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넘는 ‘팁플레이션’ 충격, 무인단말기 팁 요구 황당…근본 원인인 ‘서비스업계 낮은 급여수준’ 개선 목소리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모 베이글 전문점이 계산대 옆에 ‘팁 박스’를 비치해두었다가 그야말로 뭇매를 맞았다. ‘팁 박스’란, 서비스에 만족한 소비자들이 자율적으로 직원들에게 팁을 주고 갈 수 있도록 마련해놓은 작은 유리병으로, ‘팁 자(Tip jar)’라고도 불린다. 주로 미국의 식당이나 카페에서 볼 수 있는 ‘팁 문화’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앞서 카카오택시가 도입한 ‘감사 팁 시범 서비스’ 역시 ‘팁 문화’ 도입 논란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이미 청구서를 통해 봉사료가 포함되어 있는 금액을 지불하고 있는데 굳이 팁까지 또 챙겨줘야 하는가 하는 불편한 마음 때문이다.
게다가 ‘팁 문화’의 본고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미국에서조차서도 반강제적이 된 팁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데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치솟은 팁 요금으로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심지어 무인 단말기(키오스크)로 주문을 할 때조차 팁을 요구하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팁 문화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이제는 본래의 의미가 퇴색해버린 미국의 ‘팁 문화’ 현주소를 살펴본다.
“(팁을)주든 안 주든, 유쾌하진 않다.”
미국 워싱턴DC 시내에서 샐러드와 과일주스를 막 포장해서 나온 맷 쇼트랜드(41)는 ‘프랑스24’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식당에 앉아서 서빙을 받은 건 아니기 때문에 팁은 지불하지 않고 그냥 나왔다고 했다. 그는 “만약 내가 팁을 줬다면 아마 불필요한 지출을 했다는 생각에 어떤 식으로든 불쾌하거나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났을 것”이라고 했다. 팁을 주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좋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팁을 주지 않은 그는 직원들에게 ‘죄책감’을, 팁을 받지 못한 직원들은 그에게 ‘불쾌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쇼트랜드는 “팁 문화는 좋은 시스템이 아니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미국 식당이나 카페에서 팁을 지불하는 것은 으레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미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팁을 지불하는 나라이며, 팁은 기분 좋은 서비스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여겨진다. 보통 청구서의 약 15~20%를 팁으로 지불하지만, 만일 서비스가 기대했던 것보다 훌륭했다면 이보다 더 많이 주기도 한다. 만일 형편없는 서비스를 받았다면 어떨까. 이런 경우에도 5~10% 정도는 주는 게 불문율처럼 여겨지고 있다. 종업원들이 팁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팁을 남기지 않고 떠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제 미국의 서비스 산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연방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 팁을 받는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은 시간 당 2.13달러(약 2800원)며, 이는 연방 최저임금인 7.25달러(약 9500원)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다. 다시 말해 적어도 팁으로 5.12달러(약 6700원)는 벌어야 연방 최저임금 수준을 맞출 수 있다는 의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회사는 합법적으로 직원에게 적게 지불하고, 직원들은 그 차이를 메우기 위해 팁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이뤄졌다. 이런 까닭에 한편에서는 직원들에게 공정한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고용주의 책임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소비자 금융정보 제공업체인 ‘뱅크레이트’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41%는 고용주가 지금보다 더 높은 급여를 지불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포브스’ 역시 이에 대해 “팁을 통해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은 이익률이 낮은 기업에 특히 매력적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근래 들어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팁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확산되고 있다. ‘뱅크레이트’에 따르면, 미국 성인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팁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으며, 응답자의 약 30%는 팁 문화가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팁을 지불하는 사람들도 점점 줄고 있는 추세다. 특히 젊은층 사이에서 이런 추세는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뱅크레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앉아서 식사하는 레스토랑에서 항상 팁을 내고 나온다고 응답한 사람의 수는 2019년 77%에서 2023년 65%로 감소했다.
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한 건 코로나19를 거치면서였다. 비대면 서비스의 확산과 인플레이션이 팁 문화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가령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팁을 요구했던 곳은 식당, 술집, 이발소 등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팁을 요구하지 않던 사람들, 가령 바리스타나 운전기사와 같이 최저임금 이상을 받는 근로자들도 공공연하게 팁을 요구하기 시작했으며, 베이커리나 요구르트 가게에서부터 푸드 트럭과 주스 바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식품 업장에서 팁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심지어 셀프 서비스로 운영되는 패스트푸드점이나 스마트폰 배달 앱에서도 팁을 요구하고 있으며, 포장 주문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직원과의 상호 작용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카페, 빵집, 공항 및 스포츠 경기장과 같은 곳에 설치된 무인 단말기에서는 고객에게 팁을 지불할 수 있도록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팁을 지불하도록 유도하는 무인 단말기의 결제 화면을 보고 황당했다는 경험담도 줄을 잇고 있다. 일례로 한 여성은 얼마 전 뉴어크공항의 한 카페에서 무인 단말기로 결제를 하던 중 팁을 요구하는 안내 화면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팁 옵션으로는 15%, 18%, 20% 버튼이 있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정확하게 누구한테 주는 팁이란 말인가”라면서 의문을 제기했다. 뉴어크공항에서 무인 단말기로 달랑 6달러(약 8000원)짜리 생수 한 병을 구입한 후 10~20%의 팁을 요구하는 결제 화면을 봤다고 말한 맨해튼의 한 남성도 “그런 요구는 약간의 감정적인 협박처럼 느껴졌다”며 어이없어 했다.
소비자 행동을 연구하는 코넬대학의 마이클 린 교수는 이렇게 변질된 팁 문화를 가리켜 “피로감 그 이상이다. 짜증이 날 정도다”라고 비난했다. ‘팁 피로(Tip fatigue)’의 위험성에 대해 언급한 그는 “과거보다 더 많은 업장의 직원들이 팁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문제는 인플레이션에 허덕이는 소비자들이 커피 한 잔을 주문할 때조차도 팁을 요구받는다는 데 있다. 팁을 내고 싶지 않아도 공공장소에서 팁 요청을 거부할 때 받을 수 있는 따가운 눈총 때문에 망설이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더욱 확산된 디지털 결제 방법 때문이기도 하다. 바이러스 전파를 염려한 까닭에 현금 대신 아이패드 화면을 통한 결제가 주를 이루게 되면서 팁을 둘러싼 신경전도 늘고 있는 것이다. 보통 디지털 화면에는 미리 입력되어 있는 팁 요금이 있으며, 고객들은 화면을 통해 얼마를 줄지를 선택해야 한다. 물론 ‘노 팁(No tip)’을 선택할 수 도 있지만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서 팁 버튼을 누르게 된다. 다시 말해 인색하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다.
이런 문화가 ‘팁 피로감’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에티켓 전문가인 토마스 팔리는 “갑자기 이런 팁을 요구하는 결제 화면들이 거의 모든 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온라인 주문을 하는 앱 화면에도 있다”면서 “이런 모든 현상들이 다소 ‘침공’처럼 느껴진다”고 분개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디지털 결제 화면이 ‘팁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즉, 팁 요금을 치솟게 만들고 있는 주범이라는 의미다. 가령 그동안 암묵적으로 최소 비율로 여겨졌던 15% 버튼이 아예 사라진 곳도 많다. 18~20%가 최소로 지불할 수 있는 비율이며, 30% 이상을 요구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쿠키 하나를 사는데 35%의 팁을 요구받은 사례도 있었다.
이는 반강제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잔돈이 없다는 핑계로 무시하고 지나칠 수 있었던 팁 박스와 달리 디지털 결제 화면은 못 본 척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손님이 관대한지 혹은 그렇지 못한지를 해당 직원을 포함해 화면을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된다는 점도 문제다.
변호사인 한나 코반(30)은 “(디지털 결제 화면 때문에)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팁을 주게 됐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언제는 팁을 주고, 언제는 주지 말아야 할지, 적절한 팁은 얼마나 되는지 매번 결정을 내려야 한다. 지금은 20%가 기준이 된 걸까.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팁을 줘야 할 때마다 계속 구글에서 검색하고 있다”며 피로감을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팁플레이션’ 추세가 가속화된 또 한 가지 이유로 코로나19 기간 동안 후하게 지불됐던 팁을 꼽는다. 린 교수는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은 식당과 기타 업체에 대한 지지를 보여주기 위해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소비자들이 팁을 더 관대하게 주었다”고 말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그들을 돕고 싶어했고 바이러스에 걸릴 위험이 있는 전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듯 한 번 오른 물가를 되돌리기란 힘든 게 사실이다.
이런 피로감은 이미 곳곳에서 팁 노동자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너무 비싸진 팁 때문에 외식을 꺼리는 사람들이 늘거나 사회 전반적으로 팁을 거부하는 운동에 찬성하는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팁 문화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도 있다. 즉, 팁 노동자가 받는 최저임금 문제가 그렇다. 종업원들의 ‘공정한’ 급여를 옹호하는 ‘원 페어 웨이지’ 협회의 사루 자야라만 회장은 “‘팁 피로’에 대해 운운하는 것은 요점을 놓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만약 지나치게 많은 팁을 지불하는 데 지쳤다면 팁으로 급여를 받는 노동자들의 불합리한 최저임금제도를 끝내는 운동에 동참하라”고 조언했다.
‘포브스’ 역시 팁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동법, 최저임금, 모든 노동자에 대한 공정한 보상 등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회사가 팁에 의존하지 않고 직원들에게 적절한 임금을 지급해 보다 안정적이고 공평한 소득을 얻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한쪽에서는 최저임금을 올리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으며, 다른 한쪽에서는 이참에 팁 노동자용 최저임금 자체를 없애자는 과격한 주장도 나왔다. 과연 팁이란 게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때라는 의미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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