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싱크탱크’ 내세우지만 정치권과 연결 불가피…류진 회장보단 총수들 연락 상근부회장 파워 클 듯
지난 8월 18일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삼성의 전국경제인연합회 복귀 여부에 대해 논의한 후 이찬희 위원장을 통해 전한 결과다. 문맥을 보면 준감위는 전경련 가입을 찬성하지 않지만 이사회에서 결정할 상황이니 반대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사회의 가입 결정을 미리 예견한 듯 정경유착 행위 지속 시 즉시 탈퇴하도록 권고한 사실도 밝혔다. 향후 문제가 되더라도 준감위에는 책임이 없다는 뜻이다.
이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을 계기로 전경련을 탈퇴했던 4대 그룹(삼성·SK·현대차·LG)은 일부 계열사가 형식상 회원사로 합류하는 방식으로 한국경제인협회에 가입했다. 하지만 향후 한경협이 준감위의 우려를 떨쳐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2월 전경련은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을 흡수·통합하고 경제단체인 한국경제인협회로 변신하겠다는 혁신안을 발표했다. 한경협은 기본적으로는 싱크탱크 기능을 하고 주요한 의사결정은 주요 그룹 회장들로 구성된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에서 한다는 것이 골자다.
전경련은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1961년 일본의 게이단렌(경단련)을 본떠 만든 대기업 총수들의 모임이다. 정부와 재계의 연락창구로 주로 기능했지만 권위주의 정부 시절 여당의 정치 후원금을 대주는 역할까지 했다. 권력이 돈을 요구하면 전경련이 기업들의 돈을 모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는 정부 주도의 빅딜을 전경련이 나서서 실행하면서 재계 내부의 반발을 샀다.
정부와 주요 그룹 총수들 사이에서 역할을 하는 상근부회장의 힘이 커지면서 21세기 들어서는 주요 그룹 총수들이 실권이 없는 회장직을 서로 맡지 않으려는 풍조가 확산됐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재계를 대표하는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했고 2021년에는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처음으로 최태원 SK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을 맡게 된다.
한경협 초대회장은 풍산그룹 유진 회장이다. 풍산의 외형은 중견기업 수준이다. 덩치가 훨씬 큰 기업들의 총수가 풍산 회장이 이끄는 위원회에 직접 참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BRT보다는 총수들과 연락책이 될 상근부회장의 힘이 여전히 클 수 밖에 없다.
한경협이 내세우는 싱크탱크 기능 역시 애매하다. 국제적으로 싱크탱크는 대부분 로비집단과 연결된다. 한경협이 싱크탱크 기능을 제대로 하려면 정책과 제도에 반영돼야 한다. 재계에 유리한 정책을 표방하는 정당을 대선에서건 총선에서건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정부나 정치권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한경협에 재계가 복귀하면서 가장 큰 수혜를 얻는 쪽은 정부와 한경협 내부다. 경제 정책을 펼치려면 재계와의 소통이 필요하다. 국정농단 이후 정부의 재계 소통 창구는 대한상의가 대신했지만 주요 그룹 총수와의 연결고리가 약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재계와 소통할 수 있는 길이 넓어진 셈이다.
2016년 전경련의 회비수익은 408억 원에 달했다. 70%가량이 삼성·현대차·LG·SK 등 4대그룹이 낸 돈이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대기업들의 탈퇴하면서 회비수익은 100억 원 안팎으로 급감한다. 기업들이 전경련 회관 입주를 꺼려 임대수익도 급감했다. 희망퇴직과 임직원 급여 삭감 등이 이뤄졌다. 하지만 2021년부터 임대가 이뤄지면서 사정이 나아졌다.
2016년 246억 원이던 일반회계 사업수행비용은 지금까지 30억 원대로 감소했다. 논란이 됐던 사업협력회계를 폐지한 것도 이 때다. 인건비 역시 90억 원대 후반이던 게 2018~2019년에는 50억 원대로 줄었으며 그나마 2021년 들어 64억 원으로 증가했다. 4대 그룹 계열사들의 가입으로 회비수익이 늘어나게 되면 임직원들도 상당한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최열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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