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부터 3개월간의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계도기간이 종료된다. 계도기간이 끝난 후 시범사업 지침을 위반하면 처벌을 받는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는 계도기간이 끝나면 플랫폼 사업이 더욱 위축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원산협) 한 관계자는 “계도기간 때는 6월에 나왔던 복지부 지침을 의사나 환자에게 안내하며 서비스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 새로운 지침을 정식으로 적용해야 하는 상황이라 이용자가 더 보수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며 “서비스를 유지하기로 한 플랫폼들도 이용자 수 절벽에 부딪혀 서비스를 중단하게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앞서 4월 코로나19 위기 단계 등급이 ‘심각’에서 ‘경계’로 바뀌면서 6월 복지부는 코로나19 기간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를 시범사업으로 전환했다. 시범사업으로 전환되며 비대면 진료 대상에 제약도 생겼다. 복지부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대상을 30일 이내에 같은 병원에서 같은 질환으로 진료받은 재진 환자, 의료약자(섬·벽지 거주자, 거동불편 노인·장애인 등)로 한정했다. 약 배송도 직접 의약품을 받기 어려운 환자에게만 허용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는 계도기간에 비대면 진료 대상 환자 범위를 초진 환자까지로 확대하고 약 배송이 가능하도록 지침이 수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는 실현되지는 않았다. 복지부는 8월 29일 의료기관이 거의 없는 지역의 초진도 허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역시 산업계가 원하는 정도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원산협은 비대면 진료 앱 이용자의 99%는 감기 등 경증으로 병원을 찾는 초진 환자라고 밝힌 바 있다.
비대면 진료로 사업을 다각화해 수익성을 꾀하려던 기업들은 난처해졌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기업 원익홀딩스가 대표적이다. 원익홀딩스는 지난 1월 약 620억 원을 들여 케어랩스 지분 23.27% 인수를 완료했다. 원익홀딩스는 228억 원가량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해 케어랩스를 인수했다. 원익홀딩스는 반도체 장비와 가스 사업에 치중된 매출 구조를 다각화하기 위해 헬스케어 기업 매물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원익홀딩스 자회사 원익은 의료기기와 화장품을 판매하는 사업을 펼친다. 케어랩스의 뷰티케어 플랫폼 ‘바비톡’, 의료분야 전문 온라인 리크루팅 플랫폼 ‘메디잡’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케어랩스를 대표하는 플랫폼은 비대면 진료 앱 ‘굿닥’이다. 올해 상반기 케어랩스의 연결 기준 영업손실은 14억 원에서 36억 원으로 증가했다. 특히 굿닥은 매출이 43억 원에서 35억 원으로 줄었다. 굿닥 순손실은 50억 원에서 54억 원으로 늘었으며 완전자본잠식 상태로 전환했다. 원익홀딩스는 올해 상반기 케어랩스에 대해 59억 원을 지분법손실로 인식했다. 최근 굿닥은 약 배송도 중단했다. 이와 관련, 굿닥 관계자는 “진료 예약 서비스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했다.
본인인증 및 보안서비스, 건강기능식품 제조 판매 사업을 영위하는 헥토이노베이션도 비대면 진료 사업으로 확장한 기업 중 하나다. 헥토이노베이션 종속회사인 헥토헬스케어는 지난해 7월 메디버디(현 헥토클리닉) 지분 100%를 인수했다. 메디버디는 비대면 진료 앱 ‘메디버디’를 운영한다. 헥토헬스케어는 메디버디와 기존에 보유한 종합 헬스케어 플랫폼 ‘또박케어’ 앱 통합을 구상 중이다.
헥토헬스케어 입장에선 비대면 진료 서비스로 이용자를 늘리면 부가적으로 건강기능식품 판매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비대면 진료 대상 범위가 예상보다 축소되면서 시너지 효과가 불확실해졌다. 이와 관련, 헥토그룹 관계자는 “건강기능식품 사업과 시너지가 있을 것이라 판단해서 (메디버디를) 인수했다. 기존 서비스들은 그대로 운영하는 상태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전반으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비대면 진료 사업으로 확장했다가 이미 철수한 기업도 있다. 지난해 8월 ‘TS샴푸’ 제조업체 TS트릴리온은 탈모 전문 비대면 진료 플랫폼 ‘MO’를 출시했다. 인공지능(AI) 탈모 진단, 비대면 진료와 약 배송 등 서비스를 제공했다. 하지만 최근 플랫폼 운영을 종료했다. TS트릴리온 측은 공지사항을 통해 “코로나19가 종식된 시대에는 맞지 않는 서비스라고 판단했다. 의사협회, 약사협회와 갈등을 이어가면서 서비스를 이어가기에는 많은 부담이 있었다”고 밝혔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비대면 진료 업계가 기여한 바에 (정부나 소비자가) 주목했다”며 “비대면 진료 기업을 인수한 회사들의 경우 기존에 예상한 대로 비대면 진료나 의료와 연계된 추가적인 헬스케어 사업은 현재로서는 다소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앞서의 원산협 관계자는 “플랫폼 진성 이용자가 줄어들면 새로운 서비스로 확장하기도 쉽지 않다”며 “불확실한 리스크가 커서 향후 새롭게 비대면 진료 시장에 진출하려고 하는 기업은 거의 없을 듯하다”고 내다봤다.
"코로나19 데이터 제대로 활용을" 비대면 진료 업계 목소리 높이는 까닭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3년 동안 시행됐던 비대면 진료 데이터를 두고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를 중심으로 보다 적극적인 활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지난 3월 복지부는 비대면 진료 3년간의 통계를 내놓았다. 전체 진료 건수, 이용자 수, 의료기관·연령대별 이용률 등이 담겼다. 하지만 실제 효용성과 안전성을 따져볼 만한 데이터 해석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원산협 관계자는 “단순 청구 기록으로는 의미가 없다. 어떤 특성을 가진 환자가 어떤 증상을 호소했고, 환자가 어떤 약을 원했고 어떻게 복약지도를 했는지를 해석해야 한다. 그래야 안전성을 보장하면서 이용률을 제고하는 방안을 찾을 수 있다”며 “환자 개별 의무기록은 의료기관만 갖고 있기 때문에 협업을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기간에는 사실상 전 국민을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가 이뤄졌다. 어떤 시범사업에서도 구하기 힘든 참여자 수”라며 “약 배송의 경우에도 어떤 약이 얼마나 처방됐고, 약물 오남용 사례는 어디서 발생했는지 등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 생산적인 논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8월 24일 비대면 진료 관련 법안은 모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통과가 불발됐다. 부작용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단 정부는 시범사업 3개월간의 데이터를 분석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플랫폼 업계는 우려의 시선이 많다. 반쪽 서비스로 전락한 시범사업 데이터를 분석해봤자 규제를 위한 분석에 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