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장을 보고 오면 무거운 짐을 엘리베이터까지 옮겨주기도 하시고 눈이 오면 진입도로를 말끔히 치워 주시는 건 물론, 주차장에서 도로로 진입할 때마다 경광봉을 들고 안전하게 진출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아주 고마운 분들이다.
공동복도나 주차장 그리고 건물내외를 늘 말끔히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도 가끔 마주칠 때마다 상냥한 인사와 기분 좋은 미소를 보내주시며 인사를 하신다. 그분들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이지만 그저 추석이나 설날에 소소하지만 적은 정성을 담아 떡값을 드리곤 했다.
한 달 전쯤 주민모임을 다녀온 아내로부터 경비 아저씨 중 한 분이 추석명절이 지나면 일을 그만두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연세도 많으시고(70대 초중반) 건강도 허락하지 않아 아무래도 쉬셔야 한다는 결정을 하신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반상회에서 주민들이 오랫동안 고생하신 아저씨를 위해서 소정의 위로금과 선물을 드리기로 했다고 말해줬다.
난 그 말을 듣고 이번 추석에 그 경비원 아저씨에게 떡값을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주민들이 위로금과 선물을 드린다고 하니 이번엔 그만두시는 그분에겐 매번 드리던 떡값을 생략하고 새로 후임으로 오시는 분에게 드리는 게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었다.
며칠 전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대리운전을 통해 귀가를 하였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대리기사님에게 차키를 건네받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는데 그만두시기로 하셨다는 경비원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다가와서는 “그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여러모로 도와주시고 잘 대해주셔서 제가 참 행복하게 지내다 갑니다”라면서 인사를 하셨다.
나도 아저씨에게 “아닙니다, 저희가 더 감사드립니다. 항상 도와주시고 밝게 인사해주셔서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디 건강이 더 좋아지셔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인사를 드렸다. 아저씨는 조그만 비닐봉투를 나에게 건네면서 “이거 제가 동네 텃밭에서 조그맣게 일군 호박잎하고 고추를 조금 담았습니다. 부디 맛나게 드십시오”라면서 작은 선물을 주셨다.
아저씨와 뜨거운 악수를 나누고 경비실로 가시는 아저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경제적으로야 나보다 더 형편이 어려운 아저씨는 아무런 계산 없이 당신의 마음을 그간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에게 전하는데 난 고작 그만두시는 분이니 떡값을 드릴 필요가 있을까를 고민했다는 것이 너무나 창피하고 송구하고 부끄러워졌다.
아내에게 아저씨에게 받은 호박잎과 고추를 전하면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아내가 반상회의 결정과 무관하게 인삼선물세트와 떡값을 준비했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런 결정을 한 아내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고마웠지만 난 점점 더 작아지고 이젠 더 이상 작아질 수도 없는 먼지보다 더 작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 민족의 대명절 추석이 시작된다. 소소하지만 정성과 사랑과 감사함이 담긴 선물이 오고가는 시기다. 나는 선물을 하면서 이 선물이 나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도움이 될지 따져보는 것은 아닐까라는 고민을 해보기로 했다.
‘그만두시는 경비원 아저씨는 이제 앞으로 볼일도 없는 나에게 당신의 뜨거운 마음을 전하는데 나는 왜 내가 드리는 선물이 나에게 도움이 될까를 먼저 고민했을까’ 하는 반성의 마음과 창피한 마음이 떠나질 않는다.
이번 추석을 계기로 난 이제 내 마음을 그저 계산 없이, 감사한 대로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나보다 조금 더 어렵고, 나보다 조금 더 힘들고, 나보다 조금 더 필요한 분들에게 더 많이 더 따뜻하게 전달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저씨. 더 건강하시고 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