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대법원장 부결 사례는 단 한 번…농지법 위반 등 의혹 있지만 자칫 역풍 불까 신중
이균용 후보자는 보수 성향 엘리트 판사로 분류된다. 그는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다음 해군 법무관을 거쳐 1990년 서울민사지방법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1994년과 2002년 두 차례 일본 게이오대학으로 연수를 다녀와 일본통으로 꼽힌다. 2021년 대전고등법원장을 거쳐 2023년 2월부터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일했다. 대법관 경력은 없다. 이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되면 김명수 대법원장에 이어 연속으로 ‘대법관을 지내지 않은 대법원장’이 선출된다.
이 후보자는 엘리트 법조인 모임인 ‘민사판례연구회’ 회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민사판례연구회는 1977년 창립된 판사들의 학술 단체다. 주로 서울대학교 법학대학 출신 판사들이 회원이다. 대표적인 인사로는 이용훈 전 대법원장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있다. 2010년 회원 명단이 처음 공개됐을 때 이 후보자 이름도 있었다.
이 후보자는 윤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후보자는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1년 후배이기도 하다. 2022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박범계 민주당 의원이 “(윤 대통령을) 잘 아시죠?”라고 질문하자 “제 연수원 동기생하고 아주 친한 분”이라며 “(저와도) 친하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청문회 단골 메뉴에 발목 잡히나
민주당은 이 후보자를 면밀하게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8월 23일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이 후보자가 사법부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지켜낼 적임자가 맞는지 철저히 검증하겠다”며 “이 후보자는 자신이 이 같은 적임자인지 투명하고 성실하게 소명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후보자의 재산형성 과정과 과거 판결이 청문회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후보자는 △부산 토지 농지법 위반 △용산구 아파트 가격 축소 신고 △비상장주식 미신고 등의 의혹을 받고 있다. 사실이라면 공직자윤리법 위반일 가능성이 높다. 미성년자 성범죄자에 대한 감형 판결과 법관 봐주기 판결도 논란이 되고 있다.
우선 이 후보자는 농지법 위반 의혹을 받는다. 그는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해인 1987년 12월 장인과 함께 부산시 동래구의 농지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지법은 경자유전 원칙에 따라 농민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이 후보자는 부산에 거주하며 농사를 짓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자는 아파트 가격 축소 신고 논란에도 휩싸였다. 이 후보자는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아파트 가격을 2015년부터 2023년까지 줄곧 11억 5000만 원으로 신고했다. 그러나 이 후보자가 보유한 아파트 가격은 4년 전인 2019년 14억 원 이상의 가격으로 거래됐고 2023년에는 20억 원을 웃도는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장주식 내역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점은 스스로 밝혔다. 이 후보자, 부인과 자녀 2명은 이 후보자 처가의 비상장 회사인 (주)옥산과 (주)대성자동차학원 주식을 각각 250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식 가치는 총 9억 8924만 원 수준이다. 2020년 시행된 개정 공직자윤리법은 비상장주식도 실거래가를 신고하도록 규정했다. 이 후보자는 자신의 착오 때문에 최근 3년 동안 관련 내역을 신고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판결 논란도 발생했다. 2020년 이 후보자는 12살 피해자를 세 차례 성폭행한 피고인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을 두고 이 후보자가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일었다.
2021년 1월 고등법원 형사8부 재판장으로 재임할 때는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법관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정운호 게이트는 상습도박 혐의를 받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재판 과정에서 전관예우 관행 등 법조계 폐해가 드러난 사건이다. 참여연대는 8월 22일 논평에서 “(이 후보자에게는) 일선 재판과 법관의 독립보다 사법 행정기구의 권위를 더 우선하는 사고방식이 있다”고 비판했다.
8월 29일 이 후보자는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해명했다. 그는 농지법 위반 의혹과 용산구 아파트 가격 축소 신고 의혹에 대해서 “당시 법령에 따라서 맞게 행동했다고 생각한다”며 “제 생각에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했다. 성범죄자 감형 판결 논란에 대해서는 “차근차근 말씀드리는 것이 나을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비상장주식 미신고 문제에 대해서는 같은 날 입장문을 내고 “취득 시로부터 약 20년 뒤인 2020년에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의 비상장주식 평가방식이 바뀌었다는 점이나 법령상 재산등록 대상에 포함되는 것으로 변경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 후보자는 “임명동의안 제출 전 해당 주식에 대한 직무 관련성 심사청구도 했다”며 “심사위원회가 직무 관련성이 있다는 결정을 할 경우 해당 주식을 매각 또는 백지신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 후보자 임명되면 보수·진보 8 대 5 구도
8월 29일 윤 대통령은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대통령이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대법원장 임명 절차가 시작된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국회는 임명동의안이 제출된 날로부터 20일 안에 심사를 마쳐야 한다. 여야 의원 13명이 ‘인사청문특별위원회(위원회)’를 구성한다. 위원회는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열고 후보자의 결격 사유가 없다면 ‘임명동의안 심사 경과보고서’를 채택한다. 임명동의안은 국회의원 과반이 출석한 가운데 과반 찬성을 얻어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다.
민주당은 인사청문회에서 철저한 검증을 거친 다음 보고서 채택 여부를 결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문제가 꽤 있는 후보인 것 같다. 문제가 되는 부분을 철저하게 검증하겠다는 기류가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권영준 대법관 경우에도 처음에는 부정적인 분위기였는데 막상 청문회를 하고 났더니 분위기가 반전됐다”며 “이번에도 (이 후보자가) 우려가 있는 인물이라는 정보를 가지고 청문회에는 들어갈 예정이지만, 무조건 부결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정가에선 이 후보자의 낙마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금까지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 사례는 단 한 차례밖에 없다. 1988년 6월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은 노태우 정부 시기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출석의원 295명 가운데 141명의 찬성을 얻는 데 그쳐 부결됐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임명동의안은) 부결된 적이 거의 없는데, 부결시키면 민주당은 여론 악화에 대한 부담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거대 야당 횡포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 교수는 “비상장 주식 문제와 부동산 문제 같은 의혹의 불법 여부를 가지고 논란이 될 것”이라며 “이 사안들의 심각성에 (이 후보자의) 낙마 여부가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키면 여야 사이의 정쟁만 과열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국회 파행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민생 문제 같은 현안에 대한 대응이 중요한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키면 정쟁을 과열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민주당을 비롯한 정치권이 이러한 현실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이 교수는 이 후보자가 임명된 다음 대법원 판결이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면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후보자가 대법원장으로 취임하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보수 성향 우위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장은 △사법행정 총괄 △전원합의체 재판장 △대법관 외 판사 임명권 행사 등의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게다가 이미 대법원은 ‘중도·보수 7, 진보 6(김명수 대법원장 포함, 법원행정처장 제외)’으로 보수 성향이 더 짙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9월 24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퇴임하고 이 후보자가 임명되면 8 대 5 구도가 된다.
이준한 교수는 “판결이 그런 식으로(보수적인 성향으로) 이뤄질 경우에 정치권의 입법 활동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정치권에서는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정치적인 판결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이런 일들이 발생하면 사법부와 입법부 사이에 긴장 관계가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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