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길·신유빈도 기대주…이기흥 체육회장 “일본과 격차 줄이기가 목표”
한국은 항저우에 역대 최대 규모(1180명)의 선수단을 파견한다. 목표는 종합 2위 탈환이다. 한국은 1998년 방콕 대회부터 2002년 부산, 2006년 도하, 2010년 광저우, 2014년 인천 대회까지 5회 연속 중국에 이어 2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 금메달 49개를 따내는 데 그치면서 종합 3위로 밀려났다. 한국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50개를 넘기지 못한 건 1982년 뉴델리 대회(28개) 이후 36년 만에 처음이었다. 일본(75개)과의 격차가 무려 26개였기에 더 충격적인 결과였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한국은 대표팀 세대교체 과정을 거치고 있던 터라 짧은 시간에 전력을 끌어 올리기 어려웠다. 반면 일본은 당시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우리보다 10배 이상을 더 투자해 좋은 성적을 거뒀다"며 "이번 대회에선 일본과의 금메달 격차를 10개 이상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수영, 바둑, 브레이킹(댄스스포츠) 등의 종목에서 선전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상혁과 황선우의 메달 색은?
한국은 육상, 수영 등 기초 종목과 양궁, 태권도, 유도, 펜싱 등 효자 종목에서 다수의 금메달 획득을 노린다. 체육회는 수영·양궁(이상 6개), 펜싱·태권도·근대5종(이상 4개), 소프트 테니스·바둑(이상 3개), 배드민턴·골프·사격·스포츠 클라이밍·유도·롤러·e스포츠(이상 2개)를 금메달 강세 종목으로 꼽고 있다. 단체 구기 종목인 야구와 축구 대표팀도 지난 대회에 이어 연속 동반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대회에서 금메달 2개를 안겼던 볼링이 정식 종목에서 제외된 게 아쉽지만, 바둑이 13년 만에 다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건 희소식이다. 한국 바둑의 간판인 신진서, 박정환, 최정 9단 등이 선봉에 나서 3개의 금메달 싹쓸이를 노린다.
사상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 된 e스포츠도 한국이 메달 수확을 기대하는 종목이다. 총 7개의 금메달이 걸려있는데 한국은 리그오브레전드, 피파온라인4, 스트리트파이터 V,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등 4개 종목에 출전한다. 브레이킹(댄스스포츠)은 2024 파리 올림픽에 정식 종목으로 포함되면서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첫 선을 보이게 됐다.
많은 금메달 후보 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쌍두마차는 단연 육상의 우상혁(27)과 수영의 황선우(20)다. 2021년 도쿄 올림픽을 통해 한국 기초 종목의 기량 향상을 입증한 이들은 지난 2년간 '월드 클래스'로 자리 잡아 희망을 부풀렸다. 이번 대회에서 아시아 정상으로 자리매김한 뒤 내년 파리 올림픽에서도 메달 소식을 전할 기대주로 꼽힌다. 물론 아시아의 왕좌가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다. 우상혁은 '현역 최고 점퍼' 무타즈 에사 바르심(카타르), 황선우는 중국의 라이징 스타 판잔러와 진검 승부를 펼쳐야 한다.
아시안게임의 전초전과도 같았던 세계선수권에서는 두 선수의 희비가 엇갈렸다. 황선우는 7월 24일 열린 후쿠오카 세계수영선수권 남자 자유형 200m에서 새로운 한국 신기록(1분44초42)으로 동메달을 목에 걸어 아시아 선수 중 최고의 성적을 냈다. 준결선에서 1분46초05로 전체 10위에 그쳐 탈락한 판잔러와 대조적이었다. 올 시즌 판잔러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면서 위협했지만, 자유형 200m에서는 여전히 황선우가 한 수 위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황선우는 "자유형 200m에서 내가 아시아 1위의 성적을 냈으니, 항저우에서도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훈련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우상혁은 8월 23일 세계육상선수권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2m29로 6위에 머물러 동메달(2m33)을 획득한 바르심에게 졌다. 올 시즌 최고 기록도 우상혁이 2m33, 바르심이 2m36으로 3㎝ 차라 아시안게임에서도 3~4㎝ 차 안에서 메달 색이 갈릴 가능성이 크다. 매년 기록이 좋아지고 있는 우상혁과 큰 경기에 강한 바르심이 어떤 승부를 펼칠지 관심을 모으는 이유다. 우상혁은 "나는 경쟁을 즐긴다. (지난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않았던) 바르심이 이번 대회에 불참했다면 섭섭했을 거다. 바르심과의 경쟁 덕에 대회를 더 즐길 수 있게 됐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7개의 금메달에 도전하는 구본길
구본길(34)은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한국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의 기둥이다. 도쿄올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한 김정환·김준호·오상욱과 함께 '어펜져스(어벤져스+펜싱)'로 불린다. 지난해 8월에는 아시아 국가 최초로 세계펜싱선수권 단체전 4연패의 기록도 세웠다.
그런 구본길이 항저우에서 또 한 번 의미 있는 기록에 도전한다. 2010년 광저우, 2014 인천,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 이어 남자 사브르 개인전 4연패를 노리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세계 최강의 기량을 자랑하는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해 2관왕에 오르면, 더 큰 영광이 기다린다. 이미 보유한 금메달 5개에 2개를 더 추가해 역대 한국 선수 아시안게임 최다 금메달 기록을 7개로 경신할 수 있다. 현재 최다 기록은 은퇴한 박태환(수영)·남현희(펜싱)·류서연(볼링)이 남긴 6개다.
구본길은 8월 25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D-30 미디어데이에서 "개인전 4연패와 한국 선수 최다 금메달 기록을 동시에 세울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꼭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구본길의 개인전 최대 라이벌은 한국 대표팀 안에 있다. 절친한 후배인 '어펜저스' 멤버 오상욱(26)이다. 둘은 5년 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도 개인전 결승에서도 맞붙었다. 당시 구본길이 '무서운 신예'였던 오상욱을 15-14, 1점 차로 꺾고 3연패에 성공했다. 구본길은 "상욱이와 또 다시 개인전 금메달을 놓고 맞붙는다면, 5년 전 대회 때보다는 좀 더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더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이번 대회가 마지막이라고 여기고 정신력으로 이겨내다 보면 꿈이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펜싱 여자 에페 대표팀의 대들보인 송세라(29)도 남자 사브르 대표팀 못지 않은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그 역시 도쿄 올림픽 여자 에페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지난해 세계펜싱선수권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에 오른 세계 정상급 선수다. 아시안게임은 이번 대회가 첫 출전이다. 그는 "개인전에서는 세계 랭킹 1위 비비안 콩(홍콩), 단체전에서는 홈 팀 중국을 경계하고 있다"며 "현재 아킬레스건을 다친 상태라 치료를 잘 하고 대회에 임해야 할 것 같다"고 털어놨다.
#첫 아시안게임이 설레는 신유빈
'국민 삐약이'로 관심을 받고 있는 여자 탁구의 간판 신유빈(19)은 설레는 마음으로 첫 아시안게임 출전을 기다리고 있다. 어린 시절 '탁구 신동'으로 TV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그는 지난 도쿄 올림픽에서 세계 정상급 선수들에 밀리지 않는 10대의 패기를 보여주며 인기를 얻었다. '삐약이'는 당시 기합 소리가 병아리 우는 소리처럼 귀엽다는 의미로 붙은 별명이다. 여전히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0만 명이 넘는 인기 스타다. 그는 "팬들의 관심은 내게 부담이 아니라 오히려 더 힘을 내서 열심히 훈련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의젓하게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삐약이' 외에 얻고 싶은 다른 수식어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나이만 두 살 더 먹었을 뿐, 파이팅이나 기합은 예전과 똑같아서 아마 이번에도 똑같은 별명으로 불리지 않을까 싶다"며 활짝 웃어 보였다.
신유빈은 하마터면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못할 뻔했다. 지난해 초 국가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손목을 다쳐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할 상황에 놓였다. 그러나 대회가 1년 미뤄지는 천운이 찾아오면서 완벽하게 회복할 시간을 얻었고, 무사히 태극마크를 달고 항저우행 비행기에 오르게 됐다. 그는 "대회가 미뤄지는 행운이 찾아와 행복한 마음으로 첫 아시안게임을 준비할 수 있었다"며 "많이 설레는 만큼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또 "1년간 손을 쓰지 못해 웨이트 트레이닝 중심으로 운동을 많이 했는데, 그 덕에 순발력이 좋아진 것 같다"며 "출전하는 모든 종목(단식·복식·혼합복식·단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탁구는 중국이 강세를 보이는 종목이다. 매 경기마다 중국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에 방해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신유빈은 "경기력에 크게 영향을 주는 않을 것 같다. '내가 훈련한 내용이 경기에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집중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신유빈과 혼합복식에 함께 출전하는 임종훈(26)도 "중국 관중의 함성을 떠올리며 계속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며 "(아시안게임에 앞서 열리는) 아시아탁구선수권에서도 중국과 일본 선수들을 상대로 쉽게 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그 기세를 항저우에서도 이어갈 수 있다"고 다짐했다.
#일본 유도 무너뜨릴 '괴물 신인' 뜬다
유도 남자 81㎏급의 '괴물 신인' 이준환(21)은 '종주국' 일본의 아성을 무너트릴 선봉장으로 꼽힌다. 그는 말 그대로 '혜성처럼 나타난' 특급 신인이다. 지난해 3월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는데, 불과 1년여 만에 한국 유도의 간판으로 성장했다. 국제유도연맹이 홈페이지에 그를 "선수 소개가 끝나자마자 번개처럼 한판승을 따낼 선수"라고 소개했을 정도다. 2002년 생인 이준환은 "주변에서 종종 '괴물'이나 '슈퍼스타'라고 불러주신다"며 "큰 선수는 큰 무대에서 잘한다고 하는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실력을 입증하겠다. 정말 지독하게 훈련했기 때문에 자신 있다"고 말했다.
이준환은 지난해 6월 조지아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성인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첫 대회부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어 같은 달 몽골에서 열린 그랜드슬램에서도 정상에 올라 두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세계 랭킹 기록조차 없던 스무살 선수가 깜짝 우승하자 한국 유도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유도 관계자들은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재범의 계보를 이을 에이스가 등장했다"며 흥분했다.
무엇보다 그는 한국 선수의 천적으로 통하는 일본 선수들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지난해 몽골 그랜드슬램 3회전과 지난 5월 카타르 세계선수권 8강에서 일본의 나가세 다카노리를 연거푸 이겼다. 다카노리는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일본 유도가 자랑하는 에이스다. 일본 언론은 "한국의 이준환에게 패해 '올림픽 왕자' 다카노리가 큰 자극을 받았다"고 썼다. 이준환은 생애 첫 메이저 국제대회인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그 기세를 이어가겠다는 각오다. 그는 "다카노리의 경기 영상을 하루에 2~3시간씩 보며 연구한 결과다. 이젠 다카노리도 나를 의식해서 지난 번 대결 땐 '또 너냐'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며 "항저우에서도 '일본 킬러'의 면모를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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