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표 원내대표 선출로 친명체제 공고, 비명계 탈당·창당 설득력 낮아…대여·대검 반격 개시
검찰 수사 동력이 약해졌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이 ‘표적수사’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점도 이 대표에겐 호재다. 다만, 이 대표로선 당의 분란을 수습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비명계 찍어내기’가 이뤄질 경우 민주당은 분당 수순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지난 9월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더불어민주당 친명(친이재명)계 발걸음이 바빠졌다.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당일 저녁 의원총회를 열어 격론 끝에 박광온 원내대표 등 원내 지도부가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당 최고위원회는 심야 회의에서 후임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선관위 설치 및 구성의 건’을 곧장 당무위원회에 부의했고, 당무위는 다음날 이를 의결했다. 이에 따라 후임 원내대표는 22일부터 24일까지 후보자 등록접수를 받고, 25일 하루 선거운동을 거쳐, 26일 정견발표 후 바로 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후임 원내대표는 가장 빠른 시일 안에, 가급적 추석 연휴 전에 선출하겠다”며 “지도부 공백은 최단 시간에 최소화하도록 이 대표와 의논해 빨리 결정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신임 원내대표 선출을 서두른 것을 두고 정가에선 이 대표의 구속영장 발부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민주당 당헌·당규상 당대표 궐위 시 원내대표가 대표 권한대행을 맡기 때문이다.
야권 한 관계자는 “친명계에서는 이 대표가 구속되더라도 당대표 사퇴는 절대 없다 강조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옥중 결재’까지도 언급하고 있다”면서도 “현실적으로 법원서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당대표직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당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친명계가 원내대표를 맡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민주당 내 이탈표가 30여 표가 나오며 친명계와 비명(비이재명)계 갈등이 노골화된 상황에서 통합보다는 선명한 계파성이 필요하다는 판단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내대표 선거 후보자 등록접수 결과 김민식 정책위의장과 우원식 홍익표 남인순 의원이 손을 들고 나섰다. ‘친명 중진’ 간의 대결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다 선거 당일 오전 우원식 의원이 후보 사퇴를 하면서 3파전으로 치러지게 됐다.
선거 결과 홍익표 의원이 신임 원내 사령탑으로 선출됐다. 홍익표 신임 원내대표는 수락연설을 통해 “어려울 때 힘든 자리를 맡았다. 이제는 하나의 원팀이다. 이재명 대표와 함께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내겠다”며 “오늘 이재명 대표가 굉장히 어려운 단식으로 건강도 좋지 않은 상황에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같은 시각에 원내대표 선거를 했다는 데 마음이 편치 않다. 당대표의 기각을 기원하면서 이후의 사태에 대해서도 한 분 한 분과 같이 상의하면서 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홍익표 원내대표 선출에는 이 대표 측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민주당 한 관계자는 “사실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도 진짜 친명계라고 할 의원들은 안 나왔다. 홍익표 의원은 대선 경선 땐 이낙연 캠프 정책총괄본부장을 지냈지만, 대선 과정에서 이 대표를 적극 지지했다. 후보 사퇴한 우 의원도 홍 원내대표를 지지했다. 이 대표가 구속돼도 자기 정치를 안 할 사람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로써 민주당 지도부는 친명계로 채워지게 됐다. 비명계로 분류되는 지도부는 고민정 최고위원만 남은 상황이다. 이에 앞서 지난 9월 23일 ‘비명계’인 송갑석 최고위원이 지명직 최고위원에서 사퇴했다. 송 전 최고위원은 지난 3월 민주당 당직 개편 당시 탕평 인사로 지명직 최고위원에 임명됐다.
당 그립감을 높인 친명계는 비명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당 최고위원회는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투표를 ‘해당 행위’라고 규정했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9월 21일 저녁 의총을 연 뒤 “민주당은 최고위와 의총, 중앙위원 규탄대회에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는 부당한 정치탄압으로 규정했다”며 “그러하기에 오늘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대한 본회의 가결 투표는 용납할 수 없는 명백한 해당 행위”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청원시스템인 국민응답센터 홈페이지에는 ‘공개적으로 가결을 표명한 해당 행위 5인(이상민·김종민·이원욱·설훈·조응천)에 대한 징계를 청원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당은 청원글 게시 후 30일 동안 권리당원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청원에 대해 답변을 내놔야 하는데, 9월 24일 올라온 이후 3일 만에 5만 명을 돌파했다.
비명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조응천 의원은 9월 25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이 대표가 6월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천명했다. 혁신위 1호 안건이고, 의원총회에서도 추인했다. (가결투표가) ‘해당 행위’가 되려면 이 대표나 의원총회에서 이걸 번복한다는 걸 명확히 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국민들에 설득하고 납득시켜야 한다”며 “대국민 약속을 지켰고 방탄 프레임을 깨고 우리 당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기 위한 정치적 행동을 해당 행위라고 하는 건 적반하장”이라고 받아쳤다.
김종민 의원 역시 같은 날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윤석열 정권이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반국가세력’이라고 몰아붙이고 있지 않느냐. 이것이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불신을 받고 있고 반발을 사고 있다. 그럼 민주당이라도 민주주의를 제대로 해야 민심이 모일 텐데, 민주당도 하는 게 비슷하다”며 “자기주장을 남에게 강요하는 건 ‘독재’로 봐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탈선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축출 위기에 놓인 비명계가 탈당 수순을 밟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고개를 들었다. 공천 탈락이 점쳐지는 이들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신당 창당에 나설 것이란 내용이었다.
하지만 탈당·분당 시나리오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의 한 원로급 전직 의원은 “민주당을 나와 신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을 이끌 대선주자급 인물이 있어야 한다. 과거 2016년 국민의당이 만들어질 때는 ‘안철수’라는 대선주자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 야권에 이재명 대표 외 중량감 있는 정치인이 어디 있느냐”며 “또한 민주당은 현재 자산이 많다. 현재 비명계라고 불리는 인물들은 풍찬노숙 없이 정당활동을 해온 분들이다. 제3지대 광야로 나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익표 신임 원내대표 선출을 두고도 선명성뿐 아니라 통합까지도 고려한 판단이라는 해석도 있다. 친명계 민주당 원외 위원장은 “김민석 정책위의장은 이낙연계에 대해 강경한 입장이기 때문에, 김민석 정책위의장이 원내대표가 됐다면 당이 정말 쪼개질 수도 있었다”며 “그러다보니 친명계가 당의 미래를 생각해 다소 온건론자인 홍익표 의원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고 전했다.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이재명 대표는 9월 26일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해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았다. 제1야당 대표가 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것은 헌정사 처음이다. 영장심사는 오전 10시 7분쯤 시작해 9시간 17분 동안 진행됐다. 이는 2022년 12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으로 영장심사를 받은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10시간 6분)에 이어 두 번째로 긴 시간이다. 영장심사를 마친 이 대표는 법정을 빠져나와 검정색 승합차를 타고 서울구치소로 이동, 피의자 대기실에서 결과를 기다렸다.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한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7시간 동안 고심을 거듭한 끝에 9월 27일 새벽 2시 24분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유 부장판사는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필요성 정도와 증거인멸 염려의 정도 등을 종합하면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배제할 정도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 부장판사는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이례적으로 긴 총 892자 분량의 사유를 통해 판단 근거를 설명했다(관련기사 가장 가벼운 ‘위증교사’ 혐의만…이재명 구속영장 기각 법원 결정문 행간읽기).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이 대표는 새벽 3시 50분쯤 서울구치소 정문을 나왔다. 이 대표는 “역시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것 같아도 국민이 하는 것”이라며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사실을 명징하게 증명해주신 사법부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란 언제나 국민의 삶을 챙기고 국가의 미래를 개척해나가는 것이란 사실을 여야, 정부 모두 잊지 말고 이제는 상대를 죽여 없애는 전쟁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를 위해 누가 더 많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를 경쟁하는 진정한 의미의 정치로 되돌아가길 바란다”며 “우리 정치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이 나라 미래에 도움 되는 존재가 되기를 정부여당에도, 정치권 모두에도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표적 수사’라는 반발을 무릅쓰고 검찰력이 총동원돼 2년 동안 이 대표를 향해 전방위적 수사를 벌였다. 압수수색만 300건이 넘는다. 그런데 법원을 통해 이 대표를 구속시킬 확실한 물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판정을 당한 것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말한 ‘차고 넘친다는 증거’는 어디 있느냐. 책임론이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장관에게 쏠리게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이 대표 구속영장 기각 결과가 나오자 반격의 칼끝을 윤석열 대통령에 돌리며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홍익표 신임 원내대표는 9월 27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검찰에 의존한 정치 무력화를 멈추고 국회와 야당을 존중하는 태도로 정치를 복원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 시작으로 무리한 정치수사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실무책임자인 한동훈 장관의 파면을 요구했다.
정부여당에서도 예상치 못한 구속영장 기각 소식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서 “권력의 유무로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유권석방 무권구속’”이라며 “사법부가 정치 편향적 일부 판사들에 의해 오염됐다는 것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결국 법원이 개딸에 굴복했다. 추상같이 엄중해야 할 법원의 판단이 고작 한 정치인을 맹종하는 극렬 지지층에 휘둘렸다”며 “오늘 결정은 두고두고 법원의 오점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동훈 장관도 이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구속영장 결정은 범죄수사를 위한 중간 과정일 뿐”이라며 “(기각이) 죄가 없다는 건 아니다”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한 장관은 정부과천청사 출근길에서 “정치인이 범죄를 저지른다고 사법이 정치가 되는 건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 검찰이 그간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수사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따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여권 한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는 이 대표 구속을 정국의 반전 모멘텀으로 구상한 것 같다. 일각에서는 용산 대통령실이 검찰 측에 서둘러 이 대표 구속영장을 청구하라 재촉, 검찰이 당혹스러워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무리한 영장 청구가 역풍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고 우려했다.
민주당 또 다른 관계자는 “여당에서 ‘법원이 개딸에 굴복했다’는 말이 나왔다. 이는 대통령, 법무부 장관, 검찰, 여당 정치인들의 압력을 다 뿌리치고 사법부가 개딸에 굴복했다는 의미다. 여당이 스스로 윤석열 정부가 레임덕에 빠졌다고 인정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구속은 피했지만 이 대표 앞날은 험난하기만 하다. 우선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극에 달한 친명과 비명 간 내홍을 수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통합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 대표로선 강경 지지층이 요구하는 비명계 축출 여론을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다. 이 대표가 개딸들의 ‘비명계 찍어내기’에 대해 적극적으로 동조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침묵으로 용인할 경우 민주당은 다시 거센 소용돌이에 빠질 것으로 점쳐진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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