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정부 투쟁 결집 효과 ‘출구전략’ 마련 분주…국민의힘 ‘단식쇼’ 비판 역풍 우려 속 용산 눈치보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8월 31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다. 이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민생파괴·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사죄 △일본 핵오염수 방류 반대 입장 천명 △전면적 국정쇄신과 개각 등을 요구사항으로 내걸었다.
이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는 단식 중에도 이어졌다.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김영남)는 이 대표를 제3자 뇌물 혐의로 소환 통보했고, 이 대표는 9월 9일과 12일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이 대표 건강상태는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단식 16일 차를 맞은 9월 15일 이 대표는 의료진으로부터 입원 권고를 받았다. 당대표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천준호 의원은 “이 대표의 전체적인 신체 기능이 심각하게 저하돼 있고, 특히 공복 혈당 수치가 매우 낮아 건강이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라며 “의료진이 이 대표의 입원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9월 16일 현재까지 이 대표가 단식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당에서는 지도부 차원에서 단식 중단을 위해 이 대표의 강제입원까지도 고려했지만, 이 대표가 반대해 무산됐다. 이 대표는 13일 단식 투쟁 장소를 국회 본청 앞 천막에서 본청 안 당대표실로 옮겼다.
야권과 시민사회·종교계 등 전방위적인 걱정과 만류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상희 김영주 안민석 우상호 윤호중 등 민주당 중진 의원들은 이 대표를 만나 건강을 우려하며 단식 중단을 권유했다.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지낸 박병석 의원은 “대표의 의지는 잘 알지만 특히 중진 의원들은 대표가 건강을 회복하고 당을 다시 정비해 나가는 게 효과적인 대응 방법이라고 의견을 모았다”며 “깊이 새겨 달라”고 당부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9월 14일 긴급의원총회를 열고 “전체의 뜻을 모아 이 대표의 단식 중단을 간곡히 요청했다”며 “이 모든 뜻을 민주당 의원들이 이어 받아 이번 정기국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폭정을 견제하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했다”고 밝혔다.
불교계 ‘조계종 윤석열 퇴진 시국법회 야단법석 준비위원회’ 대표단도 14일 이 대표를 찾아 “굶는 건 우리 스님들이 훨씬 더 잘하니, 이 대표 잘하는 일 해주면 좋겠다”며 “칼날 위에 서지 말고 칼날이 돼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우려의 뜻을 전했다.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노영민 전 의원이 9월 13일 이 대표를 만나 “단식이 길어지니 문 전 대통령이 정말 깊게 걱정하고 계신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가 실종돼 이제 통합보다는 국민 분열이 횡행하고 있고, 국익이나 민생보다 이념이 우선시되는 상황”이라며 “당대표가 엄중한 상황에 대처하려면 단식을 중단하고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는 말씀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각계각층의 중단 요청에 이 대표는 별다른 반응 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다.
정치권에선 이 대표가 이번 단식 투쟁으로 민주당 내부 결속을 다지고 대정부 투쟁 수위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봤다는 평을 내놓는다. 야권 한 관계자는 “이 대표의 단식은 윤석열 정부의 전횡에 대항하는 의미도 있지만, 민주당을 하나로 결집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며 “당대표가 목숨을 건 단식에 나서자, 지난 대선 이후 관계가 소원했던 이낙연 전 대표·설훈 의원 등까지 단식장에 찾아오지 않았느냐. 총선을 앞두고 단일대오를 만드는 데 동력이 됐다”고 했다.
한국갤럽이 8월 29일부터 31일까지 사흘간 실시한 자체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정당 지지도는 27%로, 윤석열 정부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대표 단식 시작 이후인 9월 5일부터 7일까지 실시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 정당 지지도가 전주 대비 7%포인트(p) 올라 34%로, 국민의힘과 동률을 보였다(여론조사 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물론 당내에서 다른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 ‘비명계’인 이상민 조응천 의원은 이 대표 단식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상민 의원은 9월 13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이 대표를 영웅시하는 시각도 있지만 그렇게 영웅시할 일은 아니다”며 “이 대표가 그런 선택을 한 것도 나름 이해가 되고 공감 가는 측면이 있지만 이로 인해 정국이 더 꼬이고 결국 국민만 골병이 드는 상황은 피해야 하지 않는가”라고 밝혔다.
‘총선에서 이재명 체제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대표가 지금 단식 중에 있는데 비대위 체제를 운운하는 건 분위기에 맞지 않다”면서도 “그 입장은 변함이 없다. 이 대표가 책임지라는 차원이 아니라, 여러 사법적 의혹에 휘말려 있는 것을 차단시키기 위해선 이 대표의 대표직 사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조응천 의원은 9월 12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 대표 단식장 방문에 대해 “원래 자리에 누우면 찾아가려 했는데, 거기(단식 현장) 명단을 체크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렇다면 나는 가기 힘들겠다 생각했다”며 “마치 명단체크 때문에 쫄려서(두려워서) 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다른 방송에서는 ‘이 대표 단식으로 당내 화합이 이뤄졌다’는 분석에 대해 “많은 분들이 침묵하고 있는 것”이라며 “참고 있다. 못하는 것이 아니고 안 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조 의원은 9월 15일 이 대표를 찾았다. 침상에 누운 이 대표 손을 잡고 2분가량 대화한 뒤 자리를 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비명계를 중심으로 ‘사법리스크’를 앞세워 이재명 대표 체제를 흔들어 비대위로 총선을 치르려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 대표가 단식 중에도 검찰에 소환조사를 받으며 정치검찰의 무도함을 알렸다. 당내에서도 검찰이 과하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비대위를 띄우자고 공론화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민주당에선 정부여당의 태도에 대해 한 목소리로 꼬집고 있다. 여권이 역풍을 맞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한다. 민주당 원로 격인 한 전직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과거 정치는 인간적 도의가 있었다. 여야가 서로 대립하고 죽일 것처럼 싸우다가도 야당 대표가 단식을 하면 대통령실 고위 인사나 여당 지도부가 달려와 위로하고 단식 중단 설득을 했다. 이러한 타협을 통해 서로 명분을 만들고 국민통합을 보였다. 그런데 지금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어떠냐. ‘명분 없는 단식’ ‘방탄단식’이라며 조롱하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이렇진 않았다. 정치를 떠나 인간적 도리가 없는 것이다.”
용산 대통령실은 9월 12일 ‘이 대표 단식이 13일째인데 대통령실에서 중단 요청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정치 현안과 관련해서는 가급적 대통령실에서 언급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역시 이 대표가 단식 시작할 때부터 ‘사법회피’ ‘내분 차단’ ‘당권 사수’ 등을 위한 ‘단식쇼’라고 비판했다.
심지어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은 9월 7일 자신의 SNS에 “내일 오전 국민의힘이 국회에서 우리 수산물 판촉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라며 “장소는 이 대표 단식 텐트 100m 옆이다. 이 대표는 들러서 우리 고등어와 전복을 드시기 바란다. 민망해할 것도 없다. 이것이 명분 없는 단식을 끝내는 방법”이라고 단식을 폄하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대표의 단식이 장기화되면서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 대표에 대한 ‘동정 여론’이 확산되며 정치적으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국민의힘 지도부에서도 단식 중단 요청이 나왔다. 김기현 대표는 9월 1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표 건강이 악화한다고 한다. 어제 이 대표를 진단한 의료진도 단식을 중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한 바 있다고 전해진다”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건강을 해치는 단식을 중단하실 것을 정중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국민의힘은 지도부가 이 대표를 직접 찾아가 단식 중단을 요청할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국민의힘에도 오랫동안 정치를 한 중진들이 많다. 단식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아는 인물들이 많다는 뜻”이라며 “여당 내부에서도 이 대표의 단식 농성장에 찾아가 위로하고 설득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왜 가지 않겠느냐. 용산 대통령실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9월 13일 이뤄진 개각이 이 대표의 퇴로를 오히려 막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국방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 신임 장관 후보로 각각 신원식 의원, 유인촌 문화체육특보, 김행 전 비대위원을 지명했다. 민주당에서는 새만금 잼버리 사태, 해병대 수사 외압 의혹 등으로 문제가 된 장관들을 ‘꼬리 자르기’하는 개각 아니냐고 반문한다.
이재명 대표 역시 윤 대통령의 개각에 대해 “국민과 싸우겠다는 상식 밖의 오기 인사”라며 “군의 정치적 중립을 해치고 검찰처럼 장악하겠다는 의도와 문화예술체육계를 제2의 국정농단 사태로 몰고 갈 시도는 절대 좌시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정부여당이 설득과 타협에 나서지 않으면서 결국 이 대표가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가야 단식이 끝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우세하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단식 중단의 방법은 두 가지다. 정부가 대화에 나서거나, 단식을 하다 쓰러지거나다. 윤석열 정부가 이 대표와 설득에 나설 가능성은 현재로선 전혀 없다. 결국 쓰러져야 끝나는 문제다. 이 대표의 건강이 가장 걱정”이라고 말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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