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권은 검찰로 향하는 모양새다. 이 대표에 유리하도록 진행된 허위 인터뷰 의혹 등이 과거부터 반복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다만 10년여 전부터 지역사회의 뜨거운 감자였던 대장동의 비리 의혹 수사 상황들을 되짚어보면, 실체적 규명이 쉽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도 가능하다. 대장동의 처음과 현재를 살펴보면 기시감을 일으키는 장면들이 적지 않아서다.
#2009년, 김만배 없던 시절
지난 대선부터 정국의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대장동은 실은 2005년 첫 개발 추진 때부터 논란이 끊이질 않아 수사도 반복돼 왔다. 공영개발에서 민간참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정치인들이 금전수수 등 비리에 연루돼 시끄러웠다. 2012∼2014년에는 경기지방경찰청과 수원지방검찰청이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그 시기 검·경의 수사기록을 종합하면 남욱(천화동인4호 소유주), 정영학(천화동인5호 소유주), 조우형(천화동인6호 소유주)은 2009년 대장동에 처음 발을 들였다. 위례신도시 개발 의혹의 핵심으로 꼽히는 부동산 개발업자 정재창 씨도 함께였다. 이때만 해도 김만배(천화동인1∼3호 소유주)는 없었고 이강길 전 씨세븐 대표가 구심점이었다.
당시 남욱 등은 대장동 주민들에 민간 개발을 설득하고자 지역 마을회관에 사무실을 차려 놓고 상주했다. 매일 밤 이곳에서 포커를 치며 밤을 새는 날도 잦았다고 한다. 이들 외에도 삼성 출신 ㄱ 씨와 감정평가사 ㅁ 씨, 한국토지주택공사(LH) 출신 ㅇ 씨 등도 '자문단'이라는 조직명 아래 함께 활동했다.
대장동 일당 대부분은 고위층과의 친분 등을 내세워 대장동 사업에 참여했다. 이강길 대표와 처음부터 사업을 함께한 ㅁ 씨가 정영학을 도시회계전문가로 소개하며 먼저 끌어 왔고, 정영학이 남욱을 데려 왔다. 남욱은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로비에 자신감을 보였으며 같이 온 ㅇ 씨는 별명이 'LH 황태자'였다.
실제 이들은 정치권에 전방위 로비를 시도했다. 결국 ㅁ 씨는 당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의원의 동생에게 5000만 원을 건넨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강길 대표도 뇌물 등의 혐의로 징역 3년, 삼성 출신 ㄱ 씨는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에 처해졌다. 조우형의 경우 부산저축은행 대출을 불법 알선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박영수 전 특검 등을 변호인으로 선임한 남욱은 무죄, 정영학은 불기소 처분됐다. 이 사건 전후로 대장동 일당의 구성도 개편됐다. 천화동인7호 대표인 배 아무개 씨가 2012년쯤 합류했고, 이때 김만배를 남욱과 정영학 등에 소개했다고 전해진다. 김만배는 배 씨와 같은 언론사에서 일했던 선배로 이후 대장동에서도 맏형으로서 입지를 넓혀 갔다.
#거짓 진술과 허위 보도
사실상 '대장동 2기'로 꾸려진 '김만배팀'은 적극적인 로비를 이어갔다. 김만배가 검찰 등 법조계 인사와의 두터운 친분을 앞세워 온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 밖에 남욱 등도 자신이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로비를 시도했다고 주변에 자부해 왔다.
다만 당시 혐의가 입증돼 처벌된 정치인은 한 명도 없었다. 수사기록을 보면 일당이 로비 대상으로 꼽은 정치인과 직접 대면한 적이 없어 문제였다. 전부 지인 혹은 보좌관 등 '전달책'에 금품 혹은 편의를 제공하고 대장동 사업 민간참여를 설득했다고 진술했다. 검·경은 이 뇌물이 정치권 인사에 정말 흘러들어갔는지를 입증하지 못했다.
눈길을 끄는 지점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관심에 밀려 있던 천화동인6호 소유주 조우형과 7호 배 씨의 활약상이다. 조우형은 대장동 일당에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 사건에도 연루됐다는 증언이 있었다. 삼성 출신 ㄱ 씨가 조우형의 사무실에서 돈을 받아 최 전 의장에 전달했다는 의혹이다.
그러나 당시 핵심 로비대상으로 꼽힌 최 전 의장은 처벌을 면했다. 한 인사가 "이틀 뒤 돈을 돌려받았다"고 진술을 바꿔서다. 현재 검찰은 이 진술이 거짓인지 다시 살펴보는 중으로 알려졌다. 최 전 의장은 2022년 1월 구속되며 '금품을 수수했는지' 등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죄송하다"고 짧게 답한 바 있다.
이뿐 아니라 조우형은 이강길 대표가 운영한 일부 법인의 경영권을 인수받고 대표직만 ㄱ 씨에 넘기는 등 역할이 결코 작지 않았다. ㄱ 씨가 무리한 방식으로 경영을 이어가다 부산저축은행 사태 등 대출 문제가 불거지자 회사가 곤란을 겪었고, 이 때문에 사업 전반의 주도권이 남욱에 넘어갔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배 씨의 경우 기자 시절 의도적인 오보를 유도했다는 의혹이 있다. 2014년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후보가 재선에 도전한 지방선거 하루 전날, 같은 언론사 동료에 "새누리당 신영수 성남시장 후보가 이재명 후보 관련 불법 음성 파일을 유포하다 적발돼 송치됐다"는 거짓 제보를 해 보도까지 이어지도록 했다는 것이다.
#기시감
현재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는 김만배도 해당 보도가 이뤄지게 된 일련의 과정을 일찍이 인지했었다고 보고 있다. 20대 대선 직전 김만배가 신학림 뉴스타파 전문위원에 "윤석열 검사가 부산저축은행 수사에서 조우형을 커피만 타주고 돌려보냈다"는 등 허위로 의심되는 내용을 전하고 기사화된 경위와 결이 비슷해 주목하고 있다.
최윤길 전 의장 사례처럼 진술 등이 모호하거나 바뀌는 상황 역시 되풀이되고 있다. 천화동인1호의 실소유주가 김만배가 아닌 제3의 인물일 수 있다는 논란이 대표 사례다. 남욱의 경우 2021년 언론 인터뷰에서 "이재명은 아니다"라고 했으나, 2022년 재판에서는 "김만배한테 이재명이라고 들었다"고 말을 바꿔 혼선을 일으켰다.
진술의 신빙성 논란도 쳇바퀴이긴 마찬가지다. 남욱은 올 6월 재판에서 "원래 유동규가 성남도개공 사장, 화천대유 회장을 겸직했다고 검찰에 밝혔으나 사실과 다르다"며 "대선 이전에 거짓을 말했다"고 증언했다. 유동규 전 본부장은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과의 잦은 만남 여부를 놓고 아직도 논쟁을 벌이고 있다.
다시 10년 전 대장동 수사로 되돌아가보면 검·경은 정치권 로비 의혹을 파헤치면서도 민간 사업자와 일부 전달책 피의자만 벌했을 뿐, 여러 진술에서 등장한 정치인까지는 타고 올라가지 못했다. 현재도 '50억 클럽' 의혹을 받는 곽상도 전 의원은 1심 무죄를 받은 상태다.
이재명 대표를 향해서도 급소는 겨냥 못하고 있다. 검찰은 9월 18일 백현동·대북송금 의혹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기 7개월 전 대장동 사건으로도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적용한 혐의는 뇌물이 아닌 배임이었다. 로비 의혹으로는 김용·정진상 등 측근들만 법정에 선 모습이 옛날과 같다.
한편 검찰은 9월 20일 고검 검사급 검사 631명, 일반 검사 36명 등 667명의 신규 보임·전보 인사를 단행했다. 이재명 대표와 연관된 백현동 개발특혜·대북송금 의혹과 김만배 허위 인터뷰 사건 등을 맡는 서울중앙지검 고형곤 4차장 검사가 유임됐다. 지휘의 연속성을 고려한 인사로 검찰의 강한 수사 의지가 반영됐다는 관측이 크다.
1000만 원 투자해 120억 배당…베일 속 '천화동인7호' 실체는
대장동 의혹은 화천대유 등 민간업자들이 적은 돈을 투자해 과도한 이익을 거머쥐었다는 게 핵심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이 같은 사업 구조가 짜였다는 점에서 처음 문제가 불거졌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된 대선 직전 김만배의 허위 인터뷰 등은 이 대표에 유리하도록 전개돼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민간 업자들의 투자 대비 배당이익을 보면 김만배가 대표인 천화동인 1∼3호가 1억 2209만 원을 투자해 약 1410억 원, 남욱의 4호는 8721만 원으로 1007억 원, 정영학의 5호는 5581만 원으로 644억 원, 조우형의 6호는 2442만 원으로 282억 원, 전직 기자 배 씨의 7호는 1046만 원을 투자해 121억 원가량을 받았다.
현재 가장 베일 속에 감춰진 곳은 천화동인7호 배 씨다. 대장동 일당에 합류한 구체적 계기는 물론 어떤 역할로 배당을 수령했는지 등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배당금은 부산 기장군의 토지와 빌딩을 구입하는 데에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약 121억 원을 들여 매매했으며 건물에는 스타벅스가 입점해 있다.
대장동 이슈가 공론화되자 천화동인7호 이름 지우기에 나서기도 했다. 2022년 3월 사명을 '제이에스이레'로 변경했다. 검찰은 그해 11월 법원에 배 씨 재산에 대한 추징보전청구를 신청해 현재까지 총 120억 원대의 자산을 동결했다. 지난 8월에는 그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배 씨를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그 역시 로비를 목적으로 대장동팀에 합류했다고 설명했다. 부친이 총경 출신 고위 경찰관인데 본인 스스로도 넓은 정치권 인맥을 드러냈다고 한다. 2022년까지는 기장군 스타벅스에 자주 방문했다는 목격담이 잇따랐으나 추징보전 등 조치가 이뤄진 뒤로는 모습을 감추고 있다.
현재 김만배, 남욱, 정영학은 물론 박영수 전 특검과 최윤길 전 의장 및 곽상도 전 의원 등이 일제히 구속 혹은 기소된 상황. 천화동인 6·7호의 처리방향이 정해져야 대장동 본류 수사도 막바지로 정의할 수 있다는 시각이 많다. 검찰은 배 씨를 범죄수익은닉규제법위반 혐의로 조사하는 중이며 향후 구속영장 청구도 검토하고 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