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두더지처럼 자주 행복합니다.”
계절이 변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할 일은 충분하다고 하는 현자적 삶은 근원적인 것으로 시선을 돌리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영웅의 삶은 다르다. 현자는 적과 동지의 구별을 무색케 하지만 영웅은 적과 동지를 분명히 구별하며, 우리를 역사의 무대로 불러낸다.
우리는 삼국시대로 돌아가 연개소문과 김춘추를, 후삼국 시대로 돌아가 궁예와 견훤과 왕건을, 그리고 조선 건국기로 돌아가 이방원과 정도전을 불러내 어떻게 사는 것이 우리 공동체를 위한 것이었는지 들여다보고, 검토하고, 따져 묻는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많은 영웅 중에 요즘 강렬하게 다가오는 한 영웅은 바로 홍범도 장군이다.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는 역사에 기록된 독립군의 첫 승리였다. 영화 ‘봉오동 전투’에서 배우 유해진의 대사가 있지 않나.
“나라 뺏긴 설움이 우리를 북받치게 만들고, 소총을 잡게 만들었다, 이 말이야.”
봉오동 전투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조선인의 자존심일 뿐만 아니라 희망이기도 했다. 아, 조선을 집어삼킨 일제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도 있구나, 하는 것. 그리고 이어진 김좌진의 청산리 전투에서도 홍범도 장군의 역할이 있었다.
그 홍범도 장군이 일제의 칼날이 시퍼런 일제강점기에는 한반도에서 살 수 없었겠다. 평생 일본과 싸우는 데 생을 건 대한독립군 사령관 홍범도는 나라 잃은 설움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멀고도 먼 땅 카자흐스탄에서 초라하게 세상을 떠났다. 언젠가 조국이 독립된다면 거기에 내 뼈를 묻어달라는 유언이 있었단다.
몇 십 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와 유언대로 해방된 조국의 땅에 묻혔는데, 그것으로도 영면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또 흉상의 위치가 논란이다. 누군가가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이력을 문제 삼아 그를 육군사관학교 밖으로 추방한다는 것이다.
조선사를 공부하면 조선으로 건너가고, 고려사를 공부하면 고려로 건너간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를 공부할 땐 일제강점기로 건너가야 하는데 우리는 왜 지금 그의 공산당 이력을 문제 삼으며 단죄할까. 그렇다면 얄타회담 때 소련의 스탈린을 만나 일본문제의 해법을 찾으려 했던 미 대통령 루즈벨트도 공산주의자라 할 것인가.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이력은 항일운동의 방편이었다는 이종찬 광복회장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해체되는 날 의병이 시작됐고, 의병은 독립군이 되고, 독립군은 광복군이 돼 국군의 역사로 이어지면 얼마나 우리가 명예스럽겠나.”
그 명예를 육사가 지킬 수 있을까. 육사에서는 그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런데 묘하다. 국민들이 그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육사에서 그를 추방하겠다는 보도가 일파만파로 번지자 온 국민이 그를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봉오동 전투’를 다시 보고, 독립운동사를 들여다보고, 역사 강의를 다시 듣는다.
TV에서, 라디오에서, 신문에서, 유튜브에서 의병 시절부터의 그의 행적을 알려준다. 주인공을 착취하고 죽이려는 마녀를 통해 주인공이 성장하는 동화처럼 국민들의 마음에서 홍범도 장군의 업적이, 홍범도의 정신이 마침내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독립군 사령관 홍범도 장군이 현대사에서 이렇게 유명했던 적이 있었나.
마치 홍범도 장군이 육사 안에서 조용히 지내기를 거부한 것 같다. 그의 넋은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니 주권자 국민의 마음에 홍범도의 정신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살아있는 흉상 아닌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니 국민의 마음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 살아있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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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 수원대 교수