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내부 결속 메시지, 나경원 안철수 선별 구제 가능성…내각 향해선 야권 적극 대응 주문
#동승자 가려내고, 논란 잠재우고
윤석열 대통령은 8월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21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간부위원과의 통일대화’에서 “분단의 현실에서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들은 허위 조작, 선전 선동으로 자유사회를 교란시키려는 심리전을 일삼고 있으며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면서 김정은 정권과 국내 종북세력을 향해 일갈했다.
윤 대통령은 8월 28일 인천국제공항공사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 인사말을 통해서도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며 “철 지난 이념이 아니라 나라를 제대로 끌어갈 그런 철학이 바로 이념”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는 “철 지난 엉터리 사기 이념에 우리가 매몰됐다”며 “우리 당은 이념보다는 실용이라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분명한 철학과 방향성 없이는 실용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된 윤 대통령의 어록도 연이어 전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골프로 치면 250m, 300m씩 장타를 칠 수 있는 실력이 있는데 방향이 잘못되면 결국 아웃 오브 바운즈(OB)밖에 더 나겠나. 중요한 것은 방향”이라고 윤 대통령이 지난 5월 국무위원들에게 얘기했다는 전언도 그 중 하나다.
골프에 빗댄 발언은 또 있었다. “벙커에서 공을 잘 치려면 모래 속에 발을 파묻고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국민을 위해 설정한 방향을 바라봐야 한다”는 대통령실 참모들에 대한 당부를 윤 대통령이 직접 했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정치권에선 이를 두고 이념과 방향성이 같은 사람들과만 동행할 수 있다는 내부 결속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생각과 이념, 방향성이 다른 사람은 같은 밥상에서 함께 밥을 먹을 수 없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최근 당내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수도권 위기론’ ‘중도 확장론’ 등의 논란을 잠재우는 효과를 노렸다는 반응도 있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이 방향성에 맞게 정책을 내놓는다면 굳이 현란한 미사여구로 동원의 구호를 쓰지 않아도 지지자들이 저절로 모여든다는 논리다.
최근 여권 주류가 내놨던 ‘승선 불가론’과도 연결된다(관련기사 아군만 태울 속셈? 국민의힘 총선 ‘승선 논란’ 내막). 앞으로 가는 배를 옆으로 자꾸 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배에서 내려야 한다는 것이고 주류 세력은 물론, 윤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유승민 전 의원·이준석 전 대표 계열 상당수는 배제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여당 내에서는 ‘유승민·이준석 피하기’가 표면화하고 있다. 8월 30일 열린 대구의 대표축제 ‘대구치맥페스티벌’ 개막식에 이준석 전 대표가 참석하자 대구 국회의원들은 5선의 주호영 의원을 빼고는 단 한 명도 가지 않았다. 페스티벌이 열린 달서병의 김용판 의원은 물론, 양금희 대구시당 위원장도 불참했다.
김성태 국민의힘 중앙위 의장은 8월 29일 YTN라디오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에 나가 유승민 전 의원에 대해 “늘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만 물고 뜯는다”며 “당에 도움이 안 되는, 내쳐야 하는 존재”라고 했다. 김 의원 얘기처럼 유승민·이준석 계열이 당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남을 상황에 대비해 이념과 방향성을 강하게 띄웠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포용이 아닌 배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명분 쌓기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권영세 의원도 8월 31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 이준석 전 대표의 서울 노원병 공천에 대해 “당에 대해 하는 비판도 당의 변화를 위해 잘되라는 비판도 있고 너 망하라는 식의 비판도 있다”며 “그런데 (유승민·이준석 발언은) 위태위태한 부분이 솔직히 있다”고 지적했다.
#거대 야당과 싸워라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도 예산안을 심의·의결하는 8월 29일 국무회의에서 각 부처 장관들을 향해 “여야 스펙트럼 간극이 너무 넓으면 점잖게 얘기한다고 되지 않는다”며 “전사가 돼 싸워야 한다”고 직접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대야당 민주당이 정부를 강하게 성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장관들이 보다 책임감을 갖고 적극 나서라는 지시였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비공개 발언을 통해 “국무위원들은 정무적 정치인이고, 말로 싸우라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며 “공격받고 비판받는 걸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야권에 대한 방어뿐 아니라 장관들이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서 홍보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언급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같은 날 국무회의에서 “예산이 깎인 단체 등이 거세게 항의할 가능성이 큰데, 각 부처 장관이 이를 모두 기재부 잘못으로 돌리지 말고 같이 방어하고 대응해달라”고 당부하자 윤 대통령이 이 발언에 동의하면서 이같이 촉구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장관들은 자기 부처 예산뿐만 아니라 다른 부처 예산도 잘 숙지해 반대 여론에 논리적으로 잘 반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예산이 줄어든 사업을 정확하게 파악해 공격에 대해 정확히 설명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정감사와 예산국회가 열리면서 야권의 공세가 거세질 전망이 나오는데 내각이 여기서 밀리면 절대 안 된다는 ‘엄명’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내각에 대해 야권의 공세 저지선을 강하게 확보하라는 메시지가 전달된 것으로 볼 때 내각의 약화를 부를 총선용 차출은 최소화할 것으로 점쳐진다. 정치인 출신 추경호 부총리·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정도만 당으로 돌아오고 여론의 관심이 가장 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내각 저지선의 선봉으로 잔류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검사 출신인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8월 3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한동훈 차출론’에 대한 질문을 받자 “한 장관은 대통령하고 캐릭터가 많이 겹쳐 결국 대통령이 소구할 수 있는 지지층과 중첩된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그 밖에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와야 한다”면서 한 장관 역할론의 한계를 거론하기도 했다.
내각을 아웃복서가 아닌 인파이터들로 채우고 있는 것은 결국 내각이 성과를 내야 총선 승리라는 목표를 달성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광주광역시의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사업과 관련해 “국민의 혈세는 단 한 푼도 반국가적인 인물에게 쓰여선 안 된다”고 강조하며 장관직까지 걸겠다고 다짐하는 등 자유민주주의 이념 전도사로 나서는 것도 이의 연장선이다.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에 대해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하며 이창양 장관을 교체,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을 그 후임으로 지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탈원전에다 신재생에너지 문제 등 밝혀내고 질타해야 할 사안이 쏟아지는데도 이 장관이 정치 전선에 힘을 보태지 않고 뒤편에 앉아있었다는 것이다.
#선별 구제로 마사지
용산 쪽에서 그립을 너무 세게 잡는다는 비판은 여권 내에서도 높다. 이를 잠재울 이른바 ‘마사지’ 묘수도 동원될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내다본다. 배제 전략을 우선적으로 가동하겠지만 일부 비주류 세력에 대해서는 선별 구제 전술을 펼 가능성이 높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여당 주류 세력으로부터 큰 정치적 상처를 입은 나경원 전 의원이 1번 구제 대상으로 떠오른다. 나 전 의원은 8월 24일 국회 도서관에서 사단법인 ‘인구와 기후, 그리고 내일’ 창립 포럼을 열고 3·8 전당대회 이후 5개월 만에 여의도를 찾았다. 본격적인 총선 행보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꼬리를 물었다.
행사에는 당 지도부가 대거 참석했고, 김기현 대표는 “국민의힘 보수당의 그야말로 아이콘이고 또 최고의 리더”라며 지난 전당대회에서 자신의 경쟁 상대였던 나 전 의원을 치켜세웠다. 김 대표의 행동으로 볼 때 당내 주류가 나 전 의원에 대한 포용을 결정지은 것으로 해석됐다.
대선 직후 재보궐 선거에서 경기 성남 분당갑에 터를 잡은 안철수 의원 역시 선거를 앞두고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이 마련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안 의원도 지난 전당대회 과정에서 당내 주류와 얼굴을 붉히는 일을 경험했지만 거칠지 않은 안 의원의 성향까지 감안하면 품어줘야 한다는 게 당내의 일반적 시각이다.
국민의힘이 8월 31일 10개 지역구의 조직위원장을 임명하면서 유승민 계열이라고 할 수 있는 오신환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서울 광진을 위원장으로 결정한 것도 이런 움직임의 일환으로 읽힌다는 게 정치권 해석이다. 이렇게 되면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 등 이준석 전 대표와 가까운 일부 인사들에게도 선별적 포용 전술이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8월 31일 전남 순천에서의 최고위원 회의에 앞서 천하람 위원장과 조찬을 갖기도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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