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탄값 10배’ 총알 부족 우려 속 “대량 공급돼도 활용도 낮을 것” 관측…현장선 “면책조항 규정 먼저”
그만큼 한국이 안전하기 때문일까. 흉기 난동 사고가 연이어 불거지는 등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총기를 사용했다가 과잉 대응으로 처벌 받거나 피의자나 피의자 가족에게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저위험 권총은 해답이 될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8월 2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든 현장 경찰에게 저위험 권총을 보급하고 101개 기동대에 흉기 대응 장비를 신규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경찰은 2024년 예산안에 권총 구입 예산을 대폭 증액해 86억 원으로 책정하며 저위험 권총 5700여 정 우선 보급 목표를 밝혔다. 그렇지만 저위험 권총에서 사용할 총알 예산은 별도로 책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SBS가 단독 보도했다. 예산안에 권총탄은 실탄만 산정돼 있을 뿐 저위험 권총용 플라스틱 재질의 총알은 빠져 있는 것.
경찰 관계자는 SBS 측에 “권총탄 예산 안에서 38구경 실탄과 저위험 총알을 나눠 구매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현실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권총 구입 예산이 대폭 증액된 데 반해 권총탄 예산은 51억 원으로 2023년과 동일한 것. 게다가 저위험 권총에 쓰이는 플라스틱 재질의 총알은 실탄보다 10배 정도 비싸다. 말 그대로 ‘총알이 부족한’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저위험 권총’은 2020년 개발됐는데 경찰이 사용하던 38구경 리볼버 권총 대비 약 25~30% 가벼운 데다 살상력을 크게 낮췄다. ‘저위험 총알’이라 불리는 플라스틱 재질의 총알을 사용하는데 격발 시 위력이 실탄의 10% 수준이다. 저위험 권총 제작사 SNT모티브는 저위험 권총 적정 위력을 35J로 산정했는데 38구경 리볼버 권총의 위력은 360~380J이다. 이런 까닭에 ‘비살상 개량 권총’으로도 불린다.
확실히 현재 경찰이 사용하는 테이저건보다는 사용이 용이하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사거리가 5~6m에 불과한 테이저건에 비해 사거리가 3배 정도 더 길고 연속 사격도 가능하다. 테이저건은 한 발만 장전돼 연속 사격이 불가하다. 조준도 저위험 권총이 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조준이 어려운 테이저건은 물론이고 38구경 리볼버 권총보다도 조준이 잘될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반동이 적기 때문이다.
물론 저위험 권총일지라도 총이다. 대퇴부 기준 침투 깊이가 5~6cm가량으로 알려졌는데 주요 장기들이 포진해 있는 상체를 겨냥할 경우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까닭에 경찰은 비상시 사격 조준을 가급적 대퇴부 이하로 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이다.
2024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5700여 정의 저위험 권총이 일선 경찰들에게 보급되겠지만 여기에 쓰일 저위험 총알은 부족한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일선 현장에서는 총알의 유무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많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기본적으로 저위험 총알이 무한 공급된다고 할지라도 일선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을지 여부가 불투명하다. 현재 보급된 38구경 리볼버 권총이나 테이저건보다는 훨씬 활용도가 높고 효율적이라는 부분은 일선 경찰들도 동의하고 있다. 그렇지만 저위험 권총보다 위험도가 낮은 테이저건조차 사용 사례는 극히 드물다. 저위험 권총 대비 단점으로 지적된 사거리가 짧고 조준이 어려우며 연속 사격이 불가능하기 때문은 아니다. 바로 책임 부담 때문이다.
총기를 사용하면 과잉 대응 논란에 휘말려 처벌을 받을 수 있고 피의자나 피의자 가족으로부터 소송이 들어올 수 있다. 당장 테이저건을 쏴야 하는 상황에서도 처벌과 소송 등을 고민하는 상황에서 저위험 권총 사용은 더 망설일 수밖에 없다.
연이은 흉기 난동 사고에 8월 초 윤희근 경찰청장이 “총기, 테이저건 등 정당한 경찰 물리력 사용을 주저하지 않고, 국민 안전을 최우선 기준으로 경찰관에 대한 면책규정을 적극 적용해 현장의 법 집행을 뒷받침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일선 경찰은 총기 사용을 주저하고 있다.
8월 초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대검찰청에 폭력사범 검거 과정에서 정당방위를 적극 적용할 것을 지시했다. 그렇지만 법원이 정당방위를 인정할지는 또 다른 문제다. 2014년 발표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논문 ‘정당방위의 확대와 대처방안’에 따르면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60여 년 동안 법원이 정당방위를 인정한 사례는 단 14건에 불과하다.
일선 경찰들은 이런 상징적인 발언에 그치지 말고 면책 조항 등에 대한 명확히 규정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실 이런 목소리는 예전부터 계속돼 왔다. 2021년 인천 남동구 흉기 난동 사건 당시에도 경찰 내부에서 현장 대응력과 적극성 강화를 위해 ‘무기 사용 면책특권’ 신설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불거진 바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대통령님, 경찰관들이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무기 사용 면책특권을 신설해 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원인은 자신을 20여 년째 근무 중인 일선 경찰관이라 소개하며 “테이저건과 권총은 현장 경찰관들이 사용할 수 없는 장구”라고 밝혔다.
이런 내부 분위기에 김창룡 당시 경찰청장도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밝혔지만 별다른 제도 개편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나마 2022년 경찰관 직무집행법이 경찰이 살인 등 강력범죄나 가정폭력 등의 긴급 상황 시 직무를 수행하다 타인에 피해가 발생해도 고의나 중대 과실이 없으면 형사책임을 감면받도록 개정되기는 했다. 그러나 여전히 면책범위가 좁아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무기 사용에 대한 면책 조항 등이 명확히 규정되지 못한 채 저위험 권총만 새로 보급된다고 일선 현장이 달라지기는 어렵다는 게 현장 경찰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한 경찰관은 “이번에도 던지는 용도로만 사용하라고 아예 총알은 예산조차 안 잡은 거 아니냐”는 푸념 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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