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반국가단체 동조” 맹비난, ‘친정’ 민주당은 침묵…“간토 학살 100년 입장 없는 정부가 더 문제” 시선도
#총련 행사 참석 파문
9월 1일 오후 1시 30분 윤미향 의원이 도쿄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또대진재 조선인학살 100년 도꾜동포주도모임에 참석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이 행사는 친북 단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과 ‘도쿄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진상조사단)에서 주최했다. 한국 대법원은 총련을 반국가단체로 판결한 바 있다. 간또와 도꾜가 북한식 표현이라는 점도 뒷말이 나온다. 진상조사단은 조선인 학살 등을 객관적인 자료조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는 저명한 일본 시민단체다.
윤미향 의원이 같은 날 오전 11시 한국 정부가 후원하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주최 추모식에는 불참하고 총련 행사에만 참석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자 윤 의원은 오전 11시엔 도쿄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모 행사에 참석했다고 해명했다. 이 행사는 일본 시민단체인 일조(日朝)협회와 일본평화위원회 등으로 조직된 실행위원회에서 주최했다. 이들은 1974년부터 요코아미초공원에서 매년 9월 1일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건으로 숨진 희생자를 추모하는 추도식을 개최하고 있다.
윤미향 의원이 국회사무처에 제출한 ‘일본 출장 일정(안)’에는 오전 11시 행사에 참석한다는 내용이 없다. 실제 참석 여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또한 간또대진재 조선인학살 100년 도꾜동포주도모임 주최자를 총련이나 진상조사단이 아닌 ‘한국 간토학살 100주기추도사업추진위원회’(추진위)라고 잘못 기재했다. 이를 두고 이종배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허위 공문서 작성이라고 주장하며 윤 의원을 경찰에 고발했다.
9월 5일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SNS에 “윤미향 의원이 국회사무처와 외교부에 주최 단체를 속이고 총련 행사에 참석했다. 사기성 출장”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윤미향 의원은 “(총련 주최 추도식) 외에도 다른 대부분 행사에 총련은 함께했다. 그게 일본 시민사회다. 일본 시민사회 어느 곳에 가든 총련은 있다”며 “(총련 주최 추도식은) 일본 최대 평화단체인 ‘포럼 평화·인권·환경’과 간토학살 희생자 추도실행위원회(실행위원회)가 후원 단체로 있고, 총련과 진상조사단이 주최 단체였다. 한국 추진위는 연대 단체로 함께했다”고 밝혔다.
윤미향 의원은 ‘일본 출장 일정(안)’에 기재되지 않은 행사 참석 사실관계 및 배경, 행사 주최를 잘못 기재한 것 등에 대해선 해명하지 않았다. 일요신문은 윤 의원 측에 관련 질의를 했으나 어떤 답변도 받을 수 없었다.
총련 주최 추도식에 허종만 의장, 박구호 제1부의장 등 총련 지도부가 대거 참석한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허 의장은 2020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북한 최고 등급으로 알려진 ‘노력 영웅’ 칭호와 국기훈장 1급을 받은 인물이다. 고덕우 총련 도쿄본부 위원장은 이날 추도사에서 한국 정부를 ‘남조선 괴뢰도당’이라고 지칭하기까지 했다.
한국 정부가 후원하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주최 추모식에 불참한 것에 대한 윤미향 의원 해명도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다. 9월 5일 윤 의원은 “저는 민단의 추념식을 알지도 못했고, 초청받지도 못했다”고 밝혔다. 앞서 9월 2일 SNS에 “민단서 추도행사가 있다는 사실을 들었지만, 저는 초대받지 못했다”고 한 것과 배치된다.
#맹공 나선 ‘당정대’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은 일제히 공세를 퍼부었다. 9월 4일 국민의힘은 총련이 주최한 추모식에 참석한 윤미향 의원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했다. 이날 김기현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 김정은을 추종하는 집단의 행사에 참석해서 남조선 괴뢰도당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내뱉는 반국가단체에 동조한 윤 의원은 의원직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국민 자격도 없다”고 맹비난했다.
같은 날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국체를 흔들고 파괴하려는 반국가행위에 대해 정치진영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과 함께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이도운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이는 최근 윤 대통령 ‘이념전쟁’과 궤를 같이 한다(관련기사 대체 뒤에 누가 있길래? 윤석열 대통령 ‘이념전쟁’ 막후)는 분석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 발언이 윤미향 의원을 겨냥한 것이냐는 질문에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총련은 우리 대법원이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라고 확정 판결을 내린 바 있다”며 “국민 세금을 받는 의원이 반국가단체 행사에 참석해 남조선 괴뢰도당 말을 들으면서 끝까지 앉아있는 행태를 우리 국민이 어떻게 이해하겠나”라고 밝혔다.
정부는 윤미향 의원이 총련 주최 행사에 참석한 것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9월 3일 통일부는 윤 의원이 사전에 접촉 신고를 한 적이 없다며 과태료 부과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르면 총련 구성원은 북한 주민으로 간주되고, 총련이 주최·주관하는 행사에 참여하려면 통일부의 접촉 신고 및 수리가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윤미향 의원은 “추모일정은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전접촉 의무 대상 요건에 성립되지 않을 뿐더러 사후적으로 접촉 행위도 없었다”며 “이번 방일 행사와 관련해서 일본에서 총련 관계자를 만날 의도나 계획이 없었다. 정보나 메시지를 주고받는 접촉을 할 이유도 없었다. 따라서 접촉 신고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추도식에 참석해서 헌화만 했을 뿐이라 사후신고 대상도 아니며, 현행법 위반은 없다”고 강조했다.
9월 6일 채희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도 한국 추진위 기자회견에서 “남북교류협력법과 국가보안법은 행사 주최자가 누구인지를 묻지 않는다. 이 법들이 묻는 건 접촉 여부”라며 “남북교류협력시스템에는 접촉을 의사의 교환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사안에서 접촉 의도와 계획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추도식에 참석해서 총련 간부 연설을 보고 들은 것은 접촉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처벌 적용 범위도 관건이다. 당시 추도식에는 윤미향 의원뿐만 아니라 한국 추진위 등 한국인들이 대거 참석하고 있었다. 이들을 모두 추려낼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어느 범위까지 해야 하는지를 확인하고 있는 단계”라며 “1차로 추려낸 다음에 경위서 등을 통해서 사실관계를 확인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처벌 인원이 늘어날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다. 본격적인 조사는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번 논란에 침묵을 택했다. 9월 5일 김한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원내대책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윤미향 의원 관련) 입장은 따로 없다. 윤리위원회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잘 검토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는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윤미향 의원에게 이번 행사 참여를 제안한 한국 추진위는 9월 6일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색깔론, 이념놀이를 당장 중단하라”며 윤석열 정부를 규탄했다. 이들은 “일본 언론도 100주기를 맞아 일본 정부 책임을 추궁하는 기사를 쏟아냈다”며 “그런데 정작 학살 진상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한국 언론과 정부가 색깔론을 앞세워 일본 시민세력과 연대하고자 방일한 윤 의원을 공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 추진위는 “대한민국 정부는 단 한 번이라도 간토 학살 희생자를 기리는 추도식을 연 적이 있는가. 추도문이라도 발표한 적이 있는가. 그동안 일본 정부에게 학살 책임을 물은 적이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그동안 대한민국 정부가 외면했던 일을 한국 시민사회, 재일 동포들이 일본 시민사회와 연대해 이제까지 진상규명의 끈을 놓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정부가 시대착오적인 이념을 덧씌워 비난하고 탄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미향 의원을 옹호하는 일본 시민사회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간토 학살 추도식 실행위원을 맡은 재일동포 김성제 목사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윤 의원이 이틀간 여러 추도식에 참석했는데, 그중 하나만 문제 삼고 있다”며 “재일동포 입장에선 간토 학살 100년에 한국 정부가 아무런 입장도 발표하지 않은 것이 더 부끄럽다”고 했다.
간토 대지진 조선인·중국인 학살 희생자 추도집회의 후지타 다카카게 사무국장도 “추도집회에 중국대사관에선 공사가 참석했는데, 한국대사관은 ‘검토 중’이라고 하더니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며 “일본 정부가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데, 한국 정부가 조용한 것도 이상하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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