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조이는 당국, 세제 개편 등 수요촉진책 없을 듯…부동산PF 위기 재발 우려도 높아
부동산PF 위기를 촉발했던 레고랜드 사태 1주년이 다가오면서 부실 사업장의 차환 위험도 다시 살펴야 할 때가 됐다. 정부는 9월 말 주택공급 대책을 내놓기로 했지만 수요촉진책은 배제할 방침이어서 충분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관측이 우세하다. 충분한 수요 기반 마련 없는 연명 수준의 금융지원으로는 부동산PF 부실 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부동산PF는 금융시장과도 밀접하다. 불안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하면 지난해와 같은 자금시장 경색이 재발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50년 주담대 등 축소…DSR 우회로 차단
금융위원회는 지난 9월 12일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사실상 제한하고 특례보금자리론 공급도 대폭 줄이기로 했다. 충분한 상환능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50년 만기 주담대를 받더라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계산할 때는 40년까지만 인정해주는 방식이다. 그만큼 매월 원리금 상환액이 커져 DSR 한도가 줄게 된다.
DSR 적용이 안 되는 특례보금자리론도 주택가격(6억 원 이상)과 소득제한(부부합산 1억 5000만 원) 기준이 높아 공급액의 40%를 차지했던 일반형 상품을 9월 26일까지만 판매한다. 금리 상승에 따른 한도 초과를 예방하기 위해 DSR을 계산할 때 가상의 가산금리를 적용해 사실상 한도를 줄이는 방식도 도입하기로 했다.
50년 만기 주담대와 특례보금자리론은 전세보증금 상환 특례대출과 함께 집값 반등을 이끈 금융부문 ‘3개의 화살’이다. 주택 관련 자금조달에 가장 큰 제약인 DSR 규제를 우회할 수 있어서다. 50년 만기 주담대는 불과 두 달 새 8조 원이 넘게 진행됐다. 일반형 특례보금자리론은 7개월 새 16조 원 넘게 공급됐다. 두 대출이 급증세와 함께 집값 반등세가 뚜렷해졌다.
하지만 국제 유가 상승으로 물가 상승세가 다시 가팔라지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연내 한 차례 기준금리를 더 올릴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기준금리가 높아지면 대출금리도 함께 뛰어 가계 빚 부담이 커지게 된다. 채권시장에서도 2월 초 3.11%까지 떨어졌던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 11일 3.865%로 오르며 3월 이후 6개월 만에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은행의 조달금리 기준인 5년 만기 은행채 기준도 6월 4%대로 올라선 데 이어 9월에는 4.235%까지 치솟았다.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금리(변동기준)도 9월 12일 기준 하단이 4%를 넘어섰다. 은행의 연체율은 계속 오르고 있고 코로나19 금융지원 혜택도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가계부채 위험에 대한 한은의 경고 목소리가 커진 이유다.
#레고랜드 사태 1년…부동산PF 괜찮을까
금융위는 최근 금융권 부동산PF 현황 자료를 공개하면서 2021년 말 0.37%, 2022년 말 1.19%, 올해 3월 2.01%로 가파르게 오르던 연체율이 6월 말에는 2.17%로 증가세가 둔화됐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증권사 연체율이 17%를 넘을 정도로 급증했고 저축은행 연체율도 크게 높아졌다. 증가세 둔화는 올 상반기 대출규제 완화와 금리안정 덕분일 수 있다. 하반기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부동산PF 부실 우려가 금융시장 전반으로 확산됐던 레고랜드 사태가 터진 지 곧 1년이다. 부동산PF가 브릿지론 단계일 때 자금조달 방식으로 활용하는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만기는 최대 1년 이내다. 지난 1년간 만기연장과 자금지원으로 연명했던 부동산PF들이 수요 위축의 악재를 뚫고 적정한 조건으로 다시 자금을 조달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특히 지난해 부실해진 부동산PF는 대부분 토지 매입과 인허가를 위해 2금융권에서 단기 고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는 브릿지론 단계다. 지난 4월 금융권은 부동산PF 금융지원을 위해 대주단 협약을 마련했다. 8월 말 현재 총 187개 사업장에 협약이 적용 중인데 이중 브릿지론이 무려 144개로 77%에 달한다.
사업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토지대금 상환과 건설비 확보를 위한 본PF로의 전환은 불가능해진다. 분양을 받는 이들에 대한 집단대출과 연계되는 본PF에는 주로 1금융권 대출이 필요한데 현재 은행들은 건전성 관리를 위해 본PF 참여를 극도로 꺼리고 있다. 은행이 나서지 않으면, 땅만 가진 채 브릿지론 이자만 내면서 마냥 버틸 수가 없다. 브릿지론이 본PF로 끝내 전환되지 못하면 땅을 팔아 빚잔치를 해야 한다. 개발이 좌초된 땅이 제때 제값에 팔리기는 쉽지 않다.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와 이를 보증한 시공사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3년 후 주택 ‘공급절벽’ 위기감
지난 7월 전국 주택착공 건수가 1만 채 아래로 떨어졌다. 2011년 해당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올해 들어 7월까지 착공된 주택은 10만 2299호로 지난해 같은 기간(22만 3082호)보다 54.1%나 급감했다. 올해 착공 물량은 3~4년 후에 공급된다. 3~4년 후 주택 공급이 부족해질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뜻이다. 공급이 줄면 집값은 다시 급등할 수 있다.
정부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9월 말 주택공급대책을 발표하기로 했다. 부동산PF가 주택을 완공할 수 있도록 돕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도 PF 사업장 정상화 지원펀드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방안이 담길 것이라고 예고했다. 자산관리공사가 만들기로 한 1조 원 규모의 부동산PF 지원펀드에 이어 정부 독려로 금융회사들이 ‘자발적’으로 또 다른 지원기구를 만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5대 은행이 1조 원을 내고, 2금융권도 별도의 지원기구를 만들 것이란 예측도 등장했다.
그런데 이번 대책에는 수요 촉진에 필요한 세제 개편 등은 담기지 않는다. 때마침 대출규제 강화로 주택수요는 다시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다. 수요기반 강화 방안 없이 공급만 늘리는 대책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시장 금리가 다시 오르고 있고 각종 비용 상승으로 공사원가 부담도 커졌는데 정부의 지원이 얼마나 충분한지에 대한 불안도 크다.
한편 시장에서는 매입임대형부동산투자회사(REITS), 이른바 민간리츠 활성화 등을 통해 주택 공급 물량을 소화를 도울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중산층 이하 개인들은 DSR 규제로 인해 주택 구입 여력이 크게 제한된 만큼 이젠 기관화 된 자금이 주택시장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는 논리다. 다만 민간리츠가 등장하려면 법인의 주택 투기를 막기 위해 취득세와 보유세를 중과하는 법 조항을 적용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현재의 세부담 수준으로는 민간리츠가 투자자를 모을 만큼의 수익성을 내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토교통부가 이번 대책에서 세금 부분은 건드리지 않기로 하면서 관련법 개정 시도가 이뤄지기는 어렵게 됐다. 지난 7월 발표된 정부의 세법개정안에도 담세능력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중과되었던 부동산 세제를 조세원칙에 맞게 정상화하겠다는 방침만 소개됐을 뿐 민간리츠 활성화 방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최열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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