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경찰 출신 매치업에 윤석열-문재인 대리전 성격…수도권 바로미터 평가 속 투표율 관건으로
지금까지 이런 기초단체장 선거는 없었다. 2023년 하반기 보궐선거는 단 한 지역구에서 펼쳐진다. 서울시 강서구청장을 선출하는 선거다. 보궐선거가 열리게 된 건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이 직을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5월 대법원은 김 전 구청장 공무상비밀누설 혐의와 관련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라는 원심을 확정했다. 10월 11일 새로운 강서구청장을 뽑는 보궐선거가 열리게 됐다.
6월부터 여의도 정치권에선 ‘김태우 사면설’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광복절 특사로 김 전 구청장을 사면한 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자해지에 나설 것이란 시나리오가 제기됐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여의도 정치권엔 워낙 각종 소문이 돈다”면서 “김 전 구청장이 직을 상실하면서 열리게 될 선거에 김 전 구청장이 다시 나온다는 것은 판타지에 가까운 이야기가 아닐까”라면서 의구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가정에 가정을 덧붙인 ‘설’로만 여겨지던 김 전 구청장 재출마 가능성은 점점 공식화됐다. 8월 14일 대통령실은 광복절 특별사면 명단에 김 전 구청장을 포함했다. 김 전 구청장은 검찰 수사관이던 문재인 정부 당시 조국 전 민정수석을 둘러싼 특별감찰반 감찰 무마 의혹 등 내용을 폭로한 바 있다.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를 적용받은 배경을 고려해, 윤석열 정부가 김 전 구청장을 ‘공익 신고자’로 판단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특별사면으로 김 전 구청장은 피선거권을 쾌속 회복했다. 피선거권을 회복한 김 전 구청장이 어떤 선거에 뛰어들지 여부가 관심을 모았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출마와 내년 총선 출마 등 시나리오가 거론됐다. 여권 일각에선 김 전 구청장이 전국구급 인지도를 축적한 만큼, 귀책사유가 있는 보궐선거 대신 총선에 출마하는 게 더 합리적인 수순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8월 21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해 “이분(김 전 구청장)은 보궐선거 원인 제공자로 다시 (보궐선거에) 나간다는 건 정치 도의에 맞지 않다”면서 “이번엔 좀 쉬고 총선에 투입 쪽으로 검토하는 게 더 맞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윤 의원은 “김 전 구청장을 공천할 경우 야당이 결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윤계로 분류되는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좀 더 강한 어조로 ‘김태우 공천 불가론’을 내세웠다. 천 위원장은 8월 1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김 전 구청장을 보궐선거에 다시) 공천하면 지도부가 망할 것”이라면서 “우리가 항상 법치를 강조하는데 과연 (특별사면이) 우리 보수정당의 태도 내지는 윤석열 정부 태도와 부합하느냐”고 지적했다.
그러나 여의도와 용산에선 ‘윤심’이 김 전 구청장으로 향해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 여권 관계자는 “대법원에서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유죄 판결을 확정 받았던 김 전 구청장이 강서구민들에게 ‘비밀누설자’인지 ‘공익신고자’인지 여부를 판단받을 상황이 올 수 있다”면서 “더 많은 국민 혹은 시민이 김 전 구청장을 공익신고자로 판단한다면, 전 정부와의 프레임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쟁취할 수 있는 포인트”라고 했다.
김 전 구청장은 특별사면 이후 일찌감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출마에 대한 강력한 의사를 천명했다. 야권 공세가 만만치 않았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김 전 구청장이 출마 의사를 밝힌 뒤 “이번 사면복권을 대통령 출마 재가라고 착각하는 과대망상에 빠진 것 아니냐”고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김 전 구청장 폭로 대상자였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8월 14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국민의힘은 그를 공익신고자라 부르며 옹호한다”면서 “윤석열 정권이 법치를 사유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 전 장관은 “윤석열 정권은 자기편에 불리한 판결은 ‘정치판결’, ‘좌파판결’이라 비난하고, 법원이 아니라고 해도 김 전 구청장을 공익신고자라고 우긴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김태우 저격수’를 일찌감치 선정해 전략공천을 단행했다. 당 차원에서 전략공천에 나서자 기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출마 의지를 내비치던 야권 주자들은 단일대오를 형성해 총력전 태세에 돌입했다. 민주당이 꺼낸 카드는 진교훈 전 경찰청 차장이었다.
진 전 차장은 경찰로서 엘리트 코스를 거친 인물이다. 경찰대(5기)를 졸업한 뒤 정읍경찰서장, 경찰청 기획조정과장, 서울 양천경찰서장, 경찰청 새경찰추진단장 등 이력을 가졌다. 문재인 정부에서 진 전 차장은 본인의 날개를 완연하게 펼쳤다. 2019년 7월 치안감으로 승진한 뒤 경찰청 본청 국장직 가운데 가장 요직으로 꼽히는 정보국장으로 취임했다. 2020년 8월 전북지방경찰청장으로 발령됐다가 2021년 6월 치안정감으로 승진해 경찰청 차장으로 부임했다.
2022년 대선 이후 정권 교체 시기 진 전 차장은 윤석열 정부 초대 경찰청장 하마평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2022년 5월 인사에서 차장직에서 교체됐고, 퇴임했다. 사실상 경찰청장 빼고 다해본 경찰 엘리트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9월 4일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 부위원장 이해식 의원은 “전략공천을 요구할 만큼 진교훈 후보 확장성과 탁월한 도덕성이 확인됐다”면서 공천 사유를 밝혔다. ‘김태우 전 구청장을 의식한 공천이냐’는 질문에 이 의원은 “당연하다”면서 “도덕성에서 압도할 수 있는 후보를 내야 한다는 방침이 있었고, 진교훈이 그에 적합한 후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보궐선거 진용을 갖춘 뒤 13일이 지난 9월 17일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보 경선 결과를 발표했다. 국민의힘 선택은 김태우 전 구청장이었다. 이미 정치권 내부에선 ‘윤석열 정부가 김 전 구청장을 공익신고자로 보고 있는 이상, 공천을 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 갖춰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김 전 구청장이 다시 강서구청장실을 향한 레이스에 돌입했다.
김 전 구청장은 강서구청장 후보로 선출된 뒤 “지난 16년 동안 정체돼 있던 여러 가지 구도심 불편한 점들을 모두 개선해 우리 강서구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미리 진용을 갖추고 있던 진교훈 민주당 후보 캠프는 논평을 통해 김 전 구청장을 비판했다. 진교훈 후보 캠프는 “공익제보자란 가면이 대법원 판결에 의해 벗겨졌는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특별사면을 하고 국민의힘은 다시 (김 전 구청장을) 공천하는 해괴한 작태를 벌였다”면서 “김 후보 선출은 윤석열 정권 몰락의 신호탄”이라고 했다.
9월 17일 완성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대진표는 추석 밥상 최대 화두 중 하나로 거론될 준비를 마쳤다. 김 전 구청장 대법원 판결에 대한 정치권 시각차이, 귀책사유가 있는 보궐선거에 다시 나선 김 전 구청장, 민주당이 전략적으로 공천한 진교훈 후보에 대한 평가 등 숱한 이야깃거리들이 추석 밥상에서 거론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기초지자체장 선거가 마치 전국구 선거급 영향력을 지닌 양상이다.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가 함축하는 메시지 역시 상당하다는 평가다. 강서구는 서울시 기초지자체 중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지역구다. 지난 총선에선 3개 지역구를 모두 민주당이 휩쓴 야권 강세 지역이기도 하다. 보궐선거 결과가 6개월 남은 총선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 민심 바로미터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여기다 검찰 수사관 출신과 경찰 고위 간부 출신 매치업에 ‘윤석열 vs 문재인’ 대리전을 연상케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변수는 투표율이다. 휴일이 아닌 평일에 진행되는 보궐선거 특성상 투표율이 승부를 가를 중요한 요소가 될 전망이다. 한 강서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전국적인 관심이 쏠린 보궐선거인 만큼, 다른 보궐선거보다는 높고 지방선거보다는 낮은 범위에서 투표율이 결정될 것으로 본다”고 바라봤다.
이 관계자는 “다른 선거처럼 중도층이 얼마만큼 투표장으로 향할지, 중도층이 어떤 후보에게 힘을 실어줄지가 중요하다”면서 “상대적으로 중도층보다 특정 정당 지지층이 적극 투표층인 것을 감안할 때 지역 내 지지층 결집을 어떤 정당이 더 잘해내느냐가 어느때보다 중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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