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무 살 양학선, 그의 다음 무대가 더 기대된다. |
“아파트요? 주시면 고맙죠. 하지만 그렇게 큰 선물은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주신다고 해서 덥석 받아서도 안 되고요. 한국 돌아가면 어른들이랑 상의해봐야죠. 소속사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라면박스가 집에 쌓여 있다는 게 정말이에요? (잠시 생각하다가) 올림픽이 대단하긴 참으로 대단한 것 같아요(웃음).”
집안 형편이 어려워 가난하게 성장했고 부모님이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는 게 알려지면서 양학선은 일약 ‘캔디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부상했다. 미디어에선 양학선의 부모님을 찾아가 인터뷰를 했고 어렵게 살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면서 양학선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생활했는지 관심 있게 보도했다. 이에 대해 양학선은 다른 입장을 나타냈다.
“사람들은 비닐하우스에 살고 계시는 부모님이 방송에 나오시는 걸 보고 제 성장 과정이 공개된 데 대해 창피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전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절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어머니께서 비닐하우스를 당당히 공개하셨다는 게 더 기뻐요. 엄마 아빠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 AP/연합뉴스 |
▲ 이것이 ‘양학선’이다 양학선이 지난 6일 오후(현지시각) 노스 그리니치 아레나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도마 경기 1차 시기서 ‘양학선’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
“제가 언론을 향해 말하고 약속했던 부분이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을 때 제일 괴로웠어요. 런던에 오면서 형들한테 한 말이 있어요. 만약 메달을 못 따면 한국으로 돌아갈 때 비행기 타지 않고 헤엄쳐서 갈 것이라고. 그 정도의 독한 오기로 올림픽을 준비했습니다. 선수촌에 기념품 판매하는 곳이 있거든요. 그곳에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메시지를 적는 보드판이 있어요. 전 그곳에다 ‘빈손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절대로 한국에 가지 않겠다’라고 적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양학선의 금메달을 당연시하는데 만약 그 기대치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면 제가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요.”
자신은 절대 포기하거나 도망가지 않는 성격이라 만약 메달을 따지 못했더라면 귀국하는 걸 망설였을 것이라고 말하는 양학선이다. 그러면서도 선수들과 같이 고생해놓고 혼자만 주목받는 데 대한 미안함을 드러낸다.
“개인전에서는 금메달을 땄지만 단체전에선 별로 보탬이 되지 못했어요. 형들이랑 같이 메달을 땄더라면 개인전 금메달보다 더 큰 가치와 의미가 있었을 겁니다. 많이 죄송할 따름이에요.”
▲ 기자와 함께 기념촬영 한 컷. |
한체대 진학 후 여홍철의 전매특허인 ‘여2’를 업그레이드시켜 공중에서 세 바퀴, 즉 1080도를 비튼 뒤 착지하는 기술을 완성시켰다. 이로 인해 지난해 10월 도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국제체조연맹은 이 기술에 ‘YANG Hak Seon’이란 이름을 명명했다. 난이도는 7.4. 우린 흔히 그 기술을 ‘양1’이라고 부르지만, 아직은 ‘양학선2’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양학선’ 또는 ‘양’이라고 하는 게 맞다.
“세계 체조계는 유럽 선수와 심판들이 주축 세력을 이뤄요. 그들을 상대로 이기는 방법은 차별화된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쫓아오지 못하게끔 신기술을 개발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여홍철 교수님의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저만의 새로운 기술이 나오게 된 거예요.”
▲ 사격 김종현, 배드민턴 이용대 등과도 포토타임을 가졌다. |
“어느 무대보다도 올림픽에서 저의 신기술인 ‘양학선’을 선보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감독님, 코치님과 상의 끝에 경쟁자들의 점수가 16.266점 이상일 경우 양학선(난도 7.4)을, 그렇지 않을 경우엔 난도 7.0의 ‘여2’로 가자고 전략을 짰습니다. 결국 러시아의 데니스 아블리야진이 16.399점을 받자 1차 시기에서 ‘양학선’을 선보이게 됐어요. 물론 착지가 흔들리면서 몸이 앞으로 쏠리긴 했지만 ‘양학선’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에 전광판에는 16.466점이 찍히더라고요. 그러나 전 16.600 정도는 예상했었습니다. 점수 짜더라고요(웃음). 2차 시기에선 ‘양학선’ 대신 ‘여2’를 연기했고, 완벽하게 착지하면서 바라던 16.600이 나왔습니다.”
양학선은 당시 경기 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여2’를 사용할 때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고 말한 바 있었다. 그 기분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 고된 훈련으로 굳은 살이 박힌 양학선의 손바닥. |
“그 부분에 대해선 아직 확실한 답변을 못 드릴 것 같아요. 체조가 4년에 한 번씩 룰이 바뀌거든요. 아무래도 유럽이 강세이다보니 그들한테 유리한 쪽으로 룰이 바뀔 겁니다. 그 룰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먼저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양2’는 ‘양1’에서 반 바퀴를 더 비트는 건데 굳이 옆으로 비틀기만을 하는 게 아니라 앞 또는 뒤로 도는 걸 두 바퀴로 바꿔볼 생각도 있습니다.”
양학선이 ‘양2’의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의 목표가 런던올림픽에 한정됐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나이 스무 살이다. 그는 앞으로 두 번 더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대표팀 선발전에 뽑혀야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이번 올림픽 금메달은 제 체조 인생에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에요. 그래서 기분 좋아요(웃음). 사실 부모님께 집을 장만해드리는 건 제가 번 돈으로 하고 싶었어요. 앞으로 올림픽이 또 남아있고 이번에 메달 따면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싶어 더 열심히 했던 부분도 있습니다. 부모님은 아파트보다 지금 살고 계시는 비닐하우스를 헐고 새로운 집을 짓고 싶어 하셨어요. 제가 부모님 집 짓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말미에 경기가 끝난 후 카메라를 향해 하트 모양을 선보인 건 누구한테 전하는 메시지였냐고 묻자, 양학선이 환하게 웃으면서 “에이, 그거 엄마한테 한 거예요. 다른 사람 아니에요. 엄마한테 보낸 하트였어요”라고 선을 긋는다.
영국 런던=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
그때 그 ‘멘붕 청년’ 큰일 냈다
지난 9일, 리듬체조 경기장이 위치해 있는 영국 런던 웸블리 아레나에 한 여성이 나타났다. 그는 손연재의 어머니와 함께 리듬체조를 지켜보며 손연재를 향해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존재가 궁금하던 차에 옆에 있던 손연재의 매니저가 조수경 박사라고 알려줬다. 조 박사는 김효주(골프), 박태환, 손연재, 양학선 등 한국 스포츠스타들의 심리 상담을 맡고 있는 심리학 박사다. 한마디로 경기장 밖에서 선수들을 상대하는 ‘멘털 코치’인 셈.
손연재의 경기가 끝난 후 조 박사로부터 양학선과 관련된 뒷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양)학선이가 금메달을 따는 순간, 난 한국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 학선이로부터 문자를 받았는데, ‘선생님이 비행기에서 내리실 때 금메달 소식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란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게 현실로 이뤄졌다. 비행기 안에서 기장으로부터 양학선의 금메달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쉽게 약속을 하는 선수가 아닌데, 그 문자를 받고서 조금은 안심이 됐다. 그만큼 자신의 기술에 대해 자신 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받아들였다.”
지난 3월, 처음 조 박사를 대면한 양학선의 모습은 심리적인 압박이 너무 심해 계속 체조를 하는 게 힘들어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훈련이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외부의 시선과 자신이 느끼는 스트레스로 인해 목표 설정 자체가 어려웠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말했고 누구에 의한, 누구의 기대치에 의한 목표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새로 세우자고 얘기해줬다. 학선이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심리 치료에 응했다. 그만큼 올림픽에 대한 간절함이 존재했다. 그래서 서로 파이팅하면서 상담을 했던 것 같다.”
매주 한 차례씩 조 박사를 찾아왔던 양학선은 어느 순간부터 눈에 띄게 밝아지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게 되면서 훈련 자체를 즐거워했다고 한다.
“지금보다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금메달 획득 이후 학선이가 겪는 새로운 경험과 자극들이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지 흥미롭게 지켜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학선이는 심지가 단단한 선수라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변화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는다.”
조 박사는 양학선과 멘털 치료를 하는 동안 어려움과 위기도 있었지만, 양학선의 금메달이 그 모든 걸 해소시켜준 것 같다며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