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가입 보증서까지 발급해놓고…확인된 피해자 33명인데 HUG 취소 사유 공지 안 해
HUG는 세입자가 집주인을 잘못 만나 전·월세 보증금을 떼이는 일이 없도록 여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른바 깡통전세 등에 따른 세입자 피해를 막고자 보증금 보호를 공증하는 '보증금 보증'도 그 가운데 하나다. 가입 대상이 임대인이라 세입자들이 드는 보증금 상환 보험과는 다르지만, 보증금 보존을 약속하는 성격은 똑같다.
#3개월 만에 없던 일…이유는 '쉿'
부산 수영구 어느 다세대 주택에 전세로 거주하는 A 씨는 2023년 8월 말쯤 HUG로부터 믿기 힘든 공문을 받았다. 집주인이 가입한 '임대보증금 보증'이 중도 취소됐다는 내용이었다. HUG는 A 씨에게 보증금을 안전하게 반환받으려면 적절한 보호조치를 취하길 바란다고도 당부했다.
이어 HUG는 "임대인이 아니라면 보증 취소 사유는 안내가 불가능하다"며 "자세한 내용은 집주인을 통해 문의하시기 바란다"고 공지했다. 화들짝 놀란 A 씨는 곧장 HUG에 문의를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어렵게 담당자를 찾아도 보증 취소의 구체적인 이유는 들을 수 없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A 씨는 일찍이 집주인의 과도한 제2금융 대출 등을 확인해 깡통전세에 대한 우려는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집주인이 임대보증금 보증 가입을 약속해 안심했다. 실제 2023년 5월 HUG로부터 보증서도 받았는데 불과 3개월 만에 취소 통보가 날아온 것이다.
이 지역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만 33명에 달한다. HUG는 앞으로도 해당 집주인이 보유한 건물의 세입자들에게 보증금 보증 취소 사실을 통보할 계획이다. 이 집주인은 부산에만 10개 빌딩 총 190세대를 보유했다고 파악됐다. 최종적으로 피해자가 100명을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
세입자들은 집주인에게 계속 연락을 시도했지만 8월 31일 이후로 닿지 않고 있다. 마지막 통화 당시 집주인은 "HUG의 일방적인 판단으로 취소 결정이 나왔다"며 "금융권 지원 등을 활용해서라도 세입자 피해는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일요신문도 집주인에게 연락해봤지만 실패했다.
#"듣도 보도 못한 사건" 신뢰 깨진 HUG 보증
일부는 전세계약이 끝났음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탓에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한 입주자는 상황이 이런 줄도 모르고 9월 1일 집주인 계좌로 계약금과 보증금 전액을 입금했으나 임대인과 연락이 안 돼 계약이 중단되기도 했다. 세입자 대부분은 20대와 30대 등 청년들로 알려졌다.
상황만 놓고 보면 보증금을 떼일 위기에서 HUG가 같이 발을 빼 버린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이에 세입자들은 집주인뿐 아니라 HUG에도 강한 불만을 토로한다. 진즉에 보증서까지 발급해 놓고 뒤늦게 이를 취소하는 게 온당하냐는 것이다. 애초 공사가 잘못한 업무 처리의 책임을 세입자에 전가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꼬집는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이번 사례에서 HUG가 보증을 중도 취소한 이유의 한 가지는 '집주인이 임대보증금을 실제보다 낮춰 기재했다'는 등 서류 조작 때문으로 확인됐다. 다만 세입자들이 일찍이 수령한 보증서에는 정확한 임대보증금이 기재돼 있어 자세한 이유는 미궁으로 남아 있다.
이에 세입자들은 "HUG가 보증금 이행 청구 신청을 거부한 사례는 자주 접했으나, 이미 유효하게 발급한 보증서의 일방적 취소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며 "HUG 보증서를 신뢰한 임차인들은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HUG가 피해 최소화를 위한 방안도 고민하지 않아 날벼락과 다름없다"고 호소했다.
HUG 관계자는 "수십 세대 피해가 발생해 계속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며 "최근 주택 가격이 하락하며 여러 보증 요건을 맞추는 가입자가 많다 보니 이처럼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증금 보증 취소 사유는 공지하는 게 원칙으로 대상자들에게 취소 사실을 통보한 뒤 늦게나마 공지했다"고 덧붙였다.
기관의 규정상 허점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HUG의 '개인임대사업자 임대보증금보증 약관' 제14조에는 "사기행위에 대한 특례에 따라 임대사업자가 사기 또는 허위로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거나, 이를 근거로 보증을 신청했다면 보증을 취소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말로만 '서민 주거 안정'
세입자들은 급한 대로 집주인을 경찰 등에 신고해뒀다. 저마다 사정에 따라 개별적으로 고소장을 접수하는 중이라 경찰도 곧 사건을 병합해 수사에 착수할 전망이다. 입주민들은 또 지방자치단체와 상급기관인 국토교통부 등에도 민원을 제기하고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으로 '서민 주거 안정'과 '신뢰'를 비전으로 내세우는 HUG를 향한 시선은 더욱 따가워질 수밖에 없다. 전세사기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며 HUG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추세지만, 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최근까지도 잇따라 왔기 때문이다.
일례로 A 씨 등이 세입자들이 임대인 측의 보증금 보증에 기대온 이유도 임차인의 보증보험 가입이 까다로워진 까닭이다. 2023년 2월 정부는 임차인들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기준을 전세가율 100%에서 90%로 조정하고, 주택가격 산정기준 역시 공시가격의 150%에서 140%로 낮추는 등 요건을 강화했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7월 발표한 '전세보증보험 가입기준 강화에 따른 영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이 같은 정부 조치로 전체 세입자의 약 14%는 가입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존에는 약 10.5%가 가입 불가 대상으로 집계돼 왔다. 특히 수도권보다 지방이 취약하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밖에도 보증보험 가입과 반환 등에서 어려운 법률 용어가 많고 지나치게 많은 서류를 요구해 절차가 복잡하다는 등의 지적은 꾸준했다. 전세 재계약시 세입자가 직접 보증보험을 갱신하지 않으면 자동 취소된다는 공지가 없다는 비판 등도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세입자 귀책사유를 들어 전세보증보험 지급을 거절하는 경우는 흔하다.
최근에는 서울의 한 세입자가 보증금 반환을 청구하자 HUG가 임대인의 신분증 사진 등을 요구해 난처했다는 사연도 보도로 전해졌다. 단 HUG는 "당초 계약한 임대인(전 집주인)과 화면 상 임대인(현 집주인)의 연락처가 일치하지 않는 등 특수한 경우에 한해서만 임대인의 신분증을 불가피하게 확인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전세 주택의 보증금 사고가 갈수록 심해지는 만큼 대대적인 개선이 요구된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져 온 전세금 5억 원 이상 고가 주택에서 HUG가 올 1∼4월에 대신 내준 보증금만 총 264건, 1029억 원에 이르렀다. 이는 2022년 총액(813억 원)을 이미 넘어선 수치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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