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튼 자진 사퇴로 제21대 수장 찾아야…야구 관계자들 “감독을 조급하게 만드는 구단”
일찌감치 조짐은 보였다. 서튼 감독은 이달에만 두 차례 건강 문제로 더그아웃을 비웠다. 지난 17일 어지럼증을 이유로 오전에 병원을 찾았다가 사직구장에 출근했지만, 경기 전 취재진 브리핑을 마친 뒤 증세가 심해져 귀가했다. 27일에도 야구장에 정상 출근했다가 다시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롯데는 이날 KT와의 주말 3연전을 싹쓸이당하면서 7연패에 빠졌고, 다음 날 롯데와 서튼 감독은 결별을 공식화했다.
롯데 구단은 '자진 사퇴'한 감독에게 잔여 연봉을 모두 지급하기로 했다. 감독의 중도 퇴진에 구단의 뜻도 반영됐을 공산이 크다는 의미다. 롯데 관계자는 "감독님이 스트레스 문제로 병원을 찾았던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서튼 감독은 왜 물러났나
서튼 전 감독은 제리 로이스터(2008~2010년) 이후 롯데가 두 번째로 맞아들인 외국인 사령탑이었다. 2005년부터 2007년 5월까지 KBO리그 현대 유니콘스와 KIA 타이거즈에서 선수로 뛰었다. 특히 2005년엔 현대 소속으로 홈런 35개를 떄려 홈런왕에 오르기도 했다. 2020시즌 롯데 2군 감독으로 계약해 한국과 다시 인연을 맺었고, 2021년 5월 허문회 전 감독이 경질되면서 1군 감독으로 부임했다.
감독 지휘봉을 잡은 첫해에는 하위권에 머물던 롯데를 가을야구 경쟁권으로 끌어 올리면서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그해 서튼 감독 부임 후 롯데의 승률은 5할(53승 8무 53패)이었다. 롯데는 시즌이 끝난 뒤 2023년까지 계약을 연장해 서튼 전 감독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롯데는 이듬해에도 큰 반전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8위(64승 76패 4무·승률 0.457)에 머물렀다.
계약 마지막 해인 올 시즌은 출발이 무척 희망적이었다. 롯데는 외부 프리에이전트(FA) 포수 유강남·내야수 노진혁·투수 한현희를 영입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 의지를 다졌고, 국내 에이스 박세웅과 비FA 다년 계약을 해 장기적인 안정도 꾀했다. 5월에는 LG 트윈스와 선두 싸움을 하면서 부산의 야구 열기를 재점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6월부터 다시 급격하게 힘이 빠지면서 하위권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높이 올라갔던 만큼, 롯데의 낙폭은 더 두드러져 보였다. 이달 초반 반짝 상승세를 타면서 가을야구 희망을 되살리나 싶었지만, 중반 이후 다시 패배 릴레이가 이어졌다. 서튼 감독의 스트레스는 치솟았고, 리더십에는 물음표가 붙었다.
설상가상으로 롯데는 코칭스태프 내부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서튼 감독이 부임했던 2021년 5월엔 1군 코치진의 절반이 감독과 영어로 소통하는 외국인 지도자로 채워졌다. 메이저리거 출신 행크 콩거가 수석코치를 맡았고, 리키 마인홀드와 라이언 롱이 각각 수비와 타격을 책임졌다. 또 제라드 레어드가 배터리코치, 로이스 링이 피칭 코디네이터 역할을 했다. 그러나 2년 사이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외국인 코치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둘 한국을 떠났다. 콩거 코치가 올 시즌을 앞두고 빅리그(미네소타 트윈스)로 복귀했고, 뒤이어 마인홀드 코치가 개인사를 이유로 미국으로 돌아갔다. 링 코치도 재계약하지 않았다. 남아 있는 외국인 코치는 롱 타격 보조코치가 유일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월 27일 끝내 뇌관이 터졌다. 배영수 투수코치가 갑자기 2군으로 내려가면서 '항명설'이 불거졌다. "감독과 배 코치가 선수단 운영을 놓고 대립했다"는 소문이 흘러나온 것이다. 이보다 앞선 6월 23일에는 내부 불화의 징후가 처음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날 잠실 LG전에 앞서 김평호 주루·1루 코치가 2군으로 내려가고 나경민 2군 외야·주루코치가 1군에 합류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가라앉는 팀에서 흔히 쓸 수 있는 코치진 교체 카드로 여겨졌지만, 나흘 뒤 배영수 코치가 2군 총괄(감독 대우)을 맡고 이종운 2군 감독이 1군 수석코치로 올라오면서 시선이 달라졌다. 동시에 기존 수석코치였던 박흥식 코치의 보직은 타격코치로 바뀌었다. 선수들도 미처 몰랐던 핵심 코치들의 연쇄 보직 이동 소식이 전해지자 자연스럽게 불화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배 코치가 성 단장과 허물 없이 대화를 나누는 막역한 사이로 알려졌기에 더 그랬다. 서튼 감독은 당시 "이달 들어 성적이 좋지 않았다. 구단 차원에서 분위기를 바꾸려고 코칭스태프 개편을 결정했다"고만 했다.
어쨌든 서튼 감독은 그 후 두 달 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롯데 유니폼을 벗었다. 롯데는 일단 이종운 수석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선임해 잔여 시즌을 치르기로 가닥을 잡았다. 부산 출신으로 경남고와 동아대를 졸업한 이 감독대행은 1992년 외야수로 활약하면서 롯데의 마지막 우승에 힘을 보탠 '우승 멤버'다. 그가 롯데 선수단을 지휘하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2015년 롯데의 1군 사령탑으로 한 시즌을 보낸 경력이 있어서다. 당시 롯데는 8위(66승 1무 77패·승률 0.462)로 시즌을 마쳤고, 3년 계약을 했던 이 감독은 계약 기간을 2년이나 남기고 팀을 떠났다. 그 후 8년 만인 올해 2군 감독으로 롯데에 복귀했다가 1군 수석코치로 보직이 바뀐 지 두 달 만에 1군 감독대행 역할을 떠안게 됐다.
KBO리그에서 1군 감독을 역임했던 지도자가 기존 감독 퇴진 후 감독대행을 하게 된 건 이 감독대행이 역대 세 번째다. 김성근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이 2001년 LG 이광은 감독 퇴진 뒤 감독대행을 맡은 게 첫 번째였고, 우용득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 2001년 시즌 도중 세상을 떠난 롯데 김명성 감독의 자리를 대신한 게 두 번째였다. 앞선 두 감독 모두 시즌 종료 후 정식 감독으로 취임했다.
이 감독대행은 "서튼 감독님께서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건강이 악화되신 것 같다"며 "마음이 안 좋다. 모든 책임이 감독 한 명에게만 향하는 모양새는 옳지 않다고 본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모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감독대행은 또 "아직 롯데는 가을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일단 선수들을 다독이면서 남은 경기를 잘 치르는 게 급선무"라며 "아직 적지 않은 게임이 남았다. 남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 최대한 많이 이겨보겠다"고 했다.
#독이 든 성배, 롯데 감독
롯데의 감독직은 대대로 '독이 든 성배'로 통한다. 롯데는 KBO리그 최초로 감독을 20차례나 선임한 팀이다. 감독의 평균 재임 기간이 2년을 간신히 넘는다. 1982년 나란히 창단한 두산 베어스와 비교하면 격차가 더 두드러진다. 두산의 역대 감독은 이승엽 현 감독을 포함해 총 11명(전신 OB 포함)이다. 롯데 감독의 평균 수명이 두산 감독보다 두 배 가까이 짧다는 얘기다.
그동안 롯데를 거쳐간 야구인은 총 17명이다. 박영길, 강병철, 성기영, 어우홍, 김진영, 강병철, 김용희, 김명성, 우용득, 백인천, 양상문, 강병철, 제리 로이스터, 양승호, 김시진, 이종운, 조원우, 양상문, 허문회, 서튼 감독 순이다. 강병철 감독이 제2대, 6대, 10대 감독을 맡아 세 차례나 롯데 팀 지휘봉을 잡았다. KBO리그 역사에서 유일한 사례다. 양상문 감독도 두 차례(11대, 18대) 롯데 감독을 역임했다.
그중 3년 이상 자리를 지킨 감독은 42년 역사에 네 명밖에 없다. 강병철, 김용희, 제리 로이스터, 조원우 감독이다. 박영길, 성기영, 어우홍, 김진영 감독 등의 임기가 모두 2년 이하로 끝났다. 그 사슬을 간신히 끊은 인물은 롯데 역사에 최장수 사령탑으로 남아 있는 7대 김용희 감독이다.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김 감독은 1994년부터 1998년 6월까지 4년 반 동안 팀을 지휘했다.
그 후에도 역사는 되풀이됐다. 양승호(2011~2012년)-김시진(2013~2014년)-이종운(2015년) 감독이 롯데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짐을 쌌다. 2019년 부임한 양상문 감독은 그해 7월 지휘봉을 내려놓았고, 후임 허문회 감독도 1년 반을 채 버티지 못하고 사퇴했다. 2년 3개월 동안 롯데 사령탑을 지킨 서튼 감독이 '장수 감독' 중 한 명으로 분류돼야 할 정도다. 20명 중 중도 퇴진한 감독이 거의 절반(9명)인데, 그 안엔 1년을 못 채운 감독이 3명이나 포함돼 있다.
한 차례라도 임기를 연장한 감독 역시 4명(강병철·김용희·김명성·조원우)에 불과하다. 특히 2010년 이후 계약 기간을 모두 채운 사령탑은 조원우 감독(2016~2017년)이 유일하다. 그런 조 감독도 3년 재계약 첫해인 2018시즌을 마친 뒤 성적 부진으로 1년 만에 물러났다.
야구 관계자들은 "롯데는 감독을 조급하게 만드는 구단"이라고 평가한다. 팬들의 열정과 관심은 전국에서 첫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뜨거운데, 롯데의 성적과 경기력은 대체로 안 좋았다. 한국시리즈 우승도 1992년이 마지막이다. LG 트윈스(1994년)나 한화 이글스(1999년)보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팀 성적이 부진할 때 팬들은 직접 야구를 하는 선수보다 벤치에 앉아 있는 감독을 더 자주, 더 쉽게 비난한다. 롯데 수뇌부는 종종 그런 '팬심'에 편승해 일희일비했고, 책임 소재를 잘못 찾거나 틀린 선택을 반복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도 롯데에는 예외였다.
롯데 감독을 역임한 한 야구 지도자는 "하루하루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성적이 안 좋을 때는 가족의 신변까지 위협받을 정도로 욕을 많이 먹어서 사퇴를 고민했다. 반대로 결과가 좋을 때는 갑자기 달라진 평가와 찬사에 도리어 씁쓸함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다른 팀 감독 출신인 야구 관계자도 "성적을 못 내는 감독은 야구계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 하지만 성적을 못 내는 '롯데 감독'은 아마 전국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일 것"이라며 뼈 있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롯데는 이제 제21대 감독을 찾아야 한다. 1992년 마지막 우승 이후 경력도, 나이도, 국적도 다양한 지도자들이 감독 자리를 거쳐갔지만, 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쯤 되면 감독의 역량을 탓하기도 민망할 정도다. 백약이 무효했던 롯데의 스물한 번째 선택이 그래서 더 중요해졌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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