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한 세계 평화’를 목표로 한다. 국가 간에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는 나쁜 에너지를 스포츠를 통해 정화시키는 무대다. 승리한 국가의 국기가 게양되고 국가가 연주되는 순간 선수와 국민들은 제 나라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느낀다. 올림픽이 갖는 ‘애국심 효과’는 숭고한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 정신은 체제나 이념 종교 인종의 대립으로 심각하게 손상되기도 했다.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의 대결로 1976년의 모스크바올림픽과 1980년의 LA올림픽이 반쪽으로 치러졌으며, 1972년의 뮌헨올림픽은 중동 테러집단의 이스라엘 선수단에 대한 테러로 피에 젖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도 그보다 더한 상처를 입었다. 북한의 서울올림픽 저지 공작에 따른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으로 100명이 넘는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됐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때는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으로 인해 아프리카 국가들이 불참키도 했다.
그 점에서 IOC 헌장의 정치적 엄정중립 조항은 매우 중요하고, IOC가 독도 세리머니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번 것은 과잉이다 싶다. 모기 잡으려고 칼을 빼든(見蚊拔劍) 격이다.
IOC가 독도 문제와 같은 한일 간의 긴 역사로 얽힌 외교문제에 깊은 이해를 갖기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자크 로게 IOC위원장이 ‘명백한 정치적 표현’이라며 “인류의 화합을 지향하는 IOC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이 사건을 인류 화합을 저해하는 정치문제로 부풀린 것은 유감이다.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에 근거해서 판단하더라도 박 선수가 팻말을 만들어 들은 것이 아니라 관중석에서 날아든 것을 집어 들었다는 점, 승리에 도취한 짧은 순간에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 폭력이 수반되지 않은 사건이라는 점, 영어가 아닌 한글로 된 팻말이어서 인지대상이 극히 제한됐다는 점, 재발의 소지가 없다는 점 등을 감안한다면 즉흥적이고 사소한 사건으로 충분히 관용의 대상이 된다고 하겠다.
승리한 선수들이 국기를 휘감거나 휘날리면서 경기장을 도는 것이나, 국가가 연주될 때 따라 부르는 수준의 애국심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사건의 배경에는 일본의 집요한 압력이 있고,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과 일왕의 사죄 발언으로 일본정부가 격앙돼 있는 시기상의 공교로움도 있다. 그에 따라 IOC의 과도한 정치적 판단이 우려되기도 한다. IOC가 일제 강점기인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운동복에서 일장기를 지워 보도한 한국의 한 신문을 수개월간 정간시킨 게 일본이었음을 알았으면 한다.
한남대 교수 임종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