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재가 있던 그날, 9월 4일. 선생님들은 그날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선언했다. 그렇게 한번 멈춰 서 돌아봐야 했던 것 같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성찰하기 위해. 우리는 몰랐다, 선생님들이 그렇게 어려운 줄. 존경은커녕 존중도 하지 않는 소수의 학부모들의 괴롭힘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을. 별 거 아닌 일, 대화로 풀어낼 수 있는 일도 넘어가지 않고 화를 내며 한번 당해보라는 심보로 자극을 하면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학교는 우리의 미래다. 그런 학교에서 왜 학생들은 행복하지 않은지, 거기에서 선생님들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왜 선생님이 학생과 학생의 갈등을 화해시키기 어려운지, 아이들이 학교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는 누가 박탈하는지.
물론 소수의 학부모일 것이다. 많은 부모들은 아이가 학교에 가서 존경할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나 잘 배우고, 반에서 만난 친구들과 잘 지내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 소수라 해도 상대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것을 ‘똑똑함’으로 알고, 집요한 겁박을 ‘권리’로 알고, 자기 아이밖에 볼 줄 모르는 일을 ‘사랑’으로 아는 그런 부모가 일 년에 한 명만 있어도 선생님들의 마음은 난장이 될 것이다. 이제 학교에 전화를 걸면 통화 연결음으로 “교직원 보호를 위해 통화 내용이 녹음될 수 있습니다”라는 멘트가 뜬다고 하니, 부끄러운 일이다.
아이들에게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학교다. 몸도, 마음도 쑥쑥 자라야 하는 나이에 친구는 형제요, 자매며, 경쟁자요, 때론 적이기도 하다. 다양한 성향과 성격을 가진 아이들이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모험도 하고 싸움도 하고 혼란도 겪으면서 성장할 때 존경받는 선생님은 울타리이고 나침반이다. 그런 선생님의 품에 있으면 적이 형제가 되기도 하고 경쟁자가 친구도 되는 경험을 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성장할 때 선생님은 정말 중요하다. 논리적으로 잘 따져주는 선생님은 분별력을 키워주고, 따뜻하고 온화한 선생님은 마음 여는 법을 알려준다. 어떤 선생님을 만났는지에 따라 세계가 달라지는 것을 우리는 ‘빨강머리 앤’에게서도 배우지 않았나. 아이들을 통제의 대상, 순종의 대상으로 아는 필립스 선생이 떠나고, 아이들의 개성을 존중할 줄 아는 유능한 스테이시가 선생으로 왔기 때문에 앤이, 길버트가 꿈을 이루고 다이애나가 부모의 꿈이 아닌 자기 꿈을 꾸게 되지 않았는가.
그런 선생님도 완벽하지 않다. 아니 그런 선생님일수록 눈에 띄니 학부모들에게 틈이 보일 수밖에. 당연히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쉽다. 혼자 살면서 바지를 입고 바이크를 타고 다니며 학생들에게 호기심을 일깨워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주고자 한 스테이시는 많은 학부모들의 공격의 대상이었다.
그녀라고 ‘해고’하려고까지 한 학부모들의 부정적 평가가 아무렇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녀는 정당하지 않은 공격에 의기소침해지지 않고 자기 길을 갔다. 그녀는 자기를 믿고 학생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믿었다.
학부모들에게 된통 걸려 위기를 맞은 스테이시를 살린 것은 스테이시로 인해 진정한 배움에 눈을 뜬 학생들이었다. 선생님으로 인해 살맛이 난 학생들이 선생님을 구한 것이다. 그 선순환을 ‘희망’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도 그 희망이 있기를.
조그만 틈, 혹은 실수에도 선생님을 흔들어 아이들에게서 선생님을 항한 존중과 존경을 빼앗아버리는 일은 스승을 빼앗아버리는 것이다. 존경하는 어른이 없는 아이는 똑똑할수록 안하무인이 된다. 선생님들이 소신으로 힘이 나고 가르치는 일이 소통하는 일인 행복한 학교가 되기를!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