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LH 혁신과 카르텔 혁파 차질 없이 이행” 주문…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등 정책 연속성도 고려
이한준 사장은 1951년생으로 한양고등학교와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를 졸업했다. 이 사장은 1979년부터 국토연구원, 한국교통연구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이 사장은 2006년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의 도지사직 인수위원회 총괄간사로 활동하며 정치권과 인연을 맺었고, 2008년에는 경기도시공사(현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 사장은 경기도시공사 사장 재직 당시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사업을 최초로 제안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사장은 2011년 경기도시공사 사장 퇴임 후 아주대학교 초빙교수로 활동하다가 2022년 LH 사장으로 선임되면서 다시 한 번 공기업 수장에 올라섰다.
그러나 LH가 최근 ‘철근 누락’ 및 ‘전관예우’ 논란에 휩싸이면서 이한준 사장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에 놓였다. 일각에서는 이 사장이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도 나왔다. 이에 이 사장은 지난 8월 11일 “LH를 혁신하기 위한 첫 번째 조치로 상임이사 모두에 대한 사표를 제출받았다”며 “임직원 모두의 사직서와 함께 저의 거취도 국토교통부(국토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의 뜻에 따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사장이 스스로 사퇴할 생각은 없다고 밝힌 셈이다.
이한준 사장이 언급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연일 LH 비판에 나섰다. 원 장관은 지난 8월 9일 “LH가 존립의 근거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어 지난 8월 20일에는 “전관을 고리로 한 이권 카르텔은 공공 역할에 대한 배신일 뿐 아니라 민간 자유 경쟁시장을 왜곡시키고, 공정한 경제 질서를 정면으로 파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국토부는 오는 10월 중 건설 분야 이권 카르텔 혁파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하지만 원희룡 장관은 LH에 구조적인 개혁을 요구할 뿐, 이한준 사장의 거취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11일 원 장관과 이 사장에게 “LH 혁신과 건설 카르텔 혁파를 차질 없이 이행하라”고 주문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놓고 윤석열 대통령이 이한준 사장을 사실상 재신임한 것으로 풀이한다. 윤 대통령이 재신임한 이상 원 장관이 이 사장에게 사퇴를 요구할 수는 없다. 국토부 관계자는 향후 이 사장 거취와 관련한 일요신문 질의에 “LH 사장 임명 등은 정부에서 결정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한준 사장 재신임이 예고된 수순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의 주문 후에는 이 사장이 LH 내부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이 사장은 지난 8월 20일 기자회견을 열어 “7월 31일 이후 채택된 LH 설계 공모 당선업체는 전면 재심사를 하겠다”며 “문제가 드러난 업체는 입찰 제한뿐 아니라 더 강한 페널티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원활한 정책 수행을 위해 이한준 사장을 재신임한 것으로 풀이한다. 윤석열 정부의 최근 현안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이다. 이한준 사장을 비롯한 LH 임직원은 지난 7월 11~15일 우크라이나 재건 기업간담회 참여를 위해 폴란드 바르샤바로 출장을 떠났다. LH는 당시 기업간담회 외에도 현지 모듈러 주택 기업과 면담하는 등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로드맵 구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크라이나 재건 기업간담회에 참석한 기업 중 공기업·공공기관은 LH, 한국수자원공사, 수출입은행 등 세 곳이다. 이 중 도시개발 전문기업은 LH뿐이다. 이한준 사장은 기업간담회에서 “민간기업과 협력해 도시 재건 마스터플랜 수립, 산업단지 조성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 사장이 사퇴하면 정부 주도의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LH는 최근 논란이 불거지자 상임이사 5명으로부터 사직서를 제출 받았고, 이 중 4명이 사직 처리됐다. 박동선 LH 지역균형발전본부장의 사직서만 유일하게 수리되지 않았다. 오히려 LH는 최근 박 본부장의 보직을 부사장 직무대행으로 변경했다. 박 직무대행은 이한준 사장의 폴란드 출장에 동행한 유일한 임원이다.
윤석열 정부의 공공주택 정책에서도 LH의 역할은 크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당시 ‘뉴:홈’ 브랜드의 공공주택 50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공약했다. LH는 올해 초 업무계획에서 윤석열 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향후 5년 동안 공공분양 주택 31만 6000호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계획인 50만 호 중 63.20%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한준 사장은 지난 8월 20일 “현재 심사 및 선정이 취소된 11개 사업장은 총 2800가구 정도”라면서도 “공공주택 50만 가구 공급일정 차질과 관련해 미뤄진 사업을 당겨서 전체적으로 공급 물량에 차질이 없도록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공기업은 관리가 주요 업무지만 LH는 직접적으로 국토를 개발하는 업무를 수행하며 정부의 정책도 꾸준히 수행해야 한다”며 “당장 LH에 대한 개혁을 대대적으로 수행하면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일시 중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책의 연속성을 고려할 때, LH에 대한 조직 개편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한때 LH 해체 소문이 오갈 정도로 고강도 개혁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국토부는 LH의 일부 조직만 축소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 국토부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최근 LH 현장에 감리 인력이 부족한 부분이 드러나면서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게끔 LH 체계 개편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이한준 사장의 퇴임이나 LH의 대대적인 개혁을 계획한다면 소문이 들리기 마련인데 아직까지 들려오는 이야기가 없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LH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정책 수행뿐만 아니라 LH에 대한 신뢰 회복도 이한준 사장의 숙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이한준 사장에 대한 사퇴까지 주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퇴를 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책임지고 LH를 개혁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검단신도시 안단테 붕괴 사고의 경우도 발주한 LH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데 현재 제도적으로는 LH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제도가 미비하다. 제도적인 개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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