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준비를 하는 제작진으로서는 당장 일주일 후에 촬영해야 하는데 어디서 청개구리를 구하고 어디서 무당벌레를 구해야 한단 말인가 하고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차였다. 누군가는 경동시장에 가면 있을 거라고 했다. 약재상을 가면 있을지도 모른다 해서 시장을 돌아다니며 수소문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청개구리와 무당벌레를 구할 수는 없었다.
나와 선배는 차라리 이럴 바엔 우리가 직접 구하자고 결론을 내리고 실행에 들어갔다. 당시 서울 근교에서 청개구리와 무당벌레, 민들레를 구할 수 있는 곳은 양평 쪽이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차를 몰고 양평으로 갔다. 양평군 양서면에 있는 국수역에서 차를 돌려 마을 쪽으로 향하니 예상한 대로 여러 명의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서 놀고 있었다.
난 10명 남짓한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돌리면서 말했다.
“애들아, 아저씨가 일주일 있다가 올 테니까 너희들이 청개구리, 무당벌레, 그리고 민들레를 구해 놔라. 청개구리는 500원, 무당벌레는 300원, 민들레도 300원씩 쳐줄게. 그리고 그때는 아이스크림하고 떡볶이도 사줄게.”
아이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러대며 좋아했다. 아이들은 이미 아이스크림을 들고 산 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와 선배는 너무나 간단하게 고민을 해결한 우리의 아이디어가 스스로 대견해서 그날 양평에서 물놀이도 하고 둘이서 맛난 음식도 사 먹었다. 일주일 후 나와 선배는 아이들과 약속한 국수역 뒤 마을 놀이터 앞으로 갔다.
멀리서도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좋아하는 것이 보였다. 막상 놀이터 앞으로 가자 어머니들 서너 분이 같이 서 계셨다.
나와 선배는 잔뜩 화가 난 표정의 어머니들을 보고는 도대체 무슨 일이지하며 다가갔다. 어머니들 앞에는 그간 아이들이 잡아놓은 청개구리, 무당벌레가 과실주 담그는 커다란 유리병에 엄청나게 들어 있었고 라면박스 안에는 아이들이 채취한 민들레가 수도 셀 수 없을 만큼 빽빽이 들어있었다.
나와 선배는 그냥 청개구리 10여 마리 무당벌레 10여 마리 정도 예상을 했고, 민들레도 그냥 열 송이 정도 구해 놓을 줄 알았는데 아이들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엄청나게 청개구리와 무당벌레를 잡았고 민들레도 엄청 채취해두었다.
우린 예산으로 2만~3만 원 정도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잡아놓은 걸 다 계산하면 30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이들의 어머니들은 진짜 우리가 돈을 주는지가 의심스러워 나와 계셨던 거였다. 그중 한 어머니가 우리에게 “아니 도대체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했길래 애들이 학교도 안 가고 들로, 산으로, 개울로 다니면서 하루 종일 밥도 안 먹고 당신들이 시킨 일만 하냐”면서 화를 내셨다.
나는 어머니들에게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우린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잡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예산은 3만 원 정도였지만 저희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10만 원을 마련했으니 이 정도로 이해를 해달라고 사정을 했다. 당시 내 월급이 60만 원이었고 아이들에게 지급해야 할 30만 원은 사회초년생인 우리에게는 너무나 거액이었다. 그때 내 선배가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어머니들에게 맡기면서 말했다.
“저희가 아이들에게 정확히 말을 안 해준 잘못이 너무 큽니다. 저희가 가진 돈이 10만 원밖에 없으니 일단 이 돈을 받으시고 나머지는 저희가 빠른 시간 안에 가지고 와서 드리겠습니다. 아이들하고의 약속은 꼭 지키겠습니다.”
아이들이 잡아놓은 청개구리 대부분을 다시 개울로 돌려보내고 무당벌레도 10여 마리만 가지고 나머지는 숲으로 다 날려 보냈다. 그날 나보다 겨우 두 살 많은 선배였지만 그가 너무나 멋져보였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당시 30만 원은 엄청나게 큰돈이었지만 그는 아이들과의 약속을 더 소중히 여기면서 그 약속을 지켰다.
앞으로 선거가 한참 남았는데도 동네 여기저기 정치인들과 정당 현수막이 붙어있고 방송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온갖 약속이 난무하고 있다.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약속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라는 명제를 정치인과 정당들이 모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거의 대부분 놓아주었지만, 그래도 청개구리와 무당벌레 생태계를 교란한 건 아닌지 아직 죄책감에 시달린다.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