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자본주의에서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은 경영상 위험을 부담하는 잔여 청구권자(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주주는 확정 청구권자(채권자) 몫이 돌아간 후 잔여 이익을 가지므로, 주주이익 극대화를 통해 기업의 모든 이해관계자를 효율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더 큰 잔여 이익을 위해 노동자 등 채권자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주주들 사이에 부당한 방식으로 부의 이전이 일어나기도 한다. 나아가 제도적·경제적으로 기업의 이해관계자로 포섭되지 못하는 주체나 대상(기후위기, 환경 등)은 주주자본주의 관점에서는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에 따라 대안적인 접근으로 이른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부상하기도 했다. 최근 ‘지속가능성’이나 ‘ESG’ 관련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특히 기후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이슈로 부상하면서 이러한 논의를 촉진시켰다.
미국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 모임 격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는 2019년 “기업은 주주의 이익을 위해서만 봉사하지 않는다.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고, 직원에게 투자하고, 공급자를 공정하게 대우하며, 공동체를 지원해야 한다”는 ‘기업 목적에 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금융사에서도 투자(자본 배분)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유인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최고경영자(CEO) 래리핑크가 2020년 연례 서한에서 지속가능성을 최우선 투자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힌 것도 상징적인 일로 꼽힌다.
물론 이러한 관점의 변화나 기업의 자발적 노력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국가가 적극적인 통화·재정 정책을 펼쳤고, 개별 기업도 경제적 성과를 개선시키기는 데 집중해왔다. 그 결과 세계 경제는 다양한 이슈로 인해 여전히 불안정하지만, 적어도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나 침체는 극복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반면, 논의 자체는 활발하지만 기후변화를 비롯해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한 실질적인 노력이나 변화는 여전히 미진하다. 단적으로 코로나19가 수그러든 2021년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다수의 글로벌기업 배출량도 줄기는커녕 외려 증가했다.
실효성과 별개로 여러 국가와 주요 글로벌 기업에서 전통적인 주주자본주의에 입각한 이윤 극대화보다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부합하는 지속가능한 성장과 ESG 강화에 더 큰 주안점을 두려는 움직임이 겉으로나마 활발하다. 이와 관련해서 핵심은 ESG 관련 정보공개다.
미국과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비재무적, 지속가능성 정보공개를 위한 기준 제정은 사실상 거의 완료됐다. 유럽연합은 지속가능성 공시에 관한 제도 개선도 일찌감치 준비해왔다. 미국도 SEC(증권거래위원회)가 IFRS(국제회계기준)의 제정과 별개로, 기후공시 강화를 위한 연방 행정규칙 개정안을 곧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제도개선과 별개로, 많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또는 적극적인 주주 관여 활동의 영향을 받아서 ESG 관련 정보를 작성·공개하고, 주주 등 이해관계자로부터 의견 수렴을 시도하고 있다. ‘Say on Climate’가 대표적인 예다. 기업이 기후변화 대응, 전환 계획 등을 작성·공개한 후, 이를 주주총회에서 표결로써 의견을 수렴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총에 의한 보수 심의를 의미하는 ‘Say on Pay’와 유사한 절차로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최근 ‘Say on Climate’를 도입하는 상법 개정안이 하원에서 가결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주요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을 촉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도입을 검토해볼 만하다.
그런데 보도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민관 합동 회의체인 ‘ESG 금융 추진단’이 최근 금융위원장에게 준비 부족 등을 이유로 ESG 공시를 1년 미루자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이미 ESG 공시 등에 관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형성된 상태에서, 의무화 시점을 1년 더 미루는 것은 국내 기업의 경쟁력 확보 측면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준비가 늦었다면, 늦은 만큼 서둘러야 한다.
노종화는 회계사이자 변호사다. 현재(2017년 5월~)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3월부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상근)으로도 재직 중이다.
노종화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