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사망 사건을 지난해와 엮는 건 억지”
‘연필 사건’은 2023년 7월 12일 서이초의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이마를 연필로 그은 사건으로, 이 사건 관련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 서이초에서 숨진 채 발견된 A 씨(24)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다. 그러나 경찰이 A 씨의 사망 경위와 관련해 2022년 A 씨가 맡았던 학생의 학부모까지 조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소위 ‘물타기’ 수사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교사노동조합에 따르면 경찰은 A 씨가 지난해 담당했던 학급의 학부모 7명에게 전화해 특정 학생 D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경찰은 학부모 B 씨에게 “학생 D가 평소에 B 씨 자녀를 포함 학급 학생들을 많이 때린 것 같은데, B 씨의 자녀가 D로부터 사과 받았느냐”고 물은 뒤 “고인이 이직하고 싶다고 말했다는데, 그 이유가 학생 D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D의 학부모를 소환해서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히며 경찰서에 방문해 서면 진술서 작성을 요구했다.
B 씨를 비롯한 학부모들은 “경찰이 학생 D의 행동에 대해 확대 해석을 하고, 고인의 사인을 2022학년도에 있었던 일로 몰고 가는 것 같아 당황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D의 학부모가 아이의 행동 개선을 위해 매우 노력했고, 이 점을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며 “갑자기 경찰이 D와 관련된 사건을 크게 부풀려 고인의 사인과 연결 지으려고 억지 주장을 하는 것 같다”고 노조에 전했다.
이런 논란에 대해 경찰은 “이 조사는 유족의 요청으로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노조는 “유족은 2022년 하이톡 자료와 통신 기록도 궁금하다고 말했을 뿐”이라며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어 “2022년 학급 학생에 대한 조사가 올해 ‘연필 사건’의 진실을 물타기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건 초기 일기장 유출
뉴데일리는 A 씨의 사생활과 일기, 정신과 진료 기록 등을 언급한 기사를 7월 20일 보도했다. 뉴데일리는 “A 씨의 일기장 내용에는 A 씨가 평소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남자친구와의 관계 등으로 우울감을 호소하는 글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A 씨가 업무 스트레스와 연인관계 등으로 우울증을 앓아왔고 병원 치료까지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일기장 입수 경위나 유족 동의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경찰이 의도적으로 고인의 일기장을 유출해 개인 문제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A 씨의 사촌오빠는 7월 25일 자신의 블로그에 “20일 오후 일기장 사본을 받았으나 기사는 같은 날 오전에 나왔다”며 “경찰은 일기장을 제공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대체 누구냐”며 황당함을 토로했다. 이어 A 씨가 우울증세로 병원에서 치료 받았다는 기사 내용에 대해 “일기장에는 그런 내용이 없는데 환자의 개인 의료 기록을 어떻게 확보했냐”며 반문했다.
경찰은 7월 31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일기장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정확한 경위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고인 사망과 관련해 제기되는 여러 의혹에 대해선 면밀하게 살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유족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유족의 고소나 고발이 있고, 수사 단서가 있으면 (일기장 유출 경위 확인을) 당연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가해 학생 학부모는 경찰·검찰 수사관
‘연필 사건’ 가해 학생의 모친과 부친이 각각 경찰청 본청 소속 경찰과 검찰 수사관이라는 사실이 공개됐다. 이에 따라 경찰이 ‘제 식구 감싸기’식 수사를 하거나, 해당 학부모가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해당 의혹에 대해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8월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에서 열린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성이 없는 학부모 직업이 공개되고 학부모 직업이 수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해당 학부모가 2023년 5월 하이톡(업무용 메신저)을 통해 자신이 경찰임을 암시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유족 측 변호인이 넌지시 (직업을) 알렸다고 하는데, 문맥을 봐야 한다”며 메시지 내용을 출입기자단에 공개했다.
공개된 메시지에는 가정 내 개인사로 자녀가 출석하지 못해 경위를 설명하던 도중 간접적으로 직업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언급돼 있다. 당시 교사도 학부모에게 “위로 드린다”는 취지의 답변을 보냈을 뿐, 별다른 특이상황은 없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8월 중순 포렌식 이미 끝나
‘교육언론 창’은 최근 경찰이 국회에 보낸 ‘서이초 교사 전자기기 포렌식 여부에 대한 답변서’를 8월 28일에 입수해 29일에 보도했다. 답변서에 따르면 포렌식 실시부서는 서울경찰청 디지털포렌식계이며, A 씨가 2023년에 사용한 업무용 컴퓨터와 A 씨 소유의 휴대폰 1대, 태블릿(아이패드) 1대에 대한 포렌식을 7월 25일에 완료했다. 2022년에 사용한 업무용 컴퓨터는 8월 11일, 2023년에 사용한 교실 전화기는 8월 14일에 포렌식이 완료됐다.
이처럼 경찰은 포렌식을 완료했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 유족은 ‘교육언론 창’에 경찰이 유족에게 “업무용 컴퓨터에는 상담일지 등이 들어있었을 뿐, 특이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업무용 컴퓨터와 교실 전화기는 업무용이고 고인 소유가 아니기에 수사가 종결되고도 포렌식 결과를 알려주기 어렵다”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전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8월 28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A 씨 아이패드를 포렌식한 결과 학부모가 학교로 건 전화가 A 씨의 휴대폰으로 착신전환돼 (이와 연동된) 아이패드에 개인 휴대폰 번호로 표시된 것을 확인했다”며 “학부모가 A 씨 개인 휴대폰으로 직접 연락했다는 의혹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다만 A 씨의 휴대폰은 비밀번호가 걸려 있어서 포렌식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갑질과 관련한 특별한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학급에 다른 학생들로 인해 매우 힘들었다는 유족과 동료 교사의 진술도 있어 다른 학부모들도 조사를 했지만, 현재까지 확인되는 부분이 없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중앙지검은 교원단체 실천교육교사모임이 8월 23일 서이초 학부모 4명을 고발한 사건을 형사7부(부장검사 김형석)에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고 8월 28일 밝혔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애플리케이션,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