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지주회사 (주)두산은 2021년 12월 미국 SiO2에 1억 달러(약 1324억 원)를 투자하고, 의약품 용기 사업에 진출한다고 밝혔다. SiO2는 코로나19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 보관 용기를 제조·공급해 유명세를 탄 곳이다. SiO2는 2020년 미국 정부가 추진한 OWS에 선정돼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OWS는 미국 정부가 코로나19 위기 해결을 위해 백신 개발과 공급 전 과정을 압축해 민관협력으로 추진한 프로젝트다.
(주)두산은 SiO2와 단기적으로 코로나19 백신 시장을 공략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바이오 의약품 용기 시장을 개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두산은 SiO2 모든 제품에 대한 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지역 독점 사업권을 확보했다. (주)두산은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SiO2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아 직접 제품을 생산하는 것도 고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SiO2는 의약품 용기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SiO2는 특수 플라스틱 용기 내부에 유리와 유사한 성분의 3개 층을 플라즈마로 증착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3개의 층은 분자나 원자 단위의 화학적 반응을 활용해 나노미터 수준으로 증착된다. 일반적인 코팅보다 훨씬 세밀한 결합이 가능하고 유리와 플라스틱의 강점을 모두 갖출 수 있다.
(주)두산 관계자는 SiO2와 제휴 계약을 체결할 당시 “의약품 용기 시장은 5~6개 글로벌 업체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전세계 의약품 용기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앞으로 의약품 용기 사업을 (주)두산의 신성장 동력으로 키워 나가겠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SiO2는 최근 미국 델라웨어 현지법원에서 기업회생 절차를 진행 중이다. 지속된 적자로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SiO2는 기술력과 별개로 그간의 수익성이 좋지 않았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SiO2는 2021년 753억 원의 적자를 거둔 데 이어 2022년에도 1259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현재로는 SiO2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 SiO2는 조직 개편 및 인력 감축을 진행 중이다. 2020년대 초반 SiO2의 임직원은 5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SiO2가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최근 104명의 임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SiO2는 미국 ‘비즈니스저널’과의 인터뷰에서 “SiO2는 2020~2021년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인한 백신과 진단키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제조 시설을 확장해왔다”며 “코로나19 관련 제품의 수요가 지난 1년간 줄어들면서 SiO2와 자산을 지키기 위해 직원을 감축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주)두산은 현재 SiO2 제품 판매를 위해 아시아·오세아니아 각 지역 영업망·판매망 구축에 힘쓰고 있다. 아직까지 본격적인 판매 단계에 들어서지는 못했다. 의약품 용기는 그 특성상 각국의 보건당국으로부터 사용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주)두산의 SiO2 제품 영업망 확보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주)두산은 이와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주)두산이 영업망을 확보하더라도 SiO2가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면 판매를 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주)두산의 SiO2 지원 가능성을 거론하지만 현재로는 관련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주)두산은 2021년 SiO2에 1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SiO2 주식 1만 5372주(지분율 7.48%)를 확보했다. 하지만 (주)두산은 올해 반기보고서에서 SiO2의 장부가액을 0원으로 표기했다. (주)두산은 SiO2 지분가치 상실이 예상돼 평가손실을 계상했다고 설명했다.
안그래도 (주)두산의 실적은 하락세에 있다. (주)두산은 두산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는 동시에 자체적으로도 전자소재 사업, IT서비스 사업 등을 영위하고 있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주)두산의 별도 기준 매출은 지난해 상반기 5538억 원에서 올해 상반기 4671억 원으로 15.66% 하락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661억 원에서 302억 원으로 54.31% 감소했다.
'친원전 정책 수혜' 두산에너빌리티 실적 상승세
증권가에서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에 주목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친원전 정책’을 약속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원전의 핵심 설비와 핵연료 취급 설비, 핵연료 운반 용기 등 원자로 계통 보조기기 대부분을 제작·공급한다.
실제 두산에너빌리티는 최근 원전 관련 사업에서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해 11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약 1조 6000억 원 규모의 이집트 엘다바 원자력발전소 2차측(터빈·발전기에 관련된 기기로 전기를 생산하는 설비) 건설공사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올해 3월에는 한수원과 약 2조 9000억 원 규모의 신한울3·4호기 주기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덕분에 두산에너빌리티의 실적도 상승세에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매출은 지난해 상반기 6조 8390억 원에서 올해 상반기 8조 5804억 원으로 25.46% 상승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5198억 원에서 8592억 원으로 65.28% 늘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실적 상승은 두산그룹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채선영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두산그룹에 대해 “현 정부의 원전 사업 복원 정책 등 중공업 부문에 긍정적인 사업 환경 및 두산에너빌리티의 개선된 비용구조 등을 바탕으로 양호한 실적흐름이 예상된다”며 “채산성 높은 국내 원전 사업에서의 수익성 기여가 사업 전환 국면에서 노출된 중단기 실적 변동성을 완화하는 동시에 해외 원전 수주에 있어서도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최근 좋은 실적을 바탕으로 신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기존 원전 설비 외에도 소형모듈원전(SMR) 기기, 수소 가스터빈 등 차세대 에너지원 관련 사업에도 진출했다.
다만 두산에너빌리티가 신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재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두산에너빌리티의 부채총액은 지난해 말 12조 9695억 원에서 올해 6월 말 14조 2800억 원으로 10.10% 늘었다. 최영록 NICE신용평가 연구위원은 “발전 사업의 수주 산업 특성상 매출 인식과 채권 회수, 원가 투입의 시차 발생에 따른 운전자금 증감으로 회사 영업현금흐름의 변동성이 다소 높다”고 설명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