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예정자 대부분 무주택자 ‘재시공’으로 주거 불안 연장…LH·GS건설 입장차로 보상안 마련도 지지부진
2022년 8월 인천 검단신도시 AA13-1, 2(검단 안단테) 입주예정자협의회(협의회)가 공사장 외벽에 내건 현수막이다. 협의회는 건설 현장 관계자들에게 커피 쿠폰 500장을 제공하는 등 이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했다. 이는 내 집 마련에 대한 설렘이 반영된 행동이기도 했다.
#기대감은 실망으로
4월 29일 입주예정자들의 기대감은 실망으로 변했다. 밤 11시 30분경 지하 주차장 1층과 2층 슬래브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다. 슬래브는 철근콘크리트 건물 바닥을 말한다. 붕괴 면적은 968㎡(293평)로 파악됐다. 늦은 시각에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인명피해는 없었다.
사고 당일 입주예정자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엔 공사장에서 사고가 터졌다는 글이 올라왔다. 다음날인 4월 30일 오전 10시 김순영 입주예정자협의회 부회장은 공사장으로 향했다. 공사장 관계자는 공사장 출입을 막았다. 김 부회장은 사고 현장을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김 부회장은 공사장 근처에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붕괴된 주차장이 눈에 들어왔다.
공사장 관계자에게 사고 현장을 가까이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공사장 관계자는 안전문제 때문에 들여보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당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김 부회장은 비를 맞으면서 출입이 허가될 때까지 기다렸다.
저녁 7시 공사장 관계자는 김 부회장을 공사장 안으로 안내했다. 그러나 안전 문제를 이유로 사고 현장은 개방하지 않았다. 공사장 브리핑 장소에서 사고 현장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김 부회장은 “사고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당시 현장 직원은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만 답했다”고 기억했다. 김 부회장은 그때까지도 시공사인 GS건설과 공사를 발주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사고 소식에 대한 공지를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붕괴 사고가 발생한 검단신도시 안단테는 1666세대 규모의 공공분양주택이다. 공공분양주택은 국가, 지자체, LH 등이 주택도시기금 등을 지원받아 공급하는 전용면적 85㎡ 이하의 주택이다. 안단테는 총 1666세대 가운데 629세대가 74㎡(약 22평)의 629세대와 84㎡(약 25평)의 1037세대로 구성됐다. LH가 공사를 발주했고 GS건설(주관사)과 동부건설, 대보건설 등이 컨소시엄을 이뤄 시공사로 참여했다. 당초 2023년 12월 입주 예정이었지만 앞서의 사고로 인해 재시공이 결정됐고, 입주는 미뤄졌다.
5월 9일 국토교통부는 사고 원인 조사를 위해 건설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를 꾸렸다. 10명의 건축전문가가 약 두 달 동안 정밀조사를 실시했다. 7월 5일 국토부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하 주차장 32개 기둥에 전단보강철근(철근)이 들어가야 하지만 15곳에 철근이 빠져 있었다고 확인됐다. 철근이 빠진 곳으로 하중이 쏠리는 바람에 붕괴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고가 건설업계의 총체적인 부실을 드러냈다는 진단이 나왔다. 국토부는 부실 설계가 있었고, 이를 파악하지 못한 부실 감리가 있었고, 이것이 부실시공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지하 주차장 위에는 조경을 위해 나무가 심어지고, 놀이터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나무와 놀이터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가 이뤄지지 않았고, 감리 과정에서도 이 부분을 잡아내지 못했다.
김 부회장은 “입주 전에 붕괴 사고가 발생한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했다. 입주가 끝난 다음 사고가 발생했다면 놀이터에서 뛰놀던 아이들이나 지나가던 주민들이 희생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고 발생 뒤 협의회는 LH와 GS건설에 전면 재시공을 요구했다. 입주예정자들은 붕괴된 주차장 이외의 건물에도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네 탓 공방에 주민들 분통
7월 5일 시공 주관사 GS건설은 “시공사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조위 조사 결과를 수용했다. 입주예정자들 요구를 받아들여 아파트 1666세대를 전면 재시공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GS건설은 사과문에서 “검단 단지 전체를 전면 재시공하고, 입주 지연에 따른 모든 보상을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설계를 직접 발주한 것은 아니다”며 설계 책임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7월 7일 LH는 GS건설의 전면 재시공 방안을 수용하기로 했다. LH는 “입주민 지원을 위해 부사장을 책임자로 한 지원 TF(태스크포스)를 신설하겠다”며 “GS건설과 적극 협의하고 입주민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전면 재시공이 결정되면서 아파트 입주는 약 5년 정도 미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LH와 GS건설이 적극 협력하겠다고 했지만, 두 회사 사이에서는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 수습 비용 때문이다. 한국신용평가, 신한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 등 신용평가사와 증권사는 아파트 재시공 비용과 입주지체보상금 등을 합산하면 피해 보상비용은 4000억 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했다.
두 회사는 책임 소재를 따지며 사고 수습 비용 부담 비율을 두고 갈등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GS건설 관계자는 “분양 업무는 사실 LH에서 했다. GS건설은 단순 시공사다. 시행 주체(발주)는 LH”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보상 문제는) LH와 협의를 통해서 이뤄져야 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LH 입장은 달랐다. LH 관계자는 “사실 전면 재시공 부분도 LH와 사전 협의가 없는 상태에서 GS건설 판단 하에 발표된 부분”이라며 “공사 지연금과 입주 지연 비용에 대해서는 GS건설이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회사 간 입장차로 보상안 마련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부회장은 그동안 LH와 여러 차례 회의를 했다고 전했다. 또 최근 LH, GS건설과 협의회가 2차례 만났지만 서로 입장차이만 확인했다고 했다. 김 부회장은 “두 기업이 힘겨루기만 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피해 보는 것은 입주민”이라고 비판했다.
보상안이 지연되면서 입주예정자들의 부담은 커졌다. 먼저 주거 불안이 발생했다. 김 부회장은 “12월 입주 날짜에 맞춰 이사를 준비하는 입주민들이 많다. 그런데 예정일이 5년 미뤄졌다. 12월에 기존에 살던 집에서는 나와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협의회에 따르면 입주예정자의 85%가 특별공급으로 들어올 예정이었다. 특별공급으로 들어오는 이들은 주로 무주택자들이다. 신혼부부, 생애최초 주택 구매자, 다자녀가구, 노부모 부양 가구, 유공자, 주택소유 이력이 없는 미혼 청년 등이 지원 대상자다. 입주가 미뤄지면서 약 1400가구 이상의 무주택 입주예정자들이 주거 불안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입주예정자가 임시로 전셋집을 구해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보통 전세 기간은 2년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을 통해 2년을 더 연장하면 4년을 거주할 수 있다. 그러나 재시공은 약 5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1년 동안 거주할 곳을 찾아 다시 이사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셈이다.
자녀들의 교육, 직장 등도 문제다. 김 부회장은 “입주가 미뤄지고, 5년 동안 거주할 지역이 불분명해지면서 자녀들을 어느 학교로 보내야 할지 막막해하는 상황”이라며 “젊은 주민의 경우 이사를 오면서 이직을 계획했는데 이마저도 차질을 빚고 있다”고 전했다.
입주예정자들은 계약금 10%와 1~2차 중도금(각 20%)을 모두 납부한 상태다. 이번 사고처럼 건설사 측 잘못 때문에 입주를 못 하게 되면 계약자들은 해지나 지체보상금을 요구할 수 있다. 계약 유지를 원하는 입주예정자들은 주거비용과 입주 지체에 따른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보상안이 확정될 때까지 대출이자와 주거비 등의 비용은 입주예정자가 감당해야 한다.
#입주예정자 두 번 울린 ‘악플’
원래 협의회는 입주예정자들과 시공사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다. 입주예정자들의 의견을 시공사에 전달하고, 조경 같은 인테리어 시공 과정에도 관여한다. 사고가 발생한 다음 협의회는 '비상대책위원회'가 됐다. 김 부회장을 비롯한 비대위원들은 LH나 GS건설 관계자들과 보상안에 대해 논의하는 일을 맡게 됐다. 김 부회장은 언론 대응도 맡았다.
입주예정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중앙일보를 비롯한 언론 등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런데 기사에 악성 댓글이 달리면서 이들을 두 번 울렸다. LH와 GS건설을 비판하는 댓글이 대다수였지만, 고령의 입주예정자에게 새 아파트 입주를 바라지 말고 다른 곳으로 가라는 내용 등이 올라왔다.
김 부회장은 “인터뷰에 응했던 입주예정자들이 모두 상처받았다”며 “(악성 댓글이 말한) 고령의 입주예정자는 생애 최초로 내 집을 마련했다. 집에 7명이 산다. 온 가족이 새 아파트 하나 마련한 것이 그렇게 욕먹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김 부회장은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인터뷰를 꺼리는 분위기”라고 했다.
입주예정자들의 고충을 덜어줄 보상안이 확정되기까지는 상당 기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최악의 경우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 때처럼 사고발생시점으로부터 보상안 마련까지 10개월 넘는 시일이 소요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LH와 GS건설은 보상안 확정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LH 관계자는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보상안 마련을) 목표로 하고 있다. (광주 화정 붕괴 사고) 때처럼 늦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GS건설 관계자는 “일단은 현 사태를 수습하는 데 최우선으로 집중하고 있다. 그 부분(보상안 확정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 따로 드릴 수 있는 말은 없다”고 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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