 14일)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8월 21일) 등이다. 김현 상임위원(민주당 추천)은 해임 건의에 반발하며 회의에서 퇴장하거나, 불참했다.
이 밖에도 8월 17일 윤석열 대통령은 정연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과 이광복 부위원장을 해촉했다. 정연주 위원장 임기는 2024년 7월까지였다. 표완수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 해임안도 이사회에 상정됐지만 8월 16일 재적 이사 과반수(5명)가 찬성하지 않으면서 부결됐다. 표결 결과는 찬성 4명, 반대 2명, 기권 2명이었다.
해임을 둘러싼 법정 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 한상혁 전 위원장은 면직 취소소송을 진행 중이다. 남영진 이사장과 권태선 이사장은 해임 취소소송을 제기하고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정연주 전 위원장과 이광복 전 부위원장도 윤석열 대통령의 해촉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했다.
정연주 전 위원장은 “꼭 15년 전 이명박 대통령은 검찰, 감사원, 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총동원해 나를 구차스러운 방식으로 KBS 사장에서 해임했다”며 “이번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나를 해임했다. 15년 전처럼 기록과 법적 대응으로 무도한 윤석열 대통령 집단과 다시 싸워야겠다”고 입장문을 냈다.
8월 21일 남영진 전 이사장과 권태선 전 이사장, 유시춘 EBS 이사장 등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대통령은 공영방송 장악을 당장 멈춰야 한다”며 “방통위는 법적 근거나 절차를 완전히 도외시하고 군사작전하듯 이사들의 해임을 밀어붙였다. 해임 사유에 대한 감사원이나 국가권익위원회 조사가 끝나지 않았으나 무시했고, 당사자들의 방어권도 보장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은 윤 대통령이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들을 공영방송 이사에 앉힌 뒤 사장들을 교체해 친정부 일변도의 공영방송을 획책한다고 강하게 의심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언론자유특별위원회 소속 한 의원은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언론계 이사진 해임 사태와 이동관 후보자 임명 강행이 함께 맞물려 있는 사안”이라며 “국정조사는 당연히 요구할 것이고, 원내 대책 차원에서 개별 사안을 종합적으로 묶어서 다룰 계획이다. 결코 그냥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청문보고서 미채택 비율 절반 육박
이동관 후보자는 윤석열 정부 들어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16번째 사례가 될 전망이다.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2년 4월부터 8월 23일까지 제출된 인사청문요청안은 총 39건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을 포함해 20명의 청문보고서만 채택됐다.
정호영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 등 3명의 인사청문요청안은 낙마를 이유로 철회됐다. 낙마 인사까지 포함하면 39명 중 19명의 청문보고서가 미채택됐다. 윤석열 정부 15개월간 청문보고서 미채택 비율이 48%에 달한다.
청문보고서 미채택 장관은 △박진 외교부 △이상민 행정안전부 △원희룡 국토교통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한동훈 법무부 △김현숙 여성가족부 △박순애·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영호 통일부 등 9명이다. 나머지 6명은 △윤희근 경찰청장 △이원석 검찰총장 △김창기 국세청장 △김승겸 합참의장 △김주현 금융위원장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등이다.
윤 정부와 같은 기간 문재인 정부가 임명 강행한 고위직 인사는 6명에 불과했다. 구체적으로 장관은 △강경화 외교부 △안경환 법무부(낙마로 인한 철회) △송영무 국방부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등 4명이다. 이 밖에 2명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다. 청문보고서 미채택 비율이 가장 높았던 문 정부를 넘어 윤 정부가 역대급 기록을 단시간에 세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2021년 3월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역대 정부 청문보고서 미채택 비율은 △문재인 정부 28.7%(108명 중 31명) △이명박 정부 23%(113명 중 26명) △박근혜 정부 14.9%(94명 중 14명) △김대중 정부 12.5%(16명 중 2명) △노무현 정부 6.2%(81명 중 5명)의 순이다. 이후 문 정부는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노형욱 국토부 장관, 김오수 검찰총장, 김의철 KBS 사장 등 4명을 추가로 임명 강행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